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휘엔, 배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처음 공개된 중국의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63) 감독의 신작 '5일의 마중'은 거장의 로맨스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통과한 한 가족의 와해와 결합을 장미머우 감독 특유의 유려한 연출력과 서정적인 촬영을 통해 '희망'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깊은 감정의 울림' '중하고 세련됨' '우아하고 간결한 장이머우' 같은 외신의 찬사는 허언이 아니었다.

장이머우 감독이 보여준 장인의 손길만이 '5일의 마중'을 기품이 넘치는 영화로 만든 것은 아니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완성도에 이바지했다. 매월 5일이면 이미 돌아온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가는 아내 '펑위안'은 공리가, 그런 아내를 지켜보며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남편 '루옌스'는 중국의 대배우 천다오밍,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결국 그를 사랑하는 딸 '단단'은 중국의 떠오르는 별 '장후이원'이 연기했다.

먼저 궁리(49·鞏利)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5일의 마중'에서 평생 남편을 기다리면서 산 여자의 외로움과 쓸쓸함, 슬픔을 작은 손짓과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했다. 격동기 중국의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한 여자를 통해 '희망'을 원하는 인류 보편의 모습을 한 인간에 투영하는 데 성공했다. '5월의 마중'이 던지는 기품 있는 메시지는 궁리를 통해 더 선명해진다.

궁리는 "이번 영화에서 연기한 '펑위안'이라는 캐릭터를 지금껏 맡은 역할 중 가장 연기하기 힘든 배역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이 도전을 통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궁리와 장이머우 감독의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이머우 감독은 데뷔작으로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금곰상을 받았다. 당시 궁리는 이 작품에 출연해 여배우의 탄생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그는 장이머우의 걸작 '국두'(1990) '홍등'(1991)에 출연했다. 1992년에는 장 감독의 '귀주 이야기'의 주연을 맡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94년에도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에 출연해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2007년 장이머우 감독의 '황후화' 출연 이후 그와 함께 영화 작업을 하지 않았던 궁리는 7년 만에 장 감독을 다시 만나 관객의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연기를 선보였다.

궁리는 '5일의 마중'으로 제51회 대만 금마상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 곁을 지키는 남편 '루옌스'를 연기한 천다오밍(59·陳道明)도 빼놓을 수 없다. 루옌스는 자신을 몰라보는 펑위안을 그저 바라본다. 기억이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함께 했던 날들을 아내에게 상기해보지만, 여전히 그는 루옌스를 모른다. 천다오밍은 이런 남편의 애절함을 나지막한 목소리와 깊은 눈빛으로 표현한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내의 눈을 바라보는 남편의 사랑은 천다오밍의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천다오밍은 국내 관객에게는 생소한 얼굴이지만, 중화권에서는 이미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인정받는다. 장이머우 감독의 2002년 작 '영웅:천하의 시작'에서 진시황을 연기한 배우라고 하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천다오밍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직접 쓴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이 기억에 특히 남는다. 정말 아름답고 감동저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1985년 중국 TV 드라마 '마지막 황제'에서 황제 '푸이'역으로 데뷔한 그는 수많은 사극에서 황제 역을 맡아 한때 황제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1999년 영화 '나의 1919년'으로 금계백화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궁리는 그를 "진정한 보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장이머우 감독과 함께 부산을 찾은 장후이원은 주목해야 할 배우다. 베이징무용학교 졸업생인 장후이원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직접 발굴했다. 딸 '단단'을 맡은 그는 신인배우답지 않은 감정 연기로 제 몫을 다했다.

그는 "궁리와 천다오밍 같은 대선배들과 연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연기뿐만 아니라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궁리와 천다오밍은 부산에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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