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속인 심진송
부부간 문제 있을 땐 ‘족집게’처럼 잘 맞춰

“굿도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율동미가 있어야 남보기에도 좋은 겁니다. 나는 비록 ‘신엄마’로부터 굿하는 법을 전수받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는 배우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왠지 내가 모시는 신령들이 굿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어요.”

심진송은 그 대신 영적인 경험을 보다 깊이 쌓으려고 산을 찾아가 기원을 올리는 일에 열중했다고 말했다.

“북풍이 몰아치는 섣달에도 신령님들로부터 영험을 얻기 위해 산에서 치성을 올렸습니다. 보통 암자에 며칠씩 묵으며 신과 산의 정기를 받아들였고, 백일기도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원래 몸은 허약했으나, 강단으로 끈기있게 기도을 올렸습니다.”

심진송을 통해 전달되는 사명대사의 ‘말씀’이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고, 점집이 비좁자 심진송은 부천에서 가까운 시흥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명대사 신령을 모시는 ‘도광사’라는 암자를 차린 심진송은 본격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화복길흉에 대한 점을 풀어나갔다.

그녀의 점은 특히 부부간의 문제에서 ‘족집게’처럼 잘 맞힌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 외국에 사는 교포들도 알음알음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한 번은 독일에 사는 교포부인이 찾아왔어요, 그녀의 남편은 독일인으로, 모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는군요.

그런데 그 교포부인인 독일인 남편의 주벽과 바람기를 고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으러 왔던 겁니다. 그 부인은 ‘생년월일을 양력으로 넣어도 점괘가 나오겠냐’면서 묻더군요. 가능하다고 대답해 준 다음 나는 치성을 드려 기도를 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뒤 독일에서 그 부인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결려왔습니다. 치성을 드린 효과가 나타나는지, 남편이 그 좋아하던 술도 끊고 여자도 멀리한다며 좋아했어요. 다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게 된 그 부인은 그 후에도 가끔씩 국제전화를 걸어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안부를 전해오곤 합니다.“

신내림 때 기원...애정문제 ‘해결사’로 소문

“독일교수 부인을 비롯해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이따금 찾아올 때 재미있는 현상은 제가 다리를 펴고 점을 본다는 겁니다. 보통 땐 앉은 자세로 점을 보다가도 외국에 사는 사람들이 오면 저도 모르게 서양식으로 다리를 쭉 펴지 뭡니까. 우리 (사명대사)할아버지께서 습관을 그렇게 들여놓은 것 같아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심진송은 부부관계의 점을 잘 본다고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남녀간의 ‘바람기’를 잘 잡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제가 부부간 애정 문제의 ‘해결사’역할을 잘 해내는 까닭은 신내림을 처음 받았을 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갈구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사는 우선 가정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신을 받을 때 가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기원했던 겁니다. 그것은 정의 정심 정도로 가라는 사명대사 할아버지의 뜻과도 일치해도. 할아버지도 첩실이나 외간남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남녀를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심진송이 점집을 낸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30대 초반의 여인이 초췌한 얼굴로 찾아왔다.

심진송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점을 치로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깥 양반 첩 떼어 달라고 왔지?”

그 여자는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느냐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애 아빠가 오래 전부터 딴 여자를 만나 이중 살림을 하고 있는데, 최근엔 여섯 살 난 애까지 새 여자가 데려가 키우려고 하지 뭡니까, 이젠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 같아 깨끗이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까 고민 중인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재혼 해 봐야 얼마나 좋은데 시집가겠수, 기다려. 남편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게 될테니.”

심진송은 굿을 해 줄 테니까 3개월만 기다려 보라고 일러줬고, 그 여자는 그 말을 따르길 했다.

“과연 우리 할아버지의 예언대로 3개월이 지나자 아이부터 먼저 돌아왔고, 뒤이어 남편도 잘못했다고 사죄하면서 ‘첩살림’을 청산하더라는 겁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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