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무소속과 수많은 동상이몽들

대선이 끝나고 1년 6개월 동안, 나는 가장 외롭고 고달픈 의정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민자당 내 경선과정에서부터 후보 사퇴, 탈당, 창당, 새 후보 추대, 다시 사퇴...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거의 탈진상태에 접어들었고, 게다가 새한국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교섭단체 구성도 안되다 보니, 국회가 개원되어도 본회의에서 발언기회는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지 세력도 약해지면서 의정 활동에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종찬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선이 끝난 직후 이종찬 씨는 그 격하고 참담했던 민자당 경선에서부터 경선 포기, 탈당, 새한국당, 대선후보 중도포기, 국민당과의 합당선언, 그리고 원점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우여곡절 속에서 역시 탈진상태였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던 이종찬 씨 부부는 마침내 외유길에 올랐다.

그런데 또 인연이 참 묘한 것이다. 그때 이종찬 씨 부부는 큰 아들이 유학 가 있던 영국으로 떠났는데, 그 때는 또 김대중 씨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부터 둘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시작했으니,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그 때부터 미리 예견 된 것이었을까? 그러나 사실 이종찬 씨가 민주당에 입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았다.

어떻든 당시까지만 해도 나나 이종찬 씨는 제1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의원들, 그러니까 김동길 씨가 이끌고 있던 국민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야권통합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와 이종찬 씨는 김동길, 박찬종, 한영수, 양순직, 임춘원, 박규식 씨 등을 만나기 시작했다.

길게는 야권통합이 목표요, 짧게는 의정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우리끼리 교섭단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야권통합을 위해 민주당과 합친다 해도 우선은 우리끼리 일정한 힘을 모으고 그 다음에 민주당과 야권통합에 들어가자는 것이 우리들의 장기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나는 그것 역시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일이지만, 그런저런 만남 속에서 김동길, 박찬종, 양순식 씨 등이 모종의 ‘합의각서’를 썼다는 것이다.

나중에 당이 결성되면 대선 후보는 누가 하고, 또 당은 어떻게 한다는 식의 합의를 했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나중에 언론에 공개되고 난 후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시대 정치를 극복해 보자고 가시밭길이 뻔한 탈당을 선택해서, 이제 야권통합을 해보자고 그 노력들을 다 하고 있는데 정작 안에서는 그 몇 안되는 의원들 간에 각서가 오고 갔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런 각서를 썼음에도 야권통합 노력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런 것 보고 아마 ‘김칫국’운운하는 모양이다.

사실 정치인이라면 다 야망이 있다. 없다면 그것은 솔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 때가 있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나 다 때가 있는 법이 아니던가. 그런데 성급하게 모두 ‘머리’만 하겠다고 나서니 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정치권의 이 ‘동상이몽’들은 평소에는 잠잠하게 있다가도 꼭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니, 아마도 정치에 영원한 동지는 없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한때는 행복했던 이종찬과의 약속

그 와중에 자꾸만 민주당 측으로부터 교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5공특위 활동 때 간사와 위원장으로 만났던 이기택 씨가 당시 민주당의 총재였고, 또 대학의 동기동창이었던 유준상 씨 최고위원이었는데 두 사람으로부터 계속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거 밖에서 야권통합 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그래도 민주당이 제1야당 아닙니까. 장의원 같은 사람이 먼저 들어와야 힘을 받기 마련이고,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도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일단 들어와서 야권통합 해 봅시다.”

이런 제의가 잦아지면서 나 역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종찬 씨와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래도 밖에서는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만이라도 먼저 들어갑시다.”

내 말에 이종찬 씨는 수긍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종찬 씨 입장에서는 뭔가 미진했다. 그래도 한때는 대선 후보에까지 오른 사람이 입당을 하려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하고, 또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단 둘이서먄 들어갈 경우 모양새도 초라할 뿐만 아니라 당내의 지분 확보도 어렵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단 둘이서만 들어갈 경우 모양새도 초라할 뿐만 아니라 당내의 지분 확보도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그럴려면 무소속과 군소 정당을 한데 묶어서 당대당 통합 형태로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신 먼저 들어가지! 나는 좀 더 남아서 힘을 모아보고 들어가도록 하는 게 나을 것 같군.”

“그럽시다. 일단 제가 들어가서 자리를 마련해 놓을테니 뒤쫓아 오시죠.”

그렇게 약속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때는 행복했던’약속이었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한 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김영삼 씨의 말대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게처럼 되어 버린 이종찬 씨와 처음으로 헤어져 나는 마침내 민주당에 입당했다.

야당정치인이 되어서야 발견한 새로운 사실

92년 10월 민자당 탈당, 그리고 새한국당 창당과 대선 좌절, 그 후 무소속으로의 힘겨운 의정활동, 성과없는 야권통합 노력…. 그 1년 6개월여의 긴 방황 끝에 나는 1994년 6월 마침내 제1야당인 민주당의 당원이 되었다. 긴 방황에 견주어보면 한없이 간단하고 짧은 선택이었다.

내 입당이 확정되자 이기택 총재는 나를 상임위원장으로 천거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일부 최고위원들 사이에서 반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줄곧 야당을 지켜 온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을 제치고 상임위원장까지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이기택 총재와 유준상 최고위원은, 장경우가 평범한 국회의원도 아니고 이미 삼선의원에, 거대 여당에서 수석 부총무에 수석 부청장까지 지냈고, 또 새한국당의 사무총장도 지낸 사람인데, 그냥 어떻게 단순한 당무위원으로 받느냐…는 것이었는데, 나야 말만 들어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상황을 보니 그런 저런 문제로 회의가 잦아지는 것 같아 나는 결국 이기택 씨에게 다시 한 번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오직 야권이 단일화 되어서 정권교체의 숙원을 이르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입당을 한 겁니다. 나는 지금 백의종군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지금 백의종군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당내 입지 때문에 그런 거라면 전혀 개의치 말아 주십시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분명히 의견을 밝혔는데도 회의가 잦아지는 것 같아 결국은 기자들을 불러 내 의지를 성명으로까지 발표를 했다. 그런데도 결국은 나는 상임위원장에 내정되었다. 국회 내에서의 투표도 무난히 통과되어 나는 바야흐로 야당의 상임위원장으로서의 국회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내가 입당하고 이른바 정통 야당의 정치인이 되었을 때, 나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입당 후 나는 지역구에 내료가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었다는 인사를 했다. 사실 그때 내 마음은 결코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사람보고 뽑는다지만 어떻든 지역구민들은 여당 후보인 장경우를 뽑아준 것이지 야당 후보인 장경우를 뽑아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내가 여당 후보일 때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축하합니다! 정말 정말 잘 하셨어요!”

너도 나도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얼굴을 붉히며 이런 얘기를 쏟아놓는데…와, 순간 나는 속으로 정말 섬뜻한 기분이 들 정도로 놀랬다. 이 안에 이렇게 많은 야당이 있었다니….! 정말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러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양지에서도 살아야 하지만 음지에서도 살아봐야 하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이들의 정치 성향을 다 읽어내야만 하는 정치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한 번 정치의 실체에 다가 선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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