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장미,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

— R. M. 릴케

 

 

나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극한적인 난코스 등반을 함께 즐겼던 산악반 친구들이 있다. 나는 대학에 갓 입학하여 몇 달이 지났을까, 공과대학 강의실 앞뜰에서 처음 모이였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그때 괜히 안절부절 못하며 내가 생각해도 어색한 행동과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 촌티 나는 옷차림새, 심하게 수줍어하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들은 산악반에 정식 가입했고 매달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첫날부터 인사불성이 되도록 엄청나게 술을 마셔 신고식을 거행하였었다.

그 친구들은 한 겨울에 눈에 덮인 험준한 산을 함께 등반하면서 저체온 증에 시달리고 방향 감각을 잃을 만큼 심하게 탈수, 탈진 상태에 빠졌을 때, 여기서 잠들면 죽는다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었다. 지금, 그들 중 하나는 진주에 있는 국립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또 하나는 일취월장하는 대형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1995년 이래 몇 년째 대한건축사협회장을 맡고 있고, 몇몇은 중견 건설회사의 임원이 되었으며, 그러나 마지막 한 친구는, 자의식과 의지가 강했고 밤의 침묵만큼이나 말이 없었던 그 친구는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일찍 죽었다.

 

그 겨울의 어느 날(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 박△△가 암벽 등반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해서 정형외과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친구 몇 명이 어울려서 함께 갔다. 그는 이마 쪽과 머리에는 피가 배어있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골절상을 입은 왼쪽 다리는 기브스를 한 채로 침대 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온몸 여기저기가 피멍이 들어 있었으나 그는 평소 성격대로 의외로 침착하고 담담하였다.

그가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는 그날 혼자서 암벽 등반에 나섰다. 적갈색 화강암으로 된 서북벽은 그가 좋아해서 자주 암벽 등반을 하였던 익숙한 곳이었다.(나도 그를 따라서 두 번이나 그 서북벽을 암벽 등반 했었다.) 10여 년 전 겨울에 처음 현기증을 일으키는 서북벽을 보자마자 그것은 그의 눈을 현혹시켰다. 단단한 벽들이 복잡한 균열이 나있는 암괴와 서로 엇갈리고 첩첩이 겹쳐지며 비스듬히 절벽의 끝까지 내려가서 깊은 협곡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는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서북벽을 보자마자 진짜 보기드문 암벽을 처음 보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어서 빨리 올라가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했었다. 그는 익스트림 알피니스트를 꿈꾸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한계를 응시하고 불가능에 대한 모험과 그 전율하는 공포의 순간을 음미하고자 했던 것이다.

잿 빛 음산한 늦은 오후,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산 주위의 윤곽이 아직 선명했다. 저 아래 산골짜기에서 산까마귀가 협곡의 기류를 타고 몇 번이고 선회하다가 나뭇가지에 앉아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때 막, 얼어서 굳은 손으로 자일을 붙잡고 발끝으로 간신히 암벽을 느끼며 얇은 필름 같은 살얼음이 끼어 있는 암벽을 내려오던 중이었다. 좁쌀 같은 얼음 입자가 바람에 날려 그의 얼굴에 달라 붙었다. 그러나 고드름이 번들거리는 바위턱을 지나 예리하게 갈라지고 서릿발이 하얗게 쌓여 있는 수직벽의 바위 틈새를 내려오면서 대마를 꼬아서 만든 낡은 자일이 갑작스레 흔들리며 뻣뻣해지더니 끊어져버렸다.

모든 것이 꼼짝없이 얼어붙어 버렸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정전된 것처럼 갑자기 정지되어 버렸다.

그는 절벽 밑으로 속절없이 미끄러지며 추락하였다. 바위에 부딪치며 굴러 떨어지다 어느 순간 절벽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늙은 소나무 곁가지에 어깨에 맨 배낭 줄과 등산용 재킷이 동시에 걸리면서 허공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가 구조된 뒤에 되돌아보니 그는 3시간여를 무의식 상태에서 매달려 있었으나 뒤늦게 하산하던 등산객들에게 발견되어 어렵사리 구조된 것이다. 그는 두 번씩이나 천우신조가 있었으니, 첫 번째는 소나무 가지에 걸린 것이 그것이고, 두 번째는 등산객에게 발견된 일이다. 그때는 이미 가는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고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워지는데 천우신조로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을 지새면서 틀림없이 동사했을 터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살아 있는거야.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지. 의사 말로는 한 달쯤 지나면 완쾌해서 퇴원할 수 있다는군. 온몸이 몹시 쑤시지만 그건 별게 아니지. 얼마든지 참을 수 있거든. 더욱이 말이야, 그게, 거시기가 완전히 무사하단 말이지. 천우신조야, 천우신조. 기적이 따로 없지.”

그는 그 후 예정대로 퇴원했다. 그에게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가볍게 저는 걸음 이외에 다른 후유증은 없었다. 단순한 사고에 불과하였으니까, 그럭저럭 그 일을 잊을 만큼 5개월인가, 6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늦은 봄날이다.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렸다.

나는 그날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서둘러 사당동 집으로 갔다. 나는 전에도 그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비좁은 주택가 골목에는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다. 하수구가 역류하는지 역겨운 냄새가 골목길을 감돌았다. 늦은 오후 날이 저물고 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점점 그칠 줄 모르고 퍼붓고 검은 먹구름은 계속 관악산 산기슭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흠뻑 젖었다.

붉은 벽돌의 아담한 단층집.

