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아름다운 노파’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 보부아르

 

 

마르세유는 항구다.

항구의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하늘은 너무 파랗다. 저 멀리 위풍당당한 구름들이 흰 돛을 펼쳐서 꿈결처럼 항해를 하고 있었다. 파도가 잔잔히 일며 뜨거운 햇볕 아래 바다가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아프리카 쪽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이브라함의 얼굴을 스쳤다.

바다 새들은 방파제 위를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빙빙 떠돌다가 높이 날아올라 남쪽으로 사라졌다. 바다 새들의 푸른 눈빛은 먼 바다와 긴 항해, 자유로운 비상을 동경하고 있었다.

바다는 해안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모습을 바꾼다. 초록색이 점점 짙어지면서 검푸른 색으로 변하였다. 낮이 서쪽으로 물러가고 땅거미가 내려앉는 광경을 바라본다. 어둠이 야금야금 항구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방파제의 가로등에 하나 둘씩 파리한 불빛이 들어오고, 그것은 별빛처럼 간신히 지중해의 밤을 밝힌다. 신항 부두에 정박해 있던 낡은 화물선이 높은 굴뚝에서 짙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희미한 어둠 속에서 좁고 기다란 수로를 연체동물처럼 느리게 빠져 나와 막 불이 켜지기 시작한 등대를 지나고, 마지막 부표를 지나면서 뱃고동을 길게 울려 항구를 향하여 이별의 인사를 하였다.

그 고동소리가 항구로 퍼지면서 짧게 메아리치다 바람에 날려 갈기갈기 찢어졌다. 도시의 황금색 불빛에 가려진 마르세유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배는 아시아를 향하여 긴 항해를 할 지 모른다. 또는 모잠비크 해협 건너편에 있는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작은 항구로 향할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이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홍해로 빠져 나가리라. 맑게 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수정처럼 맑은 홍해의 바다를 배가 남쪽으로 달릴 때는 강하고 시원한 맞바람이 불어와 정말 상쾌할 것이다.

선원들은 갑판에서 담배 연기를 여유롭게 내뱉으면서 그 쾌적함을 마음껏 즐길 것이다. 왼쪽으로 메카를 순례하는 무슬림이 다녔던 헤자즈의 순례의 길을 헤아리면서, 또 에덴동산을 쫓겨난 후 평생 농사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브가 도시의 성곽 바로 옆에 묻혀 있었던 지다를 지나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덴만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난바다로 나가면 무역풍에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집채만 한 파도가 곤두박질치며 솟구치고 부서지면서 인정사정없이 그 작은 배를 덮칠지도 모른다. 그때는 배가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휘둘리며 신음소리를 토해 낼 것이다. 그래도 노련한 항해사는 그 파도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이브라함은 여관 주인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근 5년간이나 안정적으로 일했던 그 여관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넌 착한 아이야. 넌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괜찮은 사람이었어. 아니야, 너만은 아프리카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정직하고 ……. 불평할 줄도 모르고. 불법체류는 문제될 게 없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급료도 매년 인상해 주었잖아, 네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조금 더 올려줄 수도 있지. 하여간에 떠나지는 마. 네가 가버리면 내 옆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지. 너는 떠날 수가 없을 거야. 나중에 얘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나를 받아준다면 이 여관의 삼분의 일을 공동상속으로 넘겨줄 수 있지. 그러니까, 네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공증 유언장을 해줄 수도 있을 거야.”

이제는 더욱 늙어버린 엘리제가 읽던 책을 덮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작은 사무실의 희뿌연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면서 숨이 가쁜지 느릿느릿 말하였다. 그녀는 어느새 6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 중늙은이가 다 되었다. 체중은 더욱 불어나고 목둘레가 두터워지면서 이중턱이 되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혼자 사는 늙은이 특유의 어딘지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숨길 순 없었다.

만날 보았던 그 작은 공간의 풍경들이 그날따라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대개 오전 10시쯤이면 3층 건물의 여관에 도착하여 늙은 여자 주인으로부터 마스터키를 넘겨받은 다음 좁은 층계와 복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묵은 때를 화학약품으로 문질러 닦기도 하고, 매 층마다 통로 끝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청소하였다.

