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 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 외편 산목(山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신영복 선생의 번역 인용). 이 이야기는 그 다음에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마음에 욕심이나 이기적인 에고(ego) 등이 없이 비어 있다면 다른 사람과 부딪쳐도 다툼이 일어날 일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 사회에서의 모든 다툼은 서로의 욕심이 충돌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욕심은 버리려고 아무리 퍼내어도 또다시 금방 차오르는지라, 우리가 ‘마음을 비웠다, 비웠다’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마음속에 비우지 못한 욕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얘기도 된다.

장자가 말하려는 경우와 좀 다르긴 하지만, 어느 날 내 사무실이 있는 빌딩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사무실 빌딩 엘리베이터는 전에는 어느 층에 있는지 아무런 표시가 없다가,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숫자로 표시되고 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단추를 누르면 가까이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오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엘리베이터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미 어느 엘리베이터가 오겠다고 불이 들어오면 다른 엘리베이터가 먼저 와도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 때문에 아무런 표시가 없을 때에는 그저 묵묵히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가만히 있고 엉뚱한 엘리베이터가 오거나 먼저 오는 엘리베이터가 그냥 지나치면 짜증을 내고, 심지어는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위치 표시가 없을 때나 있을 때나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상황을 알게 되면서 잔잔하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며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이다.

무릇 이는 비교함의 마음이리라. 우리는 이익을 저울질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에도 이를 얻지 못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분명히 예전보다는 비할 바 없이 잘 살고 있음에도 범죄나 자살, 정신병이 오히려 많아진 것은 이러한 비교함에서 오는 분노나 좌절이 예전보다 훨씬 커진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익을 저울질 하는 마음도 결국은 욕심이다. 빈 배가 되자. 장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나에게 흘러와 부딪친들 해칠 일이 있겠으며, 흘러가며 더 큰 이익이 되는 것을 보아도 욕심의 파동으로 마음이 요동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