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일보 편집국장
9천 직원을 떠나보내는 삼성의 방식에 대한 아쉬움

지난 26일 삼성그룹이 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 네 곳을 한화그룹으로 넘겼다. 대부분의 기사는 경영의 관점에 초점이 맞춰줬다. 두 그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누가 이득인지, 삼성 후계구도는 어떻게 되는지가 화두였다.

그런데 그 회사 네 곳 안에서 일해 온, 9천명이 넘는 월급쟁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곳은 적었다. 25일 저녁엔 삼성 직원으로 퇴근했는데, 출근해보니 한화 직원이 돼버린 사람들이다.

그 9천명 중에 몇몇과 통화를 해봤다.

전날까지 누구도 이런 일이 진행되는지 몰랐단다. 다만 저녁 퇴근 무렵부터 한화가 뭘 한다더라 정도의 소문은 돌았지만 설마 했는데, 출근해보니 이렇게 됐다는거죠. 혼란스럽지만 월급쟁이가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그냥 시키는 일, 하던 일 해야지, 이런 반응이 우선 나왔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게 어디 그런가. 삼성과 한화는 이름만 다른게 아니라, 회사 성격도 극과 극으로 다른걸로 유명하다. 삼성이 꼼꼼하고 세밀하다면, 한화는 선이 굵고 우직하다고 할까. 심지어 최근까지 회사 사훈이 김승연 회장이 직접 지었다는 '신용과 의리' 였을 정도니까. 분명 여름과 겨울, 온탕과 냉탕 같은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너지를 내려면 이런 생판 다른 조직문화를 어떻게 하나로 합칠 것인가에 대한 어마어마한 고민이 있어야 할 거다. 이 부분은 한화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런데 삼성이 풀어야 했던 숙제도 있다. 제가 통화했던 직원들은 오랫동안 삼성맨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다면서, 하나 같이 "상실감을 느낀다"란 말을 입에 올렸다.

왜 아닐까. 청춘 때부터 길게는 몇십년을 삼성을 위해 일해온 사람들이 많다. 상황이 그리 돼서 회사를 판 건 알겠지만, 직원들에겐 어찌 된 일이고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설명을 했어야 한다.

회사 별로는 사장들이 설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위로는 없었다.

한 회사에서는 사장이 사내방송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한화맨이 됐으니까 한화맨 답게 살아갑시다"라고 .

사장은 마음을 정리했을지 몰라도, 직원들은 시쳇말로 '멘붕'을 겪었을 것이다.

삼성그룹의 행보는 더 아쉬웠다.

한 때는 가족이라 불렀던 9천명이 넘는 조직원들을 떠나보내면서, 어느 누구도 배웅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애쓰셨고, 지금은 사정이 이렇게 돼서 떠나보내지만 아쉬운 마음 뿐입니다. 아무쪼록 더 좋은 앞날이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이 말이 그리도 어려웠나?

이 정도 메일 한 통, 책임 있는 사람이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또 이 상황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경영을 해야 한다, 삼성 내부에서 요새 부쩍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현실은 직원들 마음도 다독이지 못했다.

하나 더, 다른 회사는 그럼 삼성하고 다를까요? 여러 회사 사람들과 이번 빅딜 이야기를 했는데, 대부분 결론은 비슷했다.

우리 회사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번 빅딜은 그런 점에서, 한국의 경영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씁쓸함,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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