그리고 비어 있는 이 방 저 방들을 정리하는데 투숙객들은 대부분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휴대품이 간단하였고, 여관의 방 역시 비좁았다. 방 안에는 나무 침대 하나가 창 쪽으로 놓여 있고, 옷장 하나, 네모난 탁자 하나, 회색 천을 씌운 의자가 둘, 아주 작은 세면대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때가 끼고 낡아빠진 것들이었다. 방의 벽에는 풍만한 가슴을 한 요염한 여자들의 나체사진들이 붙어 있었고, 지독한 담배 냄새와 함께 남자들의 정액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는 20여 개의 방 정리를 아주 간단히 해치울 수 있었다.

그가 여관에서 일을 끝내고 오후 두세 시쯤 여관을 나설 때면 지중해의 태양은 여전히 하늘 높이 걸려있었고, 그는 내리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뛰다시피 하여 그 식당으로 가서 밤늦게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 무렵, 그는 그 선착장에서 마르세유가 2,500여 년 전 마그나 그라이키아 시절부터 항구였던 구 항구의 바다 쪽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마르세유의 별미인 부야베스를 전문으로 하는 한 레스토랑에서 몇 시간씩 접시 닦기, 청소 등 잡일을 하는 부업을 하였다.

그녀는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하였다. 그리스 출신으로 대형 화물선의 항해사였던 첫 남편에게서만 남매를 낳았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었다.

“그래도, 가장 괜찮은 사람이었지. 근데 방랑벽이 너무 심했어.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사람이었어. 바다가 그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지. 난, 외로워서 이혼할 수밖에 없었지.”

큰아들은 지금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겨우 정착해서 그곳 시골 도시의 작은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아들은, “어머니 전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도대체 기대하지 마세요. 여자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마누라는 정말 질색일 거예요. 더욱이 애들도 싫으니까요. 애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결혼을 거부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크레타는 그리스 문명의 원천이자 그리스 신들의 고향이지. 내가 남편 때문에, 그 녀석 때문에 그리스에도, 크레타에도 가끔 갔었지. 그러나 오스만 터키가 5백년이나 크레타를 지배했어. 그것도 그리스가 독립한 후에도 아나톨리아 이교도들은 한동안 크레타에서 물러나지 않았지.

그동안 그들은 크레타 사람들을 지독히도 핍박했지. 그러나 그때 그리스 본토와 러시아 차르는 남의 일인 것처럼 뒷짐을 지고 있었어. 그래서인지…… 크레타 사람들은 터키인과 이슬람이라면, 그리스 본토 사람에게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를 갈았지.

그곳 섬사람들은 반항적이고, 난폭하고, 죽음에 거침없이 맞서고, 거칠기로 소문났지. 욕심 많고, 게걸스럽게 먹고, 거짓말도 잘 하고. 그러니까……호락호락하지 않거든. 그 애는 그런 곳에서 부대끼며 그럭저럭 잘 견디고 있지. 그러다가…… 앙팡지고 드센 크레타 여자에게 코가 꿸 수도 있겠지.”

반면에 딸은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네갈의 다카르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서 현지 직원으로 근무하는 보잘 것 없는 흑인과 7년 전에 결혼하였다. 그 딸은 아프리카 여행 중 다카르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녀가 그때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프리카 사람, 흑인 모두 지긋지긋 하구나. 가난하고 냄새나고. 이 여관에서도 매일 같이 그들을 쳐다봐야 하니까. 더욱이 말이야…… 네가 아프리카의 그 지독한 기후 풍토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그 결혼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을 것 같구나.” 그 딸 역시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전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이 좋아요. 프랑스보다 더 좋다구요. 아프리카의 연중 내내 계속되는 무더위, 덥고 습한 기후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거든요. 엄마가 반대해도 어쩔 수 없어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엄만 상관하지 마세요.”

그 딸은 결혼 후, 백인 피가 반, 흑인 피가 반이 뒤섞여 있지만 거의 흑인에 가까운 진한 초콜릿색 피부의 예쁜 딸 하나를 낳아 기르면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남매는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여름 휴가철 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그녀를 방문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남매는 정확히 그녀가 이혼한때로부터 자신들을 배반한 아버지는 물론이고 죄 없는 어머니로부터도 (마음속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것이다.

