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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의 직감㉚
심일보 기자  |  jakys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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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19  15: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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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들과 신년하례하는 YS
YS의 직감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것일까? 바로 그 때 김영삼 씨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이미 노태우 대통령이 탈당을 하고 김영삼 씨가 총재로 취임한 후였다.

“내일 아침 조찬이나 같이 합시다!”

순간 ‘아차’싶었다. 그렇게 극비리에 탈당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걸려온 전화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고 있단 말인가? 만약 알고 있다면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단 나는 약속장소인 하이얏트 호텔로 나갔다. 단 둘이 앉았다. 그리고 막 앉자마자 김영삼 씨의 첫마디가 나왔다.

“장의원은 도대체 이종찬 씨와 무슨 관계입니까?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선후배라 그럽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선후배라고 해서 무슨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저도 어느새 삼선인데 제 판단없이 무슨 선후배를 따져 사람을 쫒고 그럴 때겠습니까? 저와 이정찬 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도 절대 아니고, 또 제가 이종찬 씨를 무조건 쫒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같은 민정계라는 점, 또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철학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자자 만나는 것 분이고 아무래도 제가 정치후배다보니 그렇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내가 설명을 하자 김영삼 씨는 내 얘기에는 이렇다 저렇다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주 직접적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나는 장경우 의원을 믿어요, 장경우 의원 같은 분이 당에 남아서 나를 도와주어야만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텐데 말이오, 다른 생각 말고 내가 틀림없이 새로운 정치를 할테니까 나를 믿고 나를 도와주시오, 솔직히 그렇게 한다면 장의원 앞으로 장관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클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내가 이렇게 장의원을 믿고 있는데 왜 장의원은 자꾸 다른 쪽으로만 가려고 그러는지 내가 이해가 잘 안가요.”

장관까지 운운하는 얘기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말들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유혹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좀 더 생각하게 만든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정치를 보면 말이요, 대세라는 게 있어요, 과거 양일동 씨랄지…. 장의원도 죽 정치인들을 보면 알거요. 대세의 흐름에 역행한 정치인 치고 성공한 정치인은 하나도 없소. 정치에 대세라는 건 분명히 있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이 속에서 자기 입지를 찾아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법이요,”

김영삼 씨는 과거 대세를 쫓지 않아 실패한 정치인들의 예를 죽 얘기했다.

나는 어떻든지 한 사람의 정치 선배가 들려주는 그런 얘기 앞에서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작 나를 동요시킨 건 장관도 아니었고 정치적 후원도 아니었고, 바로 그런 얘기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앞에서 탈당을 바로 선언할 수는 없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저의 거취를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만약에 당을 떠나면 결코 도망치듯 떠나진 않을 겁니다. 분명히 총재님께 말씀 드리고 떠날 것이고, 또 만약 제가 당을 떠나지 않는다면 총재님을 열심히 돕겠습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 이틀 후 당시 김총재 비서실장을 하던 최창윤 씨로부터 다시 점심을 함께 하자는 전화가 왔다.

“총재님께서 장의원을 무척 좋아해요. 아시죠? 장의원이 가까운 시일 내에 진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던데….어떻든 총재님은 잘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디다. 물론 나도 그렇게 믿고 있소.”

당에 남으라는 김총재의 얘기를 재차 다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쯤해서는 아무래도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적어도 내 개인의 능력을 인정해 주며 선의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김총재와 계속 갈 수는 없을 것 같소. 제 입장을 잘 말씀 드려 주실 걸로 믿고… . 다만, 만약 탈당하면 나는 꼭 얘기를 하고 갈 것이요.”

어떻든 나는 YS의 직감대로 민자당에서 탈당을 했다. 그 탈당 3일전, 나는 탈당을 할 수 밖에 없는 내 입장을 정리한 편지를 최창윤 비서실장에게 전했다. 그 편지가 잘 전해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내 약속은 지켰다.

곡예사들의 줄타기

나는 탈당에 이르기까지의 그 뒷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참담했던 순간은 결코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탈당을 약속했던 사람은 34,5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극비리에 진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청와대와 YS쪽에서 눈치를 채고 그들에 대한 설득작업이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이른바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그 34,5명은 뜻을 같이한다는 ‘동의서’같은 것을 나에게 써주기로 했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써 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바빠서 그러는데 며칠 있다 주겠다’거나 ‘잠시만 시간을 달라’거나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정치의 속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치란 결국 하나의 ‘권력’이 형성되면 이제 그 곳으로 새로운 실력자들이 모이고 그 아래에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새로운 권력이 형성되면 과거의 권력 앞에 모든 것을 다 던졌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없이 떠나 새로운 권력 아래로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도 한나라당에 있거나 이미 탈당해 자민련이나 국민회의로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 그들의 이름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갔던 사람들은 또 ‘토사구팽’을 당하기도 하고, 또 그 토사구팽의 ‘화’가 훗날에는 ‘복’이 되기도 하니… 정치란 말 그대로 곡예이며 정치인은 그 곡예에서 줄을 타는 곡예사라는 사실을, 나는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가시밭길의 시작 - 탈당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더 시간을 끌다가는 아예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우선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라도 더 늦기 전에 ‘탈당’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가면 갈수록 김영삼 씨의 집권자로서의 한계를 더 확신하고 있었고,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빨리 탈당을 해서 새로운 ‘국민후보’를 추대해야 한다는 것이 그 때의 결론이었다.

1992년 10월 14일. 나와 박철언, 이자헌, 김용환, 이수호 의원은 국회 귀빈 식당에서 탈당을 선언했다. 그 이틀 후 채문식, 윤길상, 오유방, 이용일, 김현욱 씨도 탈당을 했다. 최종적인 탈당 수는 원의까지를 포함해 30여 명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편안하기도 말하자면 한없이 편안한 여당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다. 만약11대였다면 나는 탈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선까지 지내다 보니 내 나름대로의 정치적 판단도 섰고, 이제 독자적인 자기 판단에 따라 행동해도 될 때가 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여당의 편안한 품(?)을 떠나올 용기도 생겨났던 것이다.

어떻든 우리들의 탈당은 주류가 아니면 발붙일 수 없는 당의 분위기, 그리고 당 운영의 비민주성, 일인 보스정치의 한계, 지역 할거정치의 한계, 양김 정치의 한계 등을 벗어나려는 정치인들의 몸부림이었고,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곧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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