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어필한글편지첩
“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큰외숙모님을) 뵌 지 오래돼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니 기쁘옵니다. 원손(元孫)”

정조(1752~1800)가 큰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 봉투에 적힌 내용이다. 여흥 민씨는 혜경궁 홍씨의 큰오빠 홍낙인(1729~1777)의 처다.

이 편지를 모은 ‘정조어필한글편지첩’ 16점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정조가 원손(元孫)이었던 당시부터 재위 22년(1798)까지 쓴 예필(睿筆: 세자나 세손 시절에 쓴 글씨) 2점과 예찰(叡札: 세자나 세손 시절에 쓴 편지) 6점, 어찰(御札: 왕 즉위 후 쓴 편지) 8점 등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3점의 편지만 알려졌다.

편지의 내용은 주로 큰외숙모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재위 시절에 쓴 편지 가운데 12월에 쓴 편지 4점에는 물목 단자가 딸려있다.

현재 원문이 공개된 수백 점의 정조 편지들은 대부분 한문 편지다. 한글 편지 가운데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이 유일하다. 조선시대의 한글 편지 가운데 어린이의 필체로 쓰인 편지 자체가 드물고 편지를 쓴 주인공이 조선의 22대 왕 정조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글박물관 측은 “이 자료는 정조가 한글로 쓴 편지라는 점뿐만 아니라 연령대에 따른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조선 후기 왕실 편지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18세기 국어사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한글박물관은 21일부터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을 비롯해 ‘곤전어필’ ‘김씨부인한글상언’을 상설전시실에서 소개한다.

‘곤전어필’도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 김씨가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조카 김종선에게 우리말로 번역하게 한 다음 자신이 직접 우리말로 옮겨 쓴 소설이다. 이 책의 끝에는 효의왕후가 이 글을 친필로 쓰게 된 동기와 취지를 적은 발문과 청풍 김씨 가문에 하사한 경위를 적은 김기후, 김기상의 발문이 수록됐다.

‘김씨부인한글상언’은 서포 김만중의 딸이자 신임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이이명의 처 김씨 부인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한글 탄원서다. 정자로 정성 들여 쓴 이 상언은 크기가 무려 81.5×160㎝에 달한다. 정치적 격변기에 일어났던 당쟁의 한 장면을, 한 사대부 여성의 절박한 심정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글박물관 측은 소개했다.

이 전시는 18세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 세 편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현대어로 풀어쓴 ‘소장자료총서’ 발간을 기념해 준비했다.

한글박물관에서는 총서 발간과 관련해 21일과 28일 오후 2시 강의실에서 ‘조선 후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의 한글문화사적 해석’이라는 주제로 학술 모임을 연다. 서예 분야의 박정숙 성균관대 교수, 역사 분야의 정재훈 경북대 교수가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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