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세상은 공공연히 범죄가 넘친다.

살인과 악행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닌가!

— 토마스 키드

 

이브라함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이 2년 정도 계속되었을 당시 대충 18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 근처 어디에도 학교나 병원, 우체국 등은 없었기 때문에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부족은 나이 같은 것을 정확히 헤아리지도 않는다. 그가 어린 시절, 그곳엔 달력도 없고 시계도 없었다. 그래서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도 몰랐다. 언제나 같은 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날은 아주 길고 긴 날이어서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날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만날,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나이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그가 말했다.

“마을은 옛날부터 그랬지. 난, 그때까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적도 없었고, 다른 희망을 품은 적도 없었어.”

그는 화폐의 존재, 화폐가 사막의 물처럼 존귀하다는 것, 화폐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프랑스에서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

“오늘밤처럼 별이 총총한 밤에, 부모님과 동생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고향 마을을 떠나왔지. 그러나 함께 떠나온 세 사람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던 친구가 무참히 죽었어.

우리들은 반군의 거점을 우회하여 며칠쯤 밤낮없이 걸어서 타만라세트로 넘어갈 참이었지. 우리들은 그 당시 가냘픈 희망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었어.”

그들에게는 어쨌든 희망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앞날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그 희망 같지도 않는 희망을 동반하고 있었고, 차라리 그것은 한낮에 꾸는 혼란스러운 꿈처럼 환상에 다름 아니었다.

그때 말리 쪽에서 국경을 넘어온 친정부 게릴라의 분파로 보이는 무장 강도들을 사막의 협곡 좁은 길목에서 조우하였는데, 그 친구는 무방비 상태에서 이유 없이 그들의 예리한 칼에 난도질당한 끝에 살해된 것이다.

그들은 그때 북쪽으로 펼쳐진 분홍빛 모래언덕을 지나 남서쪽으로 뻗은 가파른 능선 골짜기 바닥을 지나고 있었다.

그 순진무구한 어린 친구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그 어린 것이 그렇게 잔인한 죽음을 당해야만 할 무슨 큰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나 미처 죄를 지을 틈도 없었다.

 

벨라 부족은 사하라 이남의 서아프리카에서 최하층민이었다. 수백 년 동안 아랍인과 다른 아프리카 부족, 투아레그족의 노예로 살았다. 그들 부족은 시꺼먼 피부에 투아레그와 비교하면 너무 왜소한 체격 때문에 못생기고, 아둔하고, 가난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되면서 다른 부족들은 심지어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의 외곽 쓰레기 하치장 근처의 더러운 곳에서 짚방석으로 지붕을 덮은 움막집을 짓고 살면서 주로 도시 또는 마을에 정착한 투아레그를 위해 일을 하였다. 여자들은 집안에서 빨래, 청소, 음식 장만 등 온갖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처리했고 때로는 주인의 성적노리개 역할도 했다. 남자들은 주인의 지시와 엄격한 감시 하에 바깥에서 농사일이나 목동 일을 하였다.

그들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전적으로 주인에게 의존해서 평생을 살았다. 그들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결혼도 할 수 없고, 여행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투아레그는 그들을 무조건 박해하고, 구타했으며, 개인 소유물 또는 동물처럼 취급하였으므로 매매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 부족은 세력이 거의 없는 소수 부족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들을 보호해주고 권익을 대변해 줄 단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젊었을 때 마을의 아저씨가 말리의 타우데니 소금 광산에서 캐낸 소금덩이를 낙타에 싣고 통북투에 팔러 갔다가 돈을 주고 사온 벨라 부족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노예로 살다가 주인 가족들의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나라우는 그 노예와 주인과의 사이에서 난 사생아였다. 주인의 묵시적 동의하에 그의 본처와 자식들은 그를 개처럼 취급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판에 그가 음식만 축내는 개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밥을 굶기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온갖 불행이나 심지어 가뭄까지도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까닭 없이 나라우의 등에서 피가 나도록 번갈아 가며 매질을 하였다. 그 가늘고 탄력 있는 몽둥이는 가죽 벨트처럼 휘어지며 그의 등짝에 붉고 시퍼런 상처 자국을 새겼다. 그 때마다 그는 피를 흘리며 극심한 통증 때문에 신음하면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소리 내어 울지도 못 하였다.

이브라함은 그를 너무 동정했기 때문에 간신히 설득해서 함께 탈출한 것이다.

 

“세 사람은 한 달 전부터 아무도 모르게 모의를 한 후, 한밤중에 마을을 빠져 나왔지. 우린 타만라세트에만 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알제나 카사블랑카, 페스, 마라케시, 라바트, 탕헤르 등 모로코의 큰 도시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들 도시에 가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지. 가령 말이야, 페스의 그 지독하다는 천연가죽 염색공장에서도 열심히 일할 각오가 돼있었어. 그 후에는 유럽 쪽 도시로 탈출할 생각이었지…….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야 되겠지. 우리는 그때 철부지들처럼 반항하기 위해 탈출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 오직 살기 위해서였거든…….”

