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선거가 끝나고 나는 당선 인사 차 지역 구민들과 도움을 줬던 지인, 동료들을 만나며 지역 순방을 하고 있었다. 4월 초에는 또 박태준 씨의 러시아 미국 순방에 동참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미리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당시 박태준 씨는 러시아와 미국에서 한 기관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모든 것도 결국은 대선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그런데 4․1일 만우절 새벽, 박태준 씨로부터 갑자기 좀 보자는 연락이 왔다. 새벽바람에 북아현동의 박태준 씨 자택으로 찾아갔다. 급박했던 전화 분위기와는 달리 막상 가보니 정동성 씨가 와 있었다. ‘저 양반과 내가 무슨 할 얘기가 있나?’ 아무리 짐작해 봐도 정동성 씨와 내가 굳이 박태준 씨 앞에서 나눠야 할 얘기는 없었다.
정동성 의원은 그 해 여주에서 출마해 낙선을 한 터였다. 선거 후 인사를 다니러 온 것인데 워낙에 호쾌한 사람인지라 겉으로는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보이지 않는 씁쓸함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박태준 씨의 분위기가 영 심상치가 않다는 점이었다. 아, 뭔가 있구나! 드디어 정동성 의원이 돌아가고 단 둘이 앉았다.
“지금 5월 전당대회를 한다 어쩐다 하는데…거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다는 것 아니겠소! 그러면 겨우 한 달 남았다 이거란 말요. 그런데…어차피 경선을 하겠다고 하니 우리 민정계도 후보를 내야 할 것 아니겠소? 사실 나는 …청와ㅏ대만 양해해 준다면 민정계의 대표로 내가 나서 볼 생각이요!”
그것은 분명한 출마선언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느낌으로 충분히 간파하고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자신의 출마의사를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아주 커요. 시간은 촉박한데 단독면담을 요청해도 자꾸 청와대측에서 피한단 말요, 그쪽에서도 내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닐 터인데 자꾸만 시간을 끌고만 있으니…도대체 어찌했으면 좋겠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과연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나는 일단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판단이섰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5월 전당대회는 너무 빠릅니다. 어떻게든지 이것을 미뤄야만 합니다. 명분은 충분합니다. 지금 총선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더군다나 여소야대 국면입니다. 지금 이 정국에서 전당대회를 한다는 건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당에서는 처음 해보는 경선인데 그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고, 경선의 좋은 의도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정국의 안정을 위해선 무소속을 영입하는 문제에 박차를 가해야만 합니다.”
상황이 급박해서 그랬는지, 아직 선거여파로 정작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문제들이 막 떠오르면서 내 얘기는 일사천리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입니다. 결론은 어떻게든지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서실이나 경호실에서 피한다면 직접 돌파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문을 보니까 곧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회장인 다케시다 노보르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던데요, 박 최고위원께서 한국측 회장이시니까 청와대 예방 때에 당연히 동행하실 것 아닙니까? 그 때 어떻게든지 자리를 마련하셔서 출마 의사와 함께 전당대회 연기건을 강력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게 좋겠구만.”
“아무튼 그럼 저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당선인사도 다 못한 터인지라 바로 안산으로 내려갔다.
열흘 후의 포기선언
나는 그 때만 해도 잘 될 것으로 믿었다. 지금 당장 대통령 후보를 뽑겠다는 것도 아니요, 일단 경선을 거쳐야 하고, 또 비록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민정계의 대표가 경선에 나가는 것을 청와대에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만우절로부터 불과 열흘이나 지났을까, 박태준 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내가 찾아가자 박태준 씨는 무슨 일인지 아무 말 없이 대뜸 내 손을 꽉 잡더니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한 마디를 던졌다.
“나는 출마 안하기로 했소!”
이건 도 무슨 소린가! 박태준 씨의 어투는 아주 단호했다.
“만나긴 만나셨습니까?”
박태준 씨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그야말로 만우절의 출마선언은 만우절의 이벤트로 끝나고 만 셈이었다. 거기에 대고 뭐라 일일이 물어보기도 참 난감했다.
“왜…올라가셨던 일이 잘 안되셨던 모양이죠?”
“…”
긴 침묵이 흘렀다. 상황으로 보아 정치적인 상황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얘기들이 오고갔음이 분명했다. 그런 것까지 내가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명색이 처음 치러지는 경선인데 민정계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건 뭔가 말이 안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오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져 오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박태준 씨가 새삼스럽게 나를 불렀다.
“장 의원!”
“예! 말씀하십시오.”
“지난 2년 반 동안 김영삼 씨를 겪어보면서 우리 얼마나 많이 얘기를 했소. 그 사람은 절대 대통령 감이 안됩니다. 그 사람 대통령되면 나라 망합니다. 이 사실에 우리 모두 동감했지 않소?”
“물론입니다.”
“그럼 이건 단순히 민정계의 향방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걸린 문제입니다. 청와대에서 이렇게 나온다고 가만히 잇을 문제도 아니고…며칠 수 중진들을 모아 얘기를 해보기로 합시다. 나는 이미 포기를 했으니 다른 주자를 뽑아서 경선에 나가봐야 하는 것 아니겠소!”
“예! 그럼 일단 중진들 간에 얘기를 모아보는 것으로 순서를 잡아보죠.”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