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의 '밀사'와 출마선언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종찬 의원의 보좌관인 최상주 씨가 찾아왔다.

"두 분께서 만나면 또 말이 많이 날 것 같다고 하시면서 보냈습니다."

"그래요? 무슨일이에요?"

"장의원님이 빨리 출마선언을 공식화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리면 무슨 말씀이신지 알거라고 …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나는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어제 오후 3시에 김대중 이사장을 만난다고 했는데, 아마 이종찬 씨의 성격상 면전에서는 거절을 못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아예 출마선언을 해 버리면 김대중 이사장도 더 이상은 출마를 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나에게 빨리 출마선언을 공식화 하라는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이제 내 문제가 아니라 이종찬 씨 문제까지 겹쳐진 셈이었다. 우선 당장 출마선언을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종찬씨가 더 이상 난처해지기 전에 그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날 당장 밤을 세워 출마선언문을 써 그 다음 날 바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막상 상황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당장 기자회견장에서부터 기자들은 집요하게 이종찬 씨의 출마 소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의 문제를 물어왔다.

사실 오죽 말하기 좋았겠는가! 그동안 거의 행동을 함께 해 온 우리들이었으니, 그 두 사람 사이에 문가 미묘한 갈등구조가 싹트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데 기자들로서는 최고의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나의 출마선언이 이종찬 씨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기 전에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앞당겨 하는 선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 리 없었고, 그렇다고 그런 저런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참으로 나감했다. 그러나 어쩌랴, 자꾸 묻는데는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나는 절대로 이종찬 씨가 경기도지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본인 또한 생각도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출마선언을 했는데, 그 분이 어떻게 나오시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 분과 나 사이를 여러분들은 다 아시잖습니까?"

그러나 기자들은 집요했다.

"그래도 만의 하나, 이종찬 씨가 나올 경우에는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요…정이나 그렇게 가정을 세워놓고 말하라고 한다면…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여당의 위장자유경선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위선이 싫어서 탈당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당의 경선이야말로 역사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정당의 상징이자 민주주의의 꽃 아닙니까? 기자 여러분들의 가정대로 만약에 그 분이 나오신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제 당내경선을 거쳐야만 하는 거겠죠.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멋진 경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이미 공은 던져졌다. 어차피 경기도지사에 나오겠다고 출마선언장에 선 정치인이 계속 우물우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당내경선 후보등록을 마쳤다. 안동선 씨와 경기대의 정교수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후보등록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는 저 북쪽에 있는 파주부터 시작해 경기도의 각 지구당을 하나씩 순방하며 위원장과 대의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후보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얘기들이 나오는가 하면, 급기야 얼마 후에는 '동교동계에서는 이종찬으로 결정했다' 등의 얘기까지 들려왔다.

이미 세 사람은 후보등록을 마치고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이런 얘기들이 잠잠해지기는커녕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자들은 나만 보면 물어오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다'만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도 참 고문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는 정말 이런 말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어떻든…만일 정말로 그 분이 하실 의양이 있다면 나는 그렇습니다. 다른 경선후보들의 의양은 어떻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후보등록 법정기한이 이미 지났다는 것에 개의치 않고 이제라도 등록을 하신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났는데 이제 엉뚱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장경우가 어떻게 그렇게 나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는데…나는 참 암담했다. 솔직히 그렇잖은가! 화를 낼 사람은 정작 나인데…아무튼 겨우 보장된 15일간의 선거운동기간 내내 나는 그런 질문들과 루머들에 시달려야 했다.

그 날 이후 더 이상은 이종찬 씨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렇다고 내가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게 우리들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야당의 전통이 시비의 대상에 오르다

15일간의 선거운동기간이 끝나고 드디어'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날!

내가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행사장은 술렁이고 있었다. 안동선 후보 측에서 '무효다'며 대의원 대회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출마를 받아들일 때 어차피 이기택 총재에게도 말했듯이 당내 경선까지는 좀 책임을 져달라는 입장이었고, 안동선 후보 측의 이의 제기가 왜 일어났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알고 보니 문제는 어제 저녁의 '합숙'이었다.