그들은 말로만 들었던 너무나 그림엽서를 닮은 모로코의 하얀 도시들을 무작정 동경하였다. 그 아름다운 도시들은 흰색 물감으로 색칠한 그림 같을 것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사막을 통하여 쉽게 모로코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사막으로 이어진 국경에는 경계나 표지는 어느 것도 없고 국경 수비대가 지키고 있지도 않았다. 밀입국한 이들 불청객을 그 도시들이 환영할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무자비한 강도들은 그들 일행이 빼앗을 만 한 돈과 물건이 없는 무일푼인 것을 알고 갑자기 흥분하여 발작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들은 녹슨 구식 소총과 날카로운 칼, 호신용 부적으로 무장한 채 길가 풀숲에서 소리 없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노예처럼 두목에게 절대 복종하는 부하들 중 몇 명은 맨발에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또 다른 무리는 상체를 벗은 채 검은 가슴에 탄띠를 둘러매고 있었다. 깡마른 몸에는 상처와 흉터, 칼에 벤 자국, 옹이 투성이였다. 그 두목은 땅딸막한 체구에 뺨에는 긴 흉터가 있고 왼쪽 눈까지 실명하였는데, 일찍부터 술에 잔뜩 취해 횡설수설하면서 무기를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그들의 눈은 충혈 되어 광기로 번득이고 있었고, 무기는 잔뜩 살기를 품고 있었다.

나라우는 지금 어설프게 묶여있다. 이마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두터운 입술을 덜덜 떨고 있다. 초점을 잃은 두 눈에는 눈물만 그렁그렁한다.

두목의 두 눈이 빛났다.

두목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햇빛에 번쩍이는 예리한 칼로 나라우의 목과 가슴을 두서없이 찔렀고 따뜻하고 찝찔한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그는 모래바닥으로 무참히 허물어지며 공포에 질려서 외마디 비명소리 이외에는 신음소리조차 내뱉지 못했다. 그들은 검붉은 피를 보자 즐거운 나머지 희죽희죽 웃었다. 그들은 피 냄새를 음미하였고 피맛을 보기 위해 안달하였다. 그들에게 살인은 그저 기분 전환 행위였고 피는 쾌락의 원형인 동시에 거대한 충동의 뿌리였으니 대향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하들은 즐거운 축제를 위해 그 살인 행위를, 칼로 무자비하게 육체를 찌르고 짓이기는 행위를, 피를 쏟고 흘리고 흐르게 하는 행위를 두목에게 우선권을 양보한 것이었다.

피. 선홍색. 광기. 축제.

손에 피를 칠한 광신자들은 술에 취한 채 투아레그족 방언인 타마셰크어로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고, 피가 뚝뚝 흐르는 시체를 앞에 놓고 빙 둘러서서 장단에 맞춰 거칠게 춤을 췄다. 그리고 그들은 ‘검둥이들은 검둥이들은 증오한다.’고 외쳤다.

황홀경. 무아지경. 일종의 클라이맥스.

아프리카 비의교의 사제들은 살해한 시체의 살을 크게 도려내서 팜나무로 만든 화주인 쿠투쿠와 함께 날 것으로 씹어 먹었다. 칼은 점점 깊고 넓게 종아리를, 허벅지를, 배와 가슴을, 베어 들어갔다. 정교하게 단련된 칼날은 마치 연한 스테이크를 가볍게 써는 것처럼, 육신을 깊게 찌르고 갈라서, 살을 도려냈다.

“나와 사촌 형은 온몸이 칼에 찔려서,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도망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어. 우리들은 다음 날 그들의 식량으로 예비 되어 있었거든. 그들이 술에 취해 광란상태에 빠져 있을 때 끈을 풀 수 있었지. 그들은 뒤늦게 총을 겨냥했으나 녹슨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어. 그때, 우리가 24시간을 꼬박 걸어서 갈 수 있었던 곳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임시 난민촌 캠프 밖에 없었어. 형과 나는 그 캠프들을 전전하면서 몇 개월을 보냈지.”

그들은 그때 함께 캠프를 탈출해서 알제로 갔다. 알제에서 한동안 함께 지냈는데 의지할 수 있는 아무런 친척이 없었던 알제에서의 생활 역시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쳐있었고 여전히 고향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당시 형은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모로코 쪽으로 가길 원했고, 난 알제에 그냥 남았지. 프랑스로 가려고 기회를 노리면서 말이야. 프랑스가 유일한 희망이 돼버렸던 거야. 그때는 그럴 수밖에……. 그러나 알제에서 일 년 넘게 있었지만, 별로 할 얘기가 없어.”

몇 살 터울인 형은 유럽을 무조건 싫어했다. 그래서 이브라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도시인 카사블랑카로 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헤어질 때 형이 말했다. “넌 착한 아이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많은 행운이, 정말 행운이 따라줘야 할 거야. 신이 기도 소리를 외면하진 않겠지. 하지만 신이 세세히 살핀다고 믿지 마라. 신은 간절히 요청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는단다. 세상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느냐. 네가 다가가야 하겠지. 신께 기도하라. 기쁜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라.

알라 신이 네게 축복을 내리시고 널 보살펴주시기를! 알라 신이 빛나는 얼굴로 너를 돌아보시고 네게 온갖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를!”

그 후 형과는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 형이 가끔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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