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광주학살 주범아!

마침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담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전두환 씨는 들어와서 약속대로 방청석을 향해 선서를 하고 이것을 다시 이양우 변호사에게 주고 이것을 다시 이양우 변호사가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과정으로 일단 ‘선서’는 마쳤다.

그 때부터 이른바 일괄질문에 일괄답변이 시작되었다. 그 답변이 끝나면 회에 한해 보충질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충질의까지 가기도 전에 의원석에선 난리가 났다. 답변이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모범답안 같은 걸 미리 작성해 와서 그걸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는 식이니 야당의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마이크를 끈 것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러면 다시 정회가 된다. 부랴부랴 위원장은 당 간사회의를 열어 회의가 원만히 진행되도록 부탁하고 증인에게 주의을 준 후 또 속회를 선언. 잠시 후면 다시 고함소리. 다시 정회.

이걸 수차례 반복하면서 결국은 어느 정도 질문하고 어느 정도 답변하는 식으로 끊어가자는 데까지 합의가 되었다. 한꺼번에 쭉! 하면 각 항목에 대한 질문을 기억하기도 힘들고 그건 너무 형식적이라는 말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다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진행되다 보면 이제 의원들이 보충질의를 한다. 그러면 아까 한 답변을 다시 되풀이 한다. 그러면 ‘그런 식으로 답볍하면 되나!’소리가 튀어나오고 ‘왜 반말이야’하며 맞받고...다시 정회! 결구 점심시간이 되어 버렸다.

오후에는 이제 <광주 특위>다. 되든 안되든 일단 일정대로 넘어가야만 했다. 드디어 <광주 특위>의 질문이 시작되고 오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철용 의원이 당산 앞까지 나가서는 벽력같이 소리를 쳤다.

“야! 이 광주학살 주범아! 너 왜 거짓말 하는거야?”

그러자 권해옥 의원이 나가서 확 이철용 의원을 잡아 밀치니 여야 의원이 달려 나와 일대 싸움이 벌어지고...다시 정회!

잠시 후 다시 시작! 그런데 이번에는 노무현 의원이 명패를 집어 던졌다.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형식적인 답변에 대한 야당 의원이 울분이었으나, 여당의원들은 이때부터 이걸 핑계삼아 나오고, 정회는 계속 길어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기물을 던져?“

“노무현 의원이 사과하지 않으면 더 못해!”

참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다 싶은데, 그 와중에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었다. 백담사 청문회는 어차피 단 하루만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고 밤 12시를 기해 모든 것은 끝나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분침이 12시를 향하고 있는가 싶은 순간! 전두환 씨는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막 혼자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원들 간에는 고함소리가 오가며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 12시가 다가오자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원고를 다 읽자 지체없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곤 12시 정각을 기해 기자들을 불러 못다 한 얘기를 마저 읽어 내려가고는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순간 야당의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달려들어 육탄으로 차를 막자 경호원들이 신속하게 떼어내고는 차는 쏜살같이 국회를 빠져나갔다.

그리곤 끝이었다. 백담사 청문회는 끝난 것이다.

그러나 ‘선서’하나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신경전을 펴며, 그 때만 해도 그렇게 막강하던 ‘백담사’도 결국 역사의 흐름은 거슬리진 못했다. 끝내 전두환 씨는 구속되었고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영원히 역사에 남겨놓았다.

한 쪽에서는 전두환 씨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다고 말한다.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나 또한 그것을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전직 대통령들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권력의 허무함과 그것의 무상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정말 앞으로는 그런 모습이 재현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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