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14일 우리나라에 온 프란치스코(78) 교황이 국내 첫 사목활동으로 한국 주교단을 만났다.

교황은 이날 오후 5시48분께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도착했다. 5시30분에 오기로 돼있었으나 청와대 행사가 길어지면서 다소 늦었다.

교황은 자신을 보러 몰려든 주민들을 위해 정문 도로에서 내려 20~30m를 걸었다. 협의회 입구에서 주교회의 직원들의 환영을 받은 교황은 성당 앞 십자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 제대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1분간 기도했다.

이후 주교회의에 상주하는 사제와 수녀들,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사제들과 인사를 하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주교단을 만났다. 교황과 주교단의 만남은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이 지역 교회를 돌보는 주교들을 격려하고 세계 교회의 일치를 확인한다는 의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교종(교황)께서 이 땅에 하느님의 복을 기원해 주시고 평화를 향한 아시아 여러 민족의 크나 큰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도록 풍성한 축복과 지혜를 나누어 주시기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단국의 현실을 알렸다.

강 주교는 “한반도는 남북 간의 전쟁 이후 전투는 오래 전에 그쳤지만, 아직도 정전 상태”라며 “지난 66년간 남과 북의 주민들은 한 언어를 구사함에도 정치 체제와 사회적 이념, 경제적 상황이 다르고 문화적 이질감도 갈수록 커져서 갑자기 통일된다 해도 우리가 한 형제 한 이웃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고 말했다.

“성하가 방문해 주신 한국 사회는 국내적으로는 다른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와 복음화를 이뤄 왔다”면서도 “이러한 변화는 적지 않은 부작용과 치유되지 않은 많은 상처를 동반했다”고 전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국가 전체는 부를 축적해도 낙수 효과는 없고,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해 많은 시민이 일자리 불안과 사회보장제도의 부족으로 죽음에 이르는 신음을 내고 있다. 교회도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복음적인 교회공동체를 만들었는지를 성찰하면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성하 앞에 자랑하고 축하받기보다는 당신의 위로와 격려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백성이라고 생각된다”며 “이 백성은 어느 때보다 같은 시민들 사이, 같은 민족 사이에 나눔과 화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동북아시아 전체가 민족들 간의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청빈한 교회를 만들 것, 성직자 주의에 빠지지 말 것, 주교는 사제와 가까이 일할 것”을 조언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복음의 중심”이라며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요소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교회가 번영됐으나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 있다. 사목자들은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며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등 주교단 25명과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등 은퇴 주교 8명이 참석했다. 협의회 옆 건물인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지부장 함제도 신부)에 거주하는 미국인 원로 선교사 신부 14명과 직원 7명도 교황의 방문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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