낡은 철제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집안은 빈 집처럼 고요했다. 아! 넝쿨 장미여! 담벼락을 뒤덮고 있던 무성한 넝쿨 장미는 그때 핏빛 같은 붉디붉은 꽃잎들이 비에 젖은 채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안 방, 부엌, 서재 방, 작은 방 모두 문이 열려 있고 안은 말끔하게 비어있다. 화장실 겸 욕실 문만 닫혀 있다.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그는 핏빛물이 반쯤 찬 욕조에 비스듬하게 누워있는데 검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이마까지 내려와 덮고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맨 살은 창백하고 촉촉해 보인다. 왼 팔은 욕조 속에 오른 팔은 바닥 쪽으로 늘어뜨린 채였다. 팔뚝 안 쪽 손목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세로로 길고 깊게 그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의 억센 팔뚝에 새겨져있던 비상하는 용 문신이 두 동강으로 잘려 있다. 피는 플라스틱 욕조의 가장자리를 타고 바닥에 고였다. 피는 벌써 약간 굳어서 끈끈했다.

건설 공사장에서 쓰는 대형 카터칼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다. 내가 그의 목에 손을 짚었고 아직도 희미하게 팔딱거리는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가쁜 숨을 그렁그렁 몰아쉬며 말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 응급실에 전화해도 소용없어. 이미 늦었어. 생명은 지금 꺼져가고 있지. 5분…… 아니면 길어야 10분 정도 남아있을 뿐이지.

그날은 재수없는 날이었어……. 나는 그 추락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바위 틈새에서 등산용 접이칼로 천천히 교묘하게 자일을 잘랐던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하필 나무 가지에 걸리고…… 등산객에게 발견되고 말았는지. 나는 그날 낭떠러지로 떨어져 뼈가 모두 으스러지고 머리와 가슴이 짓뭉개져서 죽었어야 했어. 나는 수직벽에서 나를 찾기 위해 영원히 떨어지고 싶었던 거지.

처음에는 천우신조라고 생각했지.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고 잘 살라는…… 신이 내리는 계시로 받아들였어. 그러나…… 몇 달 동안 계속 생각했어. 결론이 나온 거지. 결국…… 나는 스스로 죽어야만 하는 거야. 죽음이야말로 궁극적인 자유인거지…….

너마저 오해해서는 안 될 거야……. 나는 한 때 빠졌던 알코올 중독이나 습관성 약물의 과다 사용은 진즉 손을 뗐지. 그건 격렬한 몸부림이었어. 돌이켜보면, 젊음의 통과의례에 불과했던 거야. 나에겐 세상 사람들이 입방아를 찍을 만한 자살 이유가 없지. 나는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 유서 따위는 남겨놓지 않았어. 도대체 쓸 말이 없거든.

너에게 부탁이 있지……. 육신을 둘둘 말아서 흙구덩이 속에 던지는 것은 지옥의 암흑 속으로 처넣는 거와 마찬가지이지……. 날 태워줘……. 왜냐하면 불은 모든 것을 정화시키기 때문이지……. 태워서 재만 남아야만 하지……. 재는 무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산들바람처럼 가볍거든……. 그래서 훨훨 날아올라갈 수 있는 거야……. 그 재를 하늘에 뿌리란 말이야……. 그래야만 내 영혼은 날게 되고 자유를 누리게 될 거 거든…….

너만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는 턱없이 감상적이긴 하지만 착하니까 끝까지 오래 살 사람이지.”

그 먹먹한 상황에서 얼어붙은 내 입은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죽어가는 친구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이 사라져가는 그의 눈에서 증오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매장 대신 화장을 해주었고 또 유골을 어디에 묻거나 납골당에 안치하는 대신 그 재를 그 친구가 나비처럼 날아서 낙하하였던 그 까마귀 우는 산골짜기에 뿌려주었던 것이다.

 

나는 내 친구를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그는 수없이 망설이고, 반문하고, 자기모순에 빠졌을 것이다.

그의 죽음이 그가 인생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인생을 고뇌하며 살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숙고하고 판단을 내린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그때 불과 30대 초반이었지 않은가. 그는 다만 내적 자아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추측한다. 이 세상에 자살보다 불가해한 것은 없다. 본인 자신인들 알고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이 사건을 불행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그 당시, 내가 알기로는 가족 문제로 정신적 혼란을 겪거나, 가까운 친지, 가족, 친구의 죽음에 따르는 슬픔, 가난, 부채 문제, 수치스러운 일, 알코올이나 마약, 절망적인 사랑, 삶에 지칠 대로 지치거나, 염세적 철학, 분노와 광기, 회개해야할 범죄 등의 문제는 없었다. 그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자살을 통해 고발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는 자주 웃고, 실소하고, 야유하고, 모든 것을 놀려먹어야 하는 아주 경쾌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것이다.)

우리가 감히 그들을 동정 받아야할 불쌍한 사람들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은 희생자인가, 죄인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증오나 경멸, 찬사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 자들은 한동안 죽은 자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과 희미한 죄의식과 사라지지 않은 추억이 얽혀있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시달려야 한다.

이건 오로지 내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자살할지 모른다. 신성한 죽음이야말로 완전한 체념이고 해방이라는 생각 때문에 가끔 어쩔 수 없이 충동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자살하려면 나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생존본능을 끊어야 하리라. 그것은 비상한 분노와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

나는 자신에게 외친다. “죽어 버려라! 이 비겁자야. 넌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구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또한 자신의 삶이 둥지를 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배신, 배신자. 배반, 배반의 장미.

그리고 자살은 상실이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