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기자] 한국판 '터미널'이 인천공항에서 재현됐다.

한 아프르카인의 고독하고 긴 한국 법정과의 싸음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8일 난민 신청 사유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민' 지위를 확인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2013년 11월 아프리카인 모하메드 씨는 세 번의 여객기 환승으로 꼬박 이틀 걸려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그의 고국은 2011년 분리독립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전과 내전으로 총성이 끊이질 않는 수단. 북수단 정부의 강제징집에 응하지 않고 입영을 피해 교외로 도망쳤다가 천신만고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16x9
 

하지만 한국 땅은 낮설고 냉정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할만한 명백한 사유가 없고 모하메드 씨가 난민인정 신청사유 등에 관해 거짓된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며 입국을 불허했다. 영어에 서툰 탓에 진술을 오락가락한 것이 주된 문제였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모하메드 씨의 고독한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출국대기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익 변호사를 선임해 송환 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헌법소송,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 3건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인천지법은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모하메드 씨의 손을 들어줬고, 그제야 그는 5개월 만에 출국 대기실 신세에서 벗어나 면세점 매장이 자리한 환승구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며칠 뒤에는 송환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가처분도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윤성근)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입국한 모하메드씨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과 같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박해를 피해 본국을 떠난 사람이 심리적 불안정성으로 초기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단순히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결론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자에 대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은 난민법 시행령에서 정한 불회부 사유에 해당함이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에 한해서만 내려져야 한다"며 "불회부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정도의 판단만으로 난민 지위 확인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모하메드씨 진술의 진위를 명백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심사에 회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모하메드씨는 지난 2013년 11월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할 당시 "북수단 정부의 강제징집에 불응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모하메드씨의 난민신청이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할만한 명백한 사유가 없고 모하메드씨가 난민인정 신청사유 등에 관해 거짓된 진술로 일관하고 있어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사유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불허했다. 모하메드씨는 출국 대기실에서 6개월 가까이 사실상 구금 상태로 머물러야 했다.

1심 재판부는 "난민신청자에게 심사에 불회부할 사유가 없음을 입증하도록 할 경우 정당한 난민 역시 심사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강제로 출국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입증 책임은 처분청에 있다"며 "수단이 내전 상황에 있고 A씨가 강제징집을 거부해 수단 정부의 처벌 대상이라는 점 등을 종합할 때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은 결정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