▲ 유중원 변호사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자리 잡은 에덴동산에는 따스한 햇볕이 알맞게 비추는 가운데 색채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화려한 꽃들이 피는 식물들이 우거져 있고, 얌전한 짐승과 새, 나비와 꿀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춤추고, 대지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은과 금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하윌라 땅을 휘돌아 흐르는 비손 강과 기혼 강 등 네 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수많은 지류가 실핏줄처럼 흐르면서 검은 흙은 비옥해서 보리와 밀 등 온갖 풍성한 곡식을 제공해주고, 육체적 질병도 걱정할 것이 없다. 사람에게 나쁜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좋은 것만 있었다.

다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전지전능한 신도 판단하기 어려웠으니 그 문제는 그 동산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그러므로 에덴의 과수원 한 복판에는 지혜의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러나 월계수 나무들이 금방 자라서 무성해지고, 탐스러운 사과와 석류, 오렌지와 무화과, 포도, 올리브 열매가 맺는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열매는 떨어지는 법도 시드는 법도 없다. 그런데 말이 겨울이지 날씨는 늦은 봄 날씨처럼 너무 온화해서 인간이 짐승처럼 나체로 지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겨울 북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날에 나무도 열매도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무르익는다. 석류 속에 석류, 포도송이 위에 포도송이, 한 송이 꽃송이 안에 다른 한 송이, 무화과 열매 위에 새로운 무화과 열매가 매달린다. 사시사철 도처에 꽃망울이 화르르 열리고 꿀맛 같은 과일들이 사람의 키 높이로 또는 까치발로 몸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평화와 기쁨이 넘치고 웃음이 가득한 곳이었으니 자연이기에 앞서 예술 작품이다. 아름답고 웅장하고 매혹적인 것이다.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이 에덴동산은 천국을 모델로 삼아 그대로 본 뜬 것이리라. 그래서 이후 이 세상 모든 정원, 파라다이스, 유토피아의 영원한 모델이 되었으니 인간들은 아주 옛날부터 이 낙원을 재창조하거나 사라진 낙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에덴동산에는 그들만이 살았다. 전지전능한 신을 제외하면 아담과 이브 (또는 하와). 원래는 아담 혼자서 살았는데 (그러므로 그는 최초의 인간이다. 꾸란에 의하면 최초의 무슬림이다) 신께서 아담에게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여 그를 잠들게 한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는 살로 메웠다. 그리고 신은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면 신은 남자는 흙으로 대충 만들었지만 여자만은 엄청난 정성을 기울인 것이 확실하다.)

아담이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이에 대해 링컨 대통령은 ‘하와는 아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자가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같으면 여성 차별적 발언이라고 지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만나서 결합하고 둘이 한 몸이 된다. 그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도 한결 같이 여자가 있었고, 야훼도 그의 여자 아세라가 있지 않았던가. 예수 역시 남자이고 그에게도 여자가 있었으니 골고다의 예수 곁에는 세 여자가 있었다. 그들 모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이외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 파피루스에는 콥트어로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으니까, 그 중에는 예수의 아내도 있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다빈치 코드에 그토록 열광하겠는가. 2000년 동안이나 숨겨져 왔던 예수의 봉인된 비밀을 불경스럽게도 폭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성중심주의의 원조이고 총 본산인 교황청은 펄쩍 뛴다.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이 예수의 제자가 된다거나, 여성의 사제 진출을 절대 금기시 하고 있다.

중세 시절이라면 댄 브라운은 틀림없이 화형을 당했을 것이고 그 책 역시 금서목록에 오를 뿐만 아니라 회수되어 역시 불태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커다란 논쟁점이 생긴다.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면서 최초의 남자, 이브가 최초의 여자라는 데는, 모든 인류는 그들의 자손이라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인류 최초로 성교라는 신성한 행위를 하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 시기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전통적 견해는 그들이 에덴동산에서는 성행위를 한 일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천사와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천사가 어떻게 성행위를 할 수 있었겠느냐고 주장한 것이다. 또는 예수님은 신이 인류에게 보낸 두 번째 아담인데 예수님이 어떻게 그런 천박하고 불경스러운 행위를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교활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지혜의 나무에 열린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을 추방당한 뒤 (더욱이 신은 에덴동산에서 축출된 아담과 이브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신의 명령에 따라 불 칼을 들고 에덴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케루빔을 입구에 세워 놓았다고 한다.) 비로소 인간이 되면서 동침했고 이브는 임신을 해서 차례로 첫째,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는 것이다. 다만 창세기에 의하면 아담에게도 죽은 아들이 한 명이 있었는데 그게 첫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하는 견해도 유력하였으니 그들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서 에덴을 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이브는 사과 자체 때문에 사과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원했다.’)

