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기자]6·25 전쟁시  '신념의 조인'으로 불리우며 항공전의 영웅이자 전쟁 고아의 아버지였던 딘 헤스(Dean E·Hess) 대령이 3일 오전 1시(현지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다.

헤스 대령은 6·25 전쟁 발발 직후부터 1년간 250여 차례나 출격해 북한군과 직접 맞섰던 전투조종사였다. 뿐만 아니라 F-51 무스탕기 조종 교육을 통해 항공작전의 불모지였던 초창기 한국 공군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전쟁 영웅중 한사람이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에서 P-47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 후 전역했던 헤스 대령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유수호와 세계평화를 위해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기로 결심하고 미국 공군 전투조종사로 지원했다.

1950년 6월 중순 미 극동 공군사령부에 배속된 헤스 대령은 당시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미 공군이 지원한 F-51전투기 10대를 한국공군에 인도하기 위해 창설된 미 제6146 기지부대의 부대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 공군 건설 작전(바우트 원·Bout One) 임무는 물론 250여회를 직접 출격하며 6·25 전쟁 초기 항공작전을 주도했다. 당시 전쟁에 참전한 미 공군조종사는 100회 출격을 하면 비전투지역인 일본이나 미국으로 전출됐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헌신을 가늠할 수 있다.

당시 헤스 대령의 전용기인 F-51D 무스탕 18번기에는 '信念의 鳥人(신념의 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헤스 대령의 좌우명인 '신념으로 하늘을 난다'(By Faith, I Fly)를 옮긴 것으로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게 됐다.

이 글귀는 헤스 대령이 F-51D 무스탕 전투기 기장이던 한국 공군 정비사 최원문 일등상사(예 대령)에게 한글 번역을 부탁해 써 넣은 것이다

이후 1982년 강용구 작사·윤정모 작곡의 '신념의 조인'이란 동명의 군가와 1975년 발표된 최문화 작사·작곡의 '필승 공군'이라는 군가에도 같은 글귀가 등장했다.

한편 헤스 대령은 1951년 1·4후퇴 당시 중공군이 내려오자 미 공군 군목(軍牧)이던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과 함께 1000여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수송하는데도 기여했다.

당시 그는 공군의 지휘부를 적극 설득해 무려 15대의 C-54 수송기를 전쟁고아 후송작전에 투입해 무사히 피신시켰다. 이는 미 공군 전사에도 비중 있게 기록돼 미 국립공군박물관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헤스 대령의 전쟁고아 수송 작전은 미 국립공군박물관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는 1956년 6·25 경험을 담은 책 ‘전송가(Battle hymn)’를 펴냈다.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주연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전송가는 2000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뒤 절판됐다가 2010년 6·25전쟁 60년을 맞아 ‘신념의 조인’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이 책에서 그는 “마지막 차례의 어린이가 수송기 안으로 걸어와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무공훈장과 소파상을 수여했다.
헤스 대령은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신념의 조인'으로 대한민국 공군사에 길이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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