얼마 전 TV드라마인 '삼김시대'를 보니까 과거 신민당 시절, 40대 기수론을 외치던 김영삼 씨와 김대중 씨가 당내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대목이 나왔다. 그 때 경선 하루 전 날 김대중 씨와 이희호 씨가 대의원들의 합숙장소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한 표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야당에서는 대의원대회 전 날 지방의 대의원들이 모두 올라와 몇 곳에 나뉘어 합숙을 하는 것이 오랫동안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이 날 각 후보들이 찾아다니며 한 표를 부탁하는 것은 거의 정례화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사실 그 힘들고 어렵던 시절 야당의 대의원들이 언제 보람을 느껴보겠는가! 그래도 경선 날이면 후보들이 찾아와 한 표를 부탁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오는 야당 대의원들의 '한 표'야말로 야당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긍지였던 것이다.

여당에서는 경선이라는 게 있어 본 적이 없다. 처음 했던 경선이 바로 92년 대선이었다. 그런데 이미 말했다시피 그 경선이야말로 철저한 위장경선이었고, 합숙은커녕 대의원들의 얼굴도 볼 수 없이 치러진 경선이었다.

그랬으니 나는 그런 야당의 오랜 전통을 알 턱이 없었고, 대의원들이 한 곳에서 합숙을 하는 것은 물론, 합숙장소에 내 쪽의 사람들이 찾아갔다는 것 또한 알 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측더러 '향응을 제공했다'며 시비를 걸고 나오니, 나는 처음에는 대뜸 운동원들에게 화부터 냈다.

"거 뭐하러 합숙은 시켜가지고 말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듭니까?"

"그건 장의원님 몰라서 그러는데요…"

나는 그제서야 그런 저런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고, 이제 전후 사정을 알고 나자 더 기가 막혔다. 설령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한들, 경선이라는 것이 어차피 한 집 안에서의 잔치요 무슨 원수 사이도 아닌 마당에, 얼마든지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정견을 발표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 오랫동안 그렇게 불문율처럼 되어있는 일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문제를 삼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판을 깨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든 긴 소란 끝에 대의원 대회는 시작이 되었다.

 

두 표 부족으로 끝난 1차 투표

그런대로 시작은 좋았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이종찬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던 동교동계에서는 이제 안동선 측을 노골적으로 밀고 있었다. 그런데 권노갑 의원을 비롯해 김상현, 한광옥, 김정길, 박지원, 이윤수 의원 등 당의 지도부인 부총재들이 거의 다 안동선 의원 측을 지지했고, 우리 측은 현역이라고 해봐야 이규택, 박계동, 강창성, 이장희 의원 정도였다. 그나마 경기도 의원은 이규택 의원 한 사람뿐이었다. 이기택 총재는 총재니까 대회장에 나올 수 없었다. 참 초라한 후보였다.

드디어 후보의 정견발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단상에 서 보면 직감이라는게 있다. 분위기는 읽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견발표를 하면서 나는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당 지도부가 거의 다 저쪽으로 쏠려있는 상황인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러자 괜히 합숙하네 어쩌네 하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내심으로 혀를 차곤 했다.

어떻든 나는 야당에 와서 처음으로 야당의 대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시작했다. 여당생활의 경험과 그리고 YS에 대한 판단, 그리고 내가 어렵게 탈당을 하고 야당에 오기까지의 과정,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내가 보고 배운 것들과 내 나름의 정치철학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여야의 경험을 충분히 살려보겠다는 것이 내 정견발표의 요지였다. 반면 안동선 의원 측은 계속 '합숙'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정견발표를 채워가고 있었다. 또 한 명의 후보로 정관희 씨가 있었는데 분위기는 대충 나와 안동선 후보의 경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드디어 투표가 끝나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가 시작되었다. 양쪽의 참관인들이 단상으로 올라가고, 우리 측 참모 한 사람도 저쪽과 마찬가지로 단상 옆에 기웃거리면서 계속 손짓을 해 주곤 했다. 거기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면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고, 또 조금 있다가는 저쪽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길 몇 차례 반복.

그런데 어느 쪽인가도 모르게 '당선이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갑자기 나를 무등을 태우더니 강당 안을 돌고 난리가 났다. 단상까지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내가 '아, 됐나보구나!'라고 느끼는 찰라, 다시 저 쪽에서 또 '와!'하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꼭 뭐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좀 내려 놔 봐요! 나 좀 일단 내려 줘 봐요!"

겨우 진정이 되어 알아보니…내가 이기긴 이겼는데, 과반수를 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단 두 표가 부족했던 것이다. 제 2차 투표에 들어가야만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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