그러나 그 열매에 대해서는 사과가 아니라 석류 아니면 무화과라는 강력한 주장도 있다. 아열대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사과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널리 알려진 대로 카인은 순전히 질투심에서 동생인 아벨을 죽였다. 그는 인류 최초로 살인죄를 저지른 자이고, 가족을 배신한 배신자였으며, 또한 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한 위선자였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는 애초부터 유혹과 타락, 살인과 배신 등 범죄로 얼룩진 채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소외와 시기에 따른 갈등 관계는 원초적이기 때문에 죄악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원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카인은 아버지 아담의 진정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인은 질투라는 인간 본성을 가진 자연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카인은 인간의 원형으로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이 세상을 자신의 집으로 삼은 것이다. (카인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늠름한 젊은이였고, 그의 시선에 담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그의 용기와 담대함을 찬양하고 경외하는 한 무리 카인교도들이 있었으니……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끝내 공범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범죄자들은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거대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가능했을 것인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도둑보다 자신의 길을 간 간 큰 도둑이 용기 있는 도둑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이야 말로 바로 카인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통적인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물론 내가 최초로 반론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벌써, 4세기 때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을 자신과 같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고, 그래서 음식을 먹고, 세상의 풍경을 즐겼으며, 여자와는 성교를 하여 가족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신은 남자에게 짝을 지어주기 위해 여자를 만들었고 남자와 여자는 결합해서 둘이 한 몸으로 되도록 하지 않았는가. (만약 아담이 살면서 대화를 나눌 좋은 상대가 필요하였다면 여자를 만드는 대신 남자를 만들어 두 명의 남자가 서로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들은 신이 만들어준 대로 에덴동산에서도 각기 고유의 성기를 달고 있었다. 전통적인 견해는 성기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금지된 열매를 먹고 신께 불복종 하였을 때 난생 처음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이파리로 거길 가렸다. 그때 이후 인간들이 거길 가리는 유구한 관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저곳이 바로 그곳이다. 저곳이 인간의 원죄가 전해지는 바로 그곳이다.’

그럴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의 여기저기를 거닐 때면 얼마나 심하게 봄 입덧을 했을 것인가. 그들은 형형색색 꽃들의 관능적인 향기에 가슴이 터질듯이 들뜨고 얼마나 야릇한 기분에 휩싸였을 것인가.

그리고 하루 종일, 몇 날, 몇 달씩 얼마나 심심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가끔 산뜻한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실개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갔고 목욕을 마치고나면 그윽한 햇빛에 몸을 말리기도 했다.

더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인 상태에서 성인 남녀가 붙어있으니 그들도 인간인데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무어란 말인가. 아담은 안식일 저녁에 만물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창조되었고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즐기게 하기 위해 인간을 세상에 보냈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상낙원에 술이 있어야 할까, 없어야 할까. 술을 마약이나 독이라고 여기는 편협한 인간들에게는 술은 악마이어서 없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기쁨이고 일종의 치료약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박카스의 여신일 터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데 귀중한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술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과일이 저절로 익어서 술이 되었다. 과일주가 지천이었다. 특히 포도주가 그러하였다. 1504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원정 대원들이 발견했던 팡타그뤼엘의 유토피아는 15세기의 에덴동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음료로 포도주와 사과주, 배주를 마셨고 그리고 물에는 가끔 꿀과 감초를 넣어 맛을 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는 처음부터 술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자면, 아담은 무미건조하고 생기가 없는 생활에 싫증이 나고 너무 심심한 나머지 그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매일 술에 쩔어 술 배가 튀어나온 데다 코마저 딸기코인 사내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브 역시 매우 섬세한 여자이기는 하나 운동부족으로 몸은 살이 쪄 통통하고 다리에 관절염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늘 술에 얼큰히 취해 있었을 것이다. 술에 취하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특히 유혹자인 이브는 ‘순결한’ 마리아가 아니었으니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겠는가. 요컨대 아담에게서 수컷 냄새가 풀풀거렸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브는 여자이니까 아담을 등 뒤에서 비웃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집트에서 요셉을 끈질기게 유혹했던 포티파르는 이브의 뜨거운 피를 이어받은 직계였던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신이 여자를 창조하는 순간 권태가 사라졌다. (니체)

