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2년 4월 과테말라 도심 한복판에 발생한 싱크홀, 넓이가 자그마치 30m에 깊이는 100m다. 당시 구멍을 메우는데만 약 3년을 예상했다고 한다.
"바다도 모자라 국민들이 땅속으로 가라앉아야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책을 마련할 겁니까?" "세월호하고 뭐가 다릅니까. 명백한 인재입니다. 통합관리시스템은커녕 땅을 들여다볼 지도도 없어요" 일부 지질 전문가들의 성난 목소리다.

지난 몇 해 동안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갈수록 자주 발생하고 있는 한국형 싱크홀(sink hole)때문에 지질학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게다가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8월5일 서울 석촌지하차도에서 폭 2.5m, 길이 8m, 깊이 약 5m의 싱크홀이 생겼다. 이에 앞서 7월엔 인천 영종도에서 폭 6m 대형 싱크홀이, 6~7월엔 국회의사당 앞에 깊이 각각 3m, 5m 싱크홀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올해만 해도 전국에서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충북 청원의 한 마을에서 너비 20m 깊이 30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바 있고 같은 해 9월 영등포 노들길에선 폭 3m, 길이 2m 싱크홀이, 2008년 5월 충북 음성에선 대형 싱크홀 발생으로 건물이 붕괴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1월엔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정차 중이던 버스를 삼켜 승객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 같은 해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직경 8m, 깊이 13m의 싱크홀로 창고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싱크홀은 일반적으로 지하수의 이동과 그에 따른 지하수량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 지하수와 흙이 섞여 일정한 부피를 유지하던 땅에서 어떤 이유로든 지하수가 빠져나가면 흙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지층이 엷어져 그 공간으로 표층이 꺼지면서 싱크홀이 발생한다.

문제는 도심의 경우 지하수 이동을 예측하기 어렵고 싱크홀이 어디에서 발생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도심의 지하는 지하철, 상하수도, 대형 건물 지하층 등이 뒤얽혀 지하 구조물의 깊이가 제각각 다른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1970~1980년대 대거 시행된 도심 하천 직선화 사업이 싱크홀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인근 6차선 도로에는 가로 1m, 세로 1.5m 너비에 깊이는 3m 규모의 구덩이가 생기는 등 5차례에 걸친 싱크홀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싱크홀이 나타나 대형사고로 이어질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싱크홀에 대한 이렇다 할 대책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도로침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노후 하수관로(30년 이상)만 전체 하수관로의 48.4%(5030km)에 달해 추가적인 침식이 예상되고 있는데다 정부는 도로 아래 지반상황, 상하수도 위치 등에 대한 상세한 지하구조물 지도조차 없어 대책마련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도심 난개발과 행정편의주의식 업무처리 때문에 국민들이 위험에 노출된 꼴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은 답변을 둘러댔다.

서울시 싱크홀 담당자라는 한 관계자는 “싱크홀은 상하수도 공사와 지하철 공사로 일어난 침식문제가 가장 크다”며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가 됐기 때문에 현재 상수도본부나 하수도과에서 대책을 세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싱크홀로 인한 피해보상에 대해 “원인을 알게 되면 관련 과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책을 수립 중”이라며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걸 은연 중에 드러냈다.

게다가 각 정부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한 부처의 관계자는 “우리도 (싱크홀)조사 관련 별도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도로에 상하수도 누수로 싱크홀이 발생했다고 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안전을 총괄하는 것은 안행부지만 도로를 관리하는 것은 국토교통부고 또 상하수도를 관리하는 것은 환경부다. 이런 상황이라 싱크홀이 발생해도 부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언론이나 국민은 중앙부처가 나서서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현재 싱크홀 등의 사고관리책임은 각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자체의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무작정 나설 수는 없는 일”이라며 “지금 관련 중앙 부처들도 관심을 갖고 각자 대응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부서 하나만 관심을 갖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싱크홀을 이렇게 방치하다 ‘육상 세월호사건’이 발생하지나 않을지 우려가 된다며 "큰 인명피해가 발생해야만 대책마련에 나서는 악습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땅을 파려면 지하구조를 알아야 하는데 관련 자료가 없이 공사했다. 98년도에 내가 직접 지질지도를 서울시에 만들어 줬는데 쓰이지 않았다"라며 "세월호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언제 또 터질지 모를 일이다. 우면산 산사태 사고가 터진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산을 무작위로 개발하면 산사태가 나는 것이고 하천을 메우고 개발하면 침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서울뿐 아니라 모든 도시가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금 통합관리시스템이 없다. 토목공사를 하려면 지반과 상하수도 자료 등 통합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즉 지반구조도가 있어야 땅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자료는 고사하고 각 부처가 따로 놀고 있어 통합재난지반관리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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