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보통의 일을 반복하는 '일상'은 고맙지만 지루하다. '일상'에 많은 이가 지치고, 지친 이들 중 많은 이가 '일탈'을 꿈꾼다.

'여행'은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일탈'이다. 그렇다고 꿈꾸는 이 모두가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용기가 필요한 까닭이다. '내가 없어도 될까?'하는 걱정은 쉽게 '된다'는 답으로 수렴되지만, 본인을 포함한 주위의 시선에는 늦은 답이 돌아온다. "나는 여행을 떠나도 좋은 걸까?"

'…큰 마음을 먹고 전해줬을 선물에도 딱히 감동하지 못할 때,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오는 퇴근길이 늘어갈 때, 잘 지내냐는 물음에 "그냥 똑같지 뭐"라고 대답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등을 펴낸 에세이스트 이애경이 말하는 여행을 떠날 때다. 조용필, 윤하 등에게 멜로디 못지 않게 돋보이는 노랫말을 안긴 작사가이기도 한 그녀는 자주 비행기에 오른다.

"10년 동안 20개국을 다녔어요. 최근에는 스웨덴을 다녀왔는데 여권에 도장을 안 찍어주더라고요. 도장 모으는 게 취미인데 아쉬웠죠.(웃음)"

이애경이 "그냥 똑같지 뭐"라고 말하던 일상을 딛고 떠난 여행길의 단상을 모았다. 여행에세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에는 그녀가 길 위에서 보낸 10년, 20개국의 풍경이 70여 편의 글과 사진에 담겼다.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웃음을 보는 것, 나의 고민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별다를 게 없음을, 혹은 나의 고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생각보다 많다.'(265쪽)

스스로를 낯선 곳에 두고, 여행이 전하는 선물들을 기꺼이 안았다. 돌아보면 '애인처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순간들이다.

"여행지에서는 이기적일 수 있어요. 나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내가 먹고 싶은 것과 내가 가고 싶은 곳, 모든 결정의 중심이 저한테 있는 거예요. 저를 사랑해주는 거죠."

쿠바에서 춤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스위스에서 페루의 게이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길이다. '이랏샤이마세!~"라는 우렁찬 인사가 선술집을 찾는 손님들의 외로움을 털기 위한 것이 아닐까 가만히 물음표를 띄워본 일본, 여왕과 세 번 마주치고 여왕만큼이나 본인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 덴마크에서의 이야기도 담겼다.

"원래 탐험하는 걸 좋아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즐겼죠. 쉽게 질린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환경이 편해지면 불편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스스로를 단련하는 거죠."

물론 모든 길이 그녀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았다. '혼자 있고 싶어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는데 막상 혼자 지내니 마음이 더 쓸쓸해'지는 날도 있었고 공항에서 이별하는 남녀를 보며 자신의 이별을 돌아보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날들도 생각을 한 발 더 디딜 수 있게 한 시간이었다.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그 추억들은 그 시간에 존재했던 나에게 놓아두고 나는 현재의 시간을 살았어야 했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나에 대한 예의였다.'(172쪽)

그녀가 지금의 여행을 권하는 이유다.

"확실히 나이가 많으면 여행하기가 어렵죠. 어렸을 때 여행을 다닌 건 잘한 거 같아요. 그때가 아니면 언제 15시간씩 걸으면서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해가 떨어질 때면 발 디딜 틈 없는 집을 나와 퍼커션을 치는 남자를 봤던 쿠바, 펭귄이 떼를 지어 다닌다는 남극을 닿고 싶은 곳이라 했다. 그날을 위해 그녀는 누구보다 분주하게 '일상'을 산다.

"요즘에 볕이 좋아요. 봄 햇살이 느껴져요. 좋기는 한데 올해는 이상하게 설레요. 떠날 때가 됐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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