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일약 야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부각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한강종합개발은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민선 6기의 화두 중 하나로 '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박 시장으로서는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최전선에서 추진하는 한강종합개발을 모른 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말 박 시장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1일 단독회동을 한다는 사실이 기재부로부터 흘러나왔고 서울시도 이를 확인해줬다.

▲ 악수하는 최경환 부총리-박원순 서울시장
정부 경제 수장과 최대 지자체 수장간 만남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종종 있었다. 하지만 따로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근 8년만이다.

기재부쪽에서는 이날 회동이 박 시장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앞서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의 일환인 한강종합개발에 대한 양자간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시의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다. 박 시장은 재선과 함께 줄기차게 최 부총리와의 만남을 요청해왔다고 한다. 기초연금 등 정부 복지정책의 일방적 시행에 따른 서울시의 재정난 해소와 노후지하철 교체 등 안전예산의 정부지원 등이 관심사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재정난 해소와 안전예산 확보를 위한 정부측의 도움을 계속 요청했는데 한강종합개발이라는 엉뚱한 제안이 온 셈이다.

어쨌든 이 같은 입장차와는 달리 박 시장과 최 부총리는 1일 단독회동의 주제는 한강종합개발로 요약됐고, 언론 역시 그 부분에 집중했다.

최 부총리는 모두 발언 뒤 이어진 비공개로 회동에서 '한강 및 주변지역 관광자원화'에 대한 정부의 계획을 설명했고, 박 시장도 일정부분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와 서울시는 한강관광자원화를 위한 마스터 플랜을 내년 상반기까지 수립키로 하고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 차관, 서울시 부시장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국가하천이지만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미래를 정부와 서울시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모양새가 나온다.

앞서 최 부총리는 지난달 초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한강을 파리의 센강, 런던의 템스강, 상하이의 황푸강과 같이 고급 유람선과 화려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한강 숲 조성, 세빛둥둥섬과 노들섬의 관광자원화, 유람선 경쟁체제 도입, 전시장 및 공연장 확충, 선착장에 쇼핑몰과 문화시설 설립, 지하통로와 오버브리지(구름다리) 건설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의 센강, 런던의 템스강, 상하이의 황푸강처럼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고급 유람선이 떠다니는 한강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어디선가 익숙한 그림이 떠오른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벌였던 4대강 사업,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재료들이다.

두 사업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전자는 환경파괴, 후자는 막대한 재원 소요라는 걸림돌을 치워내지 못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최 부총리가 그리는 미래 한강의 모습이 어떨지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4대강 사업과 한강르네상스의 중간 지점이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한강종합개발에 관한 서울시의 입장은 생태계 보존에 방점이 찍혀있다.

서울시는 한강생태계를 한강종합개발 이전으로 돌려놓는 것을 골자로 한 '2030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을 지난 3월 발표한 바 있다.

한강 하안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갈대나 물억새 등을 심어 자연하안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라진 모래톱을 복원하고 여의도 공원 5배 규모의 숲을 만든다고도 한다.

설핏 개발에 무게가 실린 정부의 한강종합개발과 상충돼 보인다.

이 때문에 이미 개장한 세빛둥둥섬은 차치하고 생태계의 보고라는 노들섬 개발, 공연장 및 쇼핑몰 건설, 지하통로 건설 등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대립각 세울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카드를 마냥 거부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단독회동에서 박 시장이 요구한 복지재원의 정부 지원 여부를 결정할 이가 최 부총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부쩍 늘어난 안전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지원이 절실한 박 시장으로서는 최 부총리가 내민 한강개발 카드를 일정 부분 수용해야하는 부담감이 있다.

박 시장으로서도 정부가 제안한 한강개발 카드에 솔깃한 면이 없지 않다. 그는 평소 한강의 미래모델로 영국의 템스강을 자주 언급한 바 있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강을 경제활성화의 교두보로 지목하고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오 전 시장 시절 한강르네상스의 실패가 재원마련에 따른 리스크에 있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정부가 개발에 따른 돈을 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잘하면 정부와 서울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게 한강종합개발이다.

이 때문에 생태계 보존이라는 서울시의 요구가 적절히 가미된 한강종합개발이라면 순항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박 시장이 최 부총리와의 만남 이후 "한강 및 남산 개발에 있어 생태 보호를 강화한다는 서울시의 원칙과 정부의 개발방침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박 시장의 소속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우군인 진보진영 시민단체다.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유망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투자활성화 대책 발표 직후 "사실상 의료영리화, 환경파괴, 그리고 도박산업 육성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강종합개발에 대해 별도의 논평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시민단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정부가 내년 초 내놓을 구체적 계획이 나오지 않아 아직 뚜렷한 입장을 자제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이미 넌더리를 낸 이들이 한강개발에 호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발이 잘 되든 못 되든 박 시장이 정부의 들러리를 섰다는 비판도 동시에 나올 수 있다.

박 시장이 최 부총리와 손을 맞잡았다고 해서 한강종합개발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어려운 배경이다.

내년초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한강종합개발은 박 시장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기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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