아마, 엘리제가 죽을 때쯤에서야 유산 분배 때문에 찾아올 것이다. 그녀는 그때 넋두리처럼 그렇게 말했다. “난 자식들과 손자에게 둘러싸여 편안히 숨을 거둘 수는 없을 거야.”

이브라함이 어느 날 밤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밤은 정말 황홀하였지. 여자가 연신 포도주 잔을 가득 채웠고…… 그 구린내 나는 연한 치즈 덩어리와 삶은 닭다리를 입 속에 계속 넣어주기까지 했거든. 우린 상당히 취했지. 여자는 시시각각 젊어지기 시작했어……. 짙은 목 주름살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기분이 너무 들떠서 얼굴이 빨개지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는, 스페인계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과 궁핍했던 어린 시절, 엄마의 재혼, 기숙학교 시절, 재치 있고 친절했지만 주정뱅이였던 첫사랑 이야기,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겼지만 여자만 만나면 모아놓은 돈을 물 쓰듯 써버리는 두 번째 남자, 어처구니없는 결혼과 이혼, 자식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를 한참 동안이나 더듬거렸어……. 술기운 때문에 문득 생각이 난 모양이었어. 그리고 뜸을 들였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향수 냄새가 진하게 코끝을 간질이기 시작하고……. 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닿을 듯이 가까이 들이민 거지. 여자의 눈이 게슴츠레해지면서…… 시선이 불타기 시작한 거야. 마침내 그녀의 파마한 머리칼로 불이 번져서 활활 타올랐어. 그 불꽃이 나를 태울 것처럼 보였지.

그녀가 그때 열에 들떠서 말했어. ‘우리가 팔다리를 벌리고 꽉 끌어안고 하나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난 여자이고, 넌 남자이니까. 하나님이 애초에 인간을 그런 식으로 만들었지. 하나님이 일찍이 말씀하셨지. 남자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여자와 짝을 이룰 것이니, 그 둘은 한 몸으로 붙을 것이다.’

나 역시 몸이 달아오르고 온몸의 뜨거운 피가 사타구니로 몰리는 느낌이 들었지. 관자놀이는 흥분 때문에 팔짝팔짝 뛰었고……. 그건 참으로 황홀한 기분이었어.

그러나 난, 그때 엉거주춤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어.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자의 이글거리는 눈과 그 거대한 몸통이 너무 탐욕스러워 보였거든. 그 여자는 육식을 탐하는 사마귀 암컷처럼 일이 끝나면 또는 일이 진행되는 중에도 수컷을 집어삼킬 것으로 보였던 거지. 그 반사작용으로 나는 살인의 고의를 느꼈을 거고, 그래서 그녀의 목을 졸랐을지도……. 그건, 내가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고 흥분한 몸에 올라타 압박을 하면서 키스를 퍼부을 때 손가락에 그녀의 부드럽고 두터운 목살이 느껴질 것이고 그 순간 손목의 강력한 힘으로 목을 조르는 듯 꽉 누르기만 하면 그녀의 숨이 막혀 죽는 거였어.

(그런데 사마귀의 교미 과정은 이런 거야.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가서 자신의 신성한 책무를 끝내려고 몸부림치고 있을 때, 그 순간에 벌써 녀석의 머리통이 점점 사라지는 거야. 암컷이 수컷의 그것을 아삭아삭 씹어 삼키는 거지. 그 다음에는 수컷의 목을 잘라서 꼭꼭 씹어 삼키고, 곧이어 아직도 살아 꿈틀대는 수컷의 몸통을 물어뜯는 거야.)

