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명량', 350만 관람객 돌파
'성웅' 이순신(1545~1598)은 진 적이 없다. 역사서에는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없었던 인물로 기록돼있다.

소설과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2001년 출간된 소설가 김훈(66) 씨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2007년 100만 부를 넘긴 뒤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KBS 1TV '불멸의 이순신'(2004)은 최고 시청률 33%를 찍더니, 주연배우 탤런트 김명민(42)에게 연기대상까지 안겼다.

스크린으로 넘어온 이순신의 공격력은 더욱 거세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은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가 세운 올해 오프닝 기록인 55만 명을 가볍게 넘어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인 68만3200명을 찍었다. 역대 최고 평일 스코어(86만 명), 역대 최고 일일스코어(125만 명), 최단 100만 돌파(2일), 최단 200만 돌파(3일), 최단 300만 돌파(4일), 최단 400만 돌파(5일), 500만 돌파(6일) 신기록도 세웠다.

개봉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선 '설국열차' '도둑들' '아이언맨3' '괴물' '관상'보다 4일 앞선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변호인'(13일) '해운대'(13일) '아바타'(16일) '7번방의 선물'(17일) '광해'(18일)의 500만 돌파 기록보다 빠르다. 개봉 첫 주 최고 누적스코어였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349만 명), '트랜스포머'(335만 명), '설국열차'(330만 명)보다 125만 명 이상 높은 475만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며 한국영화의 흥행역사를 다시 썼다. 이쯤 되면 '명량 신드롬'이라 불릴만하다.

영화는 조선 중기인 1597년 왜란 당시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에 맞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최민식)과 조선 수군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물이 아닌, 전투에 초점을 맞춘 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명량'의 전반부는 다소 무거웠지만, 61분의 통쾌한 후반부 해상 전투 신은 짜릿한 전율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투자·배급을 맡은 CJ E&M 영화사업부 윤인호 팀장은 "다른 정세를 세세히 안 그리고 전투 며칠 전 상황을 압축해 보여주고 해전에 집중했다. 이순신은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인물이다 보니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투 신을 본 관객들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순신의 인간미가 영웅성과 맞물려 '이순신의 재발견'으로 보고 있다"고 흥행요인을 꼽았다.

'명량'은 김한민(45) 감독이 기획 단계부터 개봉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현재 남아있는 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투 신을 재현하고자 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된 몇 장면에서는 이음새가 어색하지만, 일본군에 맞서 분투하는 조선군의 전투 신은 몰입을 도왔다.

영화를 본 30대 초반의 남성은 "이순신의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책으로만 접한 전투 신을 어떻게 재현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전투 신이 큰 스크린으로 영상화된 적이 없어서 더욱 큰 감동으로 와 닿은 것 같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영웅 아이언맨·스파이더맨·배트맨·슈퍼맨 등과 견줄 수 있는 현실적인 '한국형 영웅'의 탄생도 반기는 분위기다.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은 10대 여성은 "현대가 원하는 '리더십'의 표본을 제시한 영화다. '백성에 대한 의리'를 내세운 이순신의 리더십이 공감을 샀다. 우울한 뉴스가 계속돼는 시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CJ 윤 팀장은 "'명량'은 한국적인 영웅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역사 속 많은 영웅을 재조명하는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촉발제가 됐다. '역사 속에 대단한 인물이 있구나'라고 자부심과 용기를 느끼는 것 같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적 영웅의 탄생을 즐기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모든 연령층이 '명량'을 찾으면서 흥행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분석이다. 주로 20~30대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중·장년층으로 이어지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명량'은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게 극장을 찾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40대에서 50%가 넘는 예매율로 가장 높았고 CGV에서는 20대가 많이 예매했다. 남녀 비율의 차이는 크지 않다.

관계자는 "주말에 가족단위 관객이 늘고 있다. 교육적인 내용에 재미까지 더해지면서 자녀와 함께 찾는 관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영화가 빠른 속도로 흥행몰이하며 올해 첫 1000만 관객 달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성수기 여름 개봉 영화라는 점도 호재다. 1000만 관객을 찍은 영화 '괴물'(2006) '해운대'(2009) '도둑들'(2012) 모두 이 시기에 개봉했다.

하지만 CJ 측은 "앞으로 '해적'과 '해무' 등 큰 영화들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 쉽게 점칠 수 없다. 1000만 수치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