 

또한, 그 전통적인 견해의 치명적 결함인 즉,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뒤 아담과 이브가 비로소 동침했고 이브는 임신을 해서 고통 속에 첫째를 낳고 카인을 낳고 그 다음에 아벨을 낳았다는 것이나 또 다른 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두 사람은 신의 훼방으로 헤어져 아담은 인도에까지 유랑하여 결국 대장장이로 평생을 고생하다가 죽었고, 이브는 아담과 헤어진 후 아라비아 반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평생 농사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다 죽었는데, 그 무덤이 지금까지도 메카를 순례하는 무슬림들이 지나다녔던 헤자즈의 순례 길에 있는 지다Jidda의 도시 성곽 바로 밑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에덴동산을 떠나온 후 동침할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헤어진 후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딱 한 번 길에서 서로 엇갈리면서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하와는 늙어서 꾀죄죄하고 거의 생기가 다한 주름살투성이인 아담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냥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원래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죽은 후에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결론은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이미 성교를 하였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대담하게도 금단의 열매를 따서 아담에게 준 것은 바로 이브였다. ‘더 연약한 그릇’이었던 여자에게 뱀이 먼저 접근하여 유혹하였던 것이다. 이브는 아담에게 사과를 먹으라고 권하였으니 아담은 여자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담은 이브가 준 사과를 신 모르게 허겁지겁 급히 먹다가 한 조각이 목구멍에 걸려 혹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남자의 목 가운데 있는 목젖이다. 그때부터 목젖은 일명 아담의 사과(Adam's apple)가 되었다. 어쨌거나 이브야말로 인류 최초의 여자였고 유혹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인즉, 신은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기를 바랐다. 그 교활한 뱀이야말로 신이 변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죄악이 완벽했던 세상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타락하기를 바랐다. 신 역시 심심했던 것일까, 그래서 장난을 치고 싶었던 것일까, 신의 장난. 그런데 신의 의지와 반대로 인간은 타락하면서 지혜를 얻었고 창조의 힘을 사용하면서 신의 전능함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위선적인 신의 보호로부터 해방되면서 자유의지를 획득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인간에게 자유는 삶의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고, 인간 생존의 본질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점점 낙원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오직 주인이 규정한 데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그러므로 삶의 번뇌와 걱정거리는 도대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지루했던 것이다. 에덴동산의 풍성한 식탁도 찬란한 햇빛도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천진난만한 유아기적 상태로 남아서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즐거움도 모르고, 죄를 모르기 때문에 악과 선을 모르고, 추함과 아름다움을 구별할 줄도 몰랐던 철없던 시기는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권태감을 느꼈고 변화와 모험이 필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것이다. 에덴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감옥이었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 탈출해야만 했다. 이브의 뜨거운 핏속에서 무언가 모를 반항의 기운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자유를 찾아 살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고함을 마구 지르며 뛰쳐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담의 등을 떠밀며 충동질을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인간들은 스스로 에덴의 문을 열고 떠났던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해방과 자유를 찾아서, 그것에 대한 열망 때문에 떠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잃어버렸다는 낙원의 이름은 에덴동산 garden of Eden이다. 그런 것이다. 그것은 야생의 숲 forest이나 들판 field이 아니다. 정원이란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인공적으로 가꾼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가두어 놓고 기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새장이나 어항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를 얻은 대신 황야에 내던져졌다. 인간은 스스로 먹고 살아야 했으니 식량을 획득할 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땅을 얻으면 다시 소유권을 확보해야만 했다. 인류의 역사란, 실은 에덴을 떠나온 이후 인간들 간 빼앗고 빼앗기는 토지의 소유권에 관한 지루한 연대기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떠난 다음 에덴동산은 어찌 되었을까 그들이 떠난 이후로 지상낙원은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폐허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까, 아니면 지금까지도 이 세상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 이에 대해 누구는 노아의 홍수가 지구를 덮쳤을 때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고, 누구는 강물에 휩쓸리기는 했으나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고 높은 산꼭대기에 걸려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중세의 지도에는 한결같이 세계의 동쪽 끝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랬으니 종말론적 근본주의자였던 콜럼버스는 그것을 찾아서 동쪽으로 힘겨운 항해에 나섰던 것이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이야기 속에서도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 위선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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