난, 결코 금욕주의자는 아니지만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할 수는 없었지. 한번 빠지면…… 난 젊었으니까 걷잡을 수 없었겠지. 그러나 여자의 자존심을 뭉개서는 안 되었지. 멸시 당한 여자처럼 무서운 복수의 여신은 지옥에도 없으니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면서 공손하게 말했어. ‘전, 이 순간 자제를 해야 합니다. 주인님의 충직한 하인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주인님을 정중하게 모실 의무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여자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어. ‘아프리카 검둥이도 늙은 것은 싫다는 거겠지. 너는 젊은 남자라고 으스대고 있는 거야. 거만하게 내 불쌍한 늙은 육체를 내려다보며 경멸하고 있는 거야. 늙는 것은 정말 싫어…… 이브라함…… 네 이름은 왜 그 모양이야. 아브라함이거나, 아니면 이브라힘이어야지? 헷갈리지 않아! 그건 그렇고 말이지, 넌 애당초 천당에 가긴 글렀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지만, 여자를 내버려두는 남자만은 질색이거든. 여자는 여자인거야. 인간이기 전에 먼저 여자란 말이지…….’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엘리자는 자상한 주인이었고, 나는 충실한 종업원이었을 뿐이야…….”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내가 그녀를 거절한 건, 그건, 사실, 명백히 아프리카 흑인의 뿌리 깊은 열등의식 혹은 백인에 대한 잠재된 반항의식 때문이었어.”

남부 프랑스 출신인 엘리제는 이브라함을 진짜 사랑했을까? 늙어가는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이 아직도 살아 있었을까? 그 사랑의 감정이 그녀의 꺼져버린 욕망에 불을 지피고 술기운을 빌어 그를 유혹케 하였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냄새나는 아프리카 검둥이들을 몹시 혐오하였고 마음속으로부터 멸시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단지 그가 성실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더욱이 싼값으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지금껏 데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그 당시 너무 외로웠고 (자식도, 남편도, 친구도 곁에 없었으니까) 아직도 사랑에 대한 아련한 미련 역시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고, 오랜 세월, 무려 5년간이나 매일 그를 지켜보면서 검둥이에 대한 편견과 역겨운 냄새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고, 그래서 그날 저녁의 황홀한 분위기가 그녀를 달뜨게 하였던 것이다.

이브라함은 그녀가 일찍이 만나지 못했던 남자, 지금 곁에 있는 유일한 남자, 젊고 건강한 남자라고 새삼스럽게 인식되면서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유혹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인이 아니야. 그는 흑인 왕을 닮았어. 육체는 서로 가까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이 육체의 욕정으로 변해서 활활 불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서 모성애를 느꼈기 때문에 가지게 된 근친상간 같은 금기 사항, 늙은 여주인과 젊은 하인 간의 종속 관계에 따른 금기 사항 같은 것은, 그러나 그건 깨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브라함이 그녀의 마음을 텔레파시, 이심전심으로 나마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의 일방적인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늙은 여자의 젊고 건강한 남자에 대한 애처로운 짝사랑.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추한 것이라고 또는 부정한 것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그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멋진 잠언을 하나 찾아냈지요.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옳다. 비록 틀렸다 할지라도’라는 거지요. 루터는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진정한 사랑은 종종 틀린다.’라고 말이에요. 이는 나의 잠언보다 못한 것 같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루터는 이런 말도 했지요. ‘사랑은 모든 것에 앞선다. 희생이나 기도보다 앞선다.’ 결국 사랑이야 말로 최상의 덕목이에요.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서 지상의 것을 지우고, 천상의 것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지요. 그래서 사랑은 우리를 모든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베티나 브렌타노

그 당시 그에게 특별한 희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오래 근무하다보니 그냥 여관이 싫어졌던 것이다. 그동안 잘 대해주었던 엘리제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엘리제는 철마다 프랑스 젊은이들이 입는, 요즘 유행에 걸맞은 옷과 신발을 사주고, 가끔 어머니가 자식에게 차려주는 것과 같은 정성스런, 포도주가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진정한 삶을 살려면 이따위 생활의 안정쯤은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지독한 가난 속에 내던져져 있으니까.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그런 후 이프 섬 선착장의 한쪽 귀퉁이에서 유럽 사람들에게 이국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프리카 산 액세서리 노점상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 온갖 종류의 번쩍이는 것들―팔찌와 브로치, 반지와 귀걸이, 채색한 유리구슬, 싸구려 은제 그릇 등―과 아프리카 토산품을 관광객을 상대로 팔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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