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동지회 하례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장의원! 이럴 수 있는거요?

하루 종일 축하전화에 시달리다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은 밤 10시경. 채 옷도 벗지 않고 앉아있는데 아내가 전화를 받더니 ‘상도동 김대표 전화인데요’ 하는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격려전화이려니 했다. 그런데…

“나요, 김대표요!”

“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이세요?”

“늦으나마나…나참 장의원! 이럴 수 있는거요?”

“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신문 좀 보란 말이요, 신문!”

“무순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도대체 무슨 신문 말입니까?”

“내일자 세계일보 말요, 세계일보! 장의원, 이거 이렇게 의도적으로 해도 되는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란 말이요!”

김영삼 씨는 상당히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는 자기 할 말만 막 하고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겨버렸다. 전 후 사정도 모르는체 일방적으로 당한 꼴이었다. 나 역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대변인실로 전화를 걸었다.

“내일자 세계일보 가판을 좀 구해서 읽어 줄 수 없겠소?”

“가만있자…어라? 이거 톱 타이틀이 <부산 경남지역 민정계 압승>인데요?”

부산 경남 지역 민정계 압승이라!

나로서도 참 느닷없는 일이었다. 당시 각 지역의 당 조직원들은 당선자 뒤에 민정계다, 공화계다, 민주계다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붙이며 재부 집계를 한 모양인데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민정계가 90% 정도로 나타났고, 그만 이것이 세계일보 기자에게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상도동계 사람들은 또 이 가판을 구해 빨간 언더라인까지 쳐서 김영삼 씨에게 올린 것이다.

김영삼 씨로선 부산 경남지역이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데, 바로 그것에서 민정계 압승이라는 보도가 나갔으니 큰 충격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선거대책본부장이 나였으니 내가 이런 정보를 흘렸기 때문에 그런 기사가 나간 것 아닌가, 판단한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후 사정을 알아보며 어떻게 된 건지 묻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대는 법이 어디 있나. 싶어지면서 여간 화가 나는게 아니었다. 나는 바로 김윤환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억울해 죽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허허…나도 받았어요.”

“아니 그럼 그쪽에도?…그나저나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

“낸들 아나요? 아마 사무처 직원들이 구분해 달라 하니까 그렇게 나간 모양이요.”

전화를 끊고 나니 ‘이거 괜히 분란의 소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계일보 정치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당신들 말요! 남의 집안싸움 시킬 일 있습니까? 민자당이면 다 민자당이지 거기에 왜 곡 민정계니 민주계니 토를 다느냔 말요?“

“ 사실 아닙니까?”

“사실이나 뭐나…그렇지 않소? 지금 꼭 그런 토를 달아서 남의 집안에 분란을 일으킬 일이 뭐 있냐 그 말이요, 그리고 그 보도 말요, 내가 다 잃어봤는데 그거 다 정확하지도 않아요, 설령 무슨 계니 무슨 계니 싣고 싶다해도, 정확히나 알아보고 해야 하는 것 아뇨?”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는 내 말에 그 쪽은 주춤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정확성’의 여부를 놓고 계속 그 쪽을 몰아세웠다. 그 쪽 역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는듯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알았습니다.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정의 차원이 아니라…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 가지고 남의 집안 분란 일으키지 마시고…없던 걸로 합시다.”

“…알았습니다.”

일단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당 최고대표위원인데 일간지 보도 하나 가지고, 모른 척 하면 끝나는 일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몰아세울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어제의 가판 기사가 아예 없어진 세계일보 신문을 들고 김영삼 대표 방으로 갔다. 역시 상도동계 의원들이 모여 있었다. 막 들어서자 당시 김우석 의원이 나를 맞았다. 그 역시 어제의 일을 잘 알고 있을 터였고, 내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가자 미안했던지 유별나게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부총장님! 어서 오십시오. 가만 차는 물로 하시려나? 커피?…”

“차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대표위원 나오셨으면 제가 좀 뵙자고 전해주시오.”

“지금 말씀중이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그 때 막 대표방에서 김덕룡 의원이 나왔다. 나는 김의원이 나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김대표는 반색을 하며 나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어서 와! 내 어제는 미안했소! 장의원, 잊어요. 잊어!.…가만, 차를 마셔야지? 뭐 드실거요? 어, 야…여기 장부총장 차 좀 가져와야지? 커피? 커피 괜찮죠?”

“지금 차 마실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어영부영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싶었기에 얼굴을 풀지 않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김우석 씨 등이 나서며 거들기 시작했다.

“우리 총재님이 말이요,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화를 안 내시는 분입니다. 다 부총장님을 믿으니까 화도 내시고 그런 것 아니요, 부총장님 그만 잊으십시요.”

아에 내가 말할 틈을 주지도 않고 어떻게나 옆에서들 서둘러 대는지, 부득불 계속 따지고 나가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나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뭔가 오해를 하셨던 모양인데…저야말로 계파간의 간격을 없애기 위해, 이번 선거대책본부 안에도 민주계에서 일하던 사람을 일부러라도 꼭 끼워넣고 그랬습니다. 이제 한 식구라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 훈련도 시킬 겸 이것 저석 중요한 일도 맡기고 그랬고…제 딴에는 이렇게 노력을 한다고 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로서도 참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그걸 모르나! 부총장 애쓰는 것 내가 잘 알아요. 아무튼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합시다. 잊는 거요, 잊었죠?”

하루 종일 격려 전화 받기에 바빴다가 밤늦게 찬 물 한 동이를 뒤집어쓴 그 일은 일단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지자제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당내에서는 대선을 향한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되었고, 결국 김영삼 씨와 정면에서 부딪쳐야만 했던 내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인들 어찌 이것을 상상이나 했으랴.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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