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A는 벽촌 출신이다.

그의 고향은 읍내에서 삼십 리나 떨어진 바닷가였다. 그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도시락을 쌀 형편이 아니어서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밥 먹듯이 굶었던 것이다. 그는 오남매 중에 장남이어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B는 순전히 서울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의사였고 아버지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고 매형과 누나, 동생도 모두 의사였으니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서울에서 명문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과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그만 유일하게 의사 집안에서 법조인이 되었다.

그들은 대학에서 만나서 그 후 평생 동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고시 공부를 하고 동시에 합격해서, 물론 사법연수원도 동기생이었다. 그들은 수료 후 함께 공군 법무관으로 입대했고 판사로 임관해서는 같은 법원에서 함께 판사 생활을 시작했었다.

결혼은 B가 먼저 했고 2년 후 B의 부인이 대학 후배를 소개하여 A는 결혼했으니 (둘은 역시 언니, 동생 하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부부들 사이에서도 절친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A는 판사 생활 10여 년 만에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집안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부모님은 물론이고 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해야 했으니 어서 빨리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했던 것이다.

A는 개업 후 몇 년 동안 전관예우라는 유구한 전통의 은덕을 입어 꽤 많이 벌었고, 그런 과정에서도 A와 B는 수시로 만나서 식사와 술을 하고 마작을 하고 주말마다 골프를 즐겼던 것이다. 나중에는 부부 동반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골프를 쳤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A의 부인이 어떤 여자들 모임에 나갔다가 그 이상한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문의 실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당시 B는 승진해서 지방에서 부장판사로 있었는데 혼자 부임해서 관사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 또는 여자와 관련 된 소문이 아닐까.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그렇게 짐작해 버렸다. 그러니까 B는 객지에서 너무 외로운 나머지 바람을 피웠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유부녀이지만 미모의 배석판사였을까? 판사실의 미혼의 비서? 그 비서가 임신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또는 바닷가에 있는 단골 술집의 마담? 스리섬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A의 부인은 너무나 그 소문의 실체가 궁금하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B의 부드럽게 빙그레 웃지만 톡 쏘는 듯한 눈빛, 여자를 뇌쇄시키는 그 살인적인 미소를 떠올려 보면 그 여자들 역시 스스로 옷을 벗었을 것이다. 그녀는 잠시 흠칫 놀랐다.

그나저나 그 소문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만 이를 언니에게 꼬질러 바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언니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지금도 여전히 그 질투가 날만큼 예쁜 얼굴이 일그러질 것인가? 그 닭살 돋는 부부는 마침내 대판 부부싸움을 할 것인가? 결국 그 부부는 이혼 법정에 서게 될 것인가?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비밀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이고 그걸 절친 중에서 절친인 남편이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비밀이란, 특히 성적 비밀이란 인간의 기묘한 관음증을 자극하는 것이므로 정말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내는 그 얘길 해달라고 남편을 조르고 졸랐다. 때로는 애교를 떨면서 아니면 험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떼를 써가며 졸랐지만 남편은 한결같이 묵묵부답이었다.

마침내 이쪽 부부가 먼저 폭발할 지경이 돼버렸다. 남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저열한 호기심이 역겨웠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불신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킨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최근에도 부산에까지 내려가 B와는 밤새 통음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함께 골프를 쳤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주변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비밀인데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미칠 지경이었다.

 

A는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밝힐 게 없지요.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친구의 비밀을 처음부터 아예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를 수밖에요. 친구란 우정의 이름으로 어떤 비밀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친구의 비밀을 지켜야하고 그러려면 자신이 그 비밀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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