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얼마전 대한변협에서 신정근 성균관대 철학교수를 초청하여 장자 강의를 열었다.

강의 제목은 ‘거꾸로 사는 삶에서 놓여나기’다. 거꾸로 사는 삶에서 놓여나기라…. 거꾸로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장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喪己於物, 失性於俗者, 謂之倒置之民.(상기어물, 실성어속자, 위지도치지민)’ 신교수는 이 구절을 설명하길, ‘외물에 가리어져 자신을 잃고 속세에 빠져 본성을 잃은 사람, 이들을 전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사는 삶에서 놓여나기’란 이런 전도된 삶, 즉 거꾸로 사는 삶에서 놓여나야 한다는 것이리라.

신교수는 ‘喪己於物’을 외물에 가리어져 자신을 잃는 것이라 하였는데,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失性於俗’ 또한 달리 말하면 세속적인 욕망에 빠져 인간 고유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고….

요즈음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오로지 출세의 욕망에 빠져 남을 짓밟고서라도 올라가려 하고, 어떻게 하든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남을 속이고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 배신하면서도 물질에 취하는 사람, 또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우쭐해 하는 여자들, 자녀들에게 인간된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경쟁사회에서 남을 이기는 방법만 가르치려는 학부모와 선생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참 자아를 잃은 倒置之民이리라. 신교수는 이러한 현대인의 삶을 주사(走思), 좌치(座馳), 즉 달리면서 생각하고, 앉아서도 달리는 삶이라고 한다. 좀 더 부연한다면 이들은 달리면서도 오로지 자기 이익과 관심사만 생각하고, 잠시 앉아서 쉴 때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자기의 이익과 관심사만 들어차 있기에 도대체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신교수는 또 거꾸로 사는 삶이란 물구나무 서기가 아니냐며 사람들은 몸의 물구나무 서기는 힘들어서 오래 하지 못하는데, 생각의 물구나무 서기는 힘든지를 모르기에 거꾸로 사는 삶을 그대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신교수는 ‘倒懸(도현:거꾸로 매달림)에서 懸解(현해:거꾸로 매달림에서 풀림)로’ 즉 거꾸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신교수는 좌치(座馳)하지 말고 좌망(座忘)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좌망(座忘)의 상태에서는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안시이처순 애락불능입), 즉 때에 편안해하고 순조롭게 굴며,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또 ‘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타지체 출총명 리형거지 동어대통), 즉 손발과 몸을 늘어뜨리고 귀와 눈의 소식을 물리치고 몸을 잊고 지식을 버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는 도(道)와 같아진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혹시 우리는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으면서 이게 정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교수는 손에 물건을 가장 오랫동안 힘 들이지 않고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손바닥에 올려놓는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자. 그저 편안히 있으면 있는 대로,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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