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인간은 신이 아니면 동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나는 흔히 인간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지 못한다.
─ L. 비트겐슈타인

인류의 진화 역사를 살펴보자. 약 46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나자 아름답고 조그마한 별인 지구가 태어났다. 그리고 450만 년 전인지, 또는 300만 년 전인지 인류의 조상이 태어났고, 그 후 인류는 진화를 거듭했다.

300만 년 전, 또는 그 이전 최초로 엉거주춤 서서 걷는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태어났고, 약 200만 년 전에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인 호모 하빌리스가 살았고, 약 170만 년 전에는 똑바로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인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으며, 약 20만 년 전에는 뇌의 크기가 훨씬 커지고 슬기로운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고, 약 4만 년 전에는 더욱더 슬기로워진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동식물 분류에서 인간은, 문: 척색동물, 강: 포유류, 목: 영장류, 과: 사람, 속: 사람, 종: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그러나 그건 오만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붙인 생물학적 학명일 뿐이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현명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인간이 현명하다고? 인간이 선하다고? 행복하다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은 모든 생물을 통틀어서 가장 불행한 존재가 아닐까? 인간은 정말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 아닐까? 그러니까 인간이란 종족에게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문화인류학자 또는 고고학자이고 오지 여행 전문가이며 광대한 사막을 끝까지 걷는 인간인 김규현은 곧게 서서 끝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인 호모 에렉투스를 진정한 인류의 조상으로 생각한다.

두발로 걸어서 돌아다님으로써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두발로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끝없이 찾아간다. 그 길은 많이 굽어있는 멀고도 먼 길인데 말이다. 그러나 끝없이는 슬프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가야하는 길이기에. 하지만 도달과 관계없이 가야만 한다. 움직여야 한다. 걸어야 한다. 간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길이 삶의 행로이며 삶은 곧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우리는 호모 에렉투스다.

출향과 귀향의 반복 또는 떠남과 영원한 이별.

그래서 바다와 사막을 누비며 낯선 세계를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오늘날은 저 무한한 우주의 먼 곳까지.
인간의 영원한 오디세이아. 그리고 세상을 찾기 위해서 세상 끝까지 갔다가 지옥에 떨어졌던 오디세우스. 
그의 문화인류학적 고찰, 역사적 고찰, 여행 이야기는 자신이 세계 여러 곳을, 특히 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을 수십 차례 여행하면서 실제 겪었던 생생한 체험이거나, 그가 프랑스 유학과 그 후 파리의 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탐독했던 고고학, 문화인류학, 사회생물학, 미술사, 지리, 역사, 오지 여행이나 탐험 관련 책에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깊은 숙고를 통해 얻은 것 들이었다.

몇 권의 책은 그가 수십 번에 걸쳐 반복해서 읽는 바람에 책의 제본이 망가져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그는 파리 유학 시절에 주 전공인 건축설계 못지않게 오지 여행과 그런 분야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가 말했다.

“까마득한 먼 옛날에, 그 옛날은 암흑의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아직 그 시절의 암호가 완전히 해독된 것은 아니거든. 원숭이는 점점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었지. 일어서고 싶었던 거야.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서 멀리 바라보고 싶었던 거지. 그것들의 내면에서 불굴의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으니까.

그러나…… 원숭이들은 처음 뒷다리로 일어서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비명을 질렀어. 그렇게 해서 유인원이 태어났고, 마침내 인간이 탄생하였지. 그러나 우린 여전히 미숙아인거지. 지금 인간이 완성되기 전 단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인간이 순전히 잠재적인 존재, 아직 깨트리지 못한 달걀 같은 거라는 의미는 아니야.

다시 말하면 알은 세계이고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고 나와야한다는 의미는 아닌 거야. 인간은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왔지만 여전히 그렇다는 거야. 그러니까, 유인원은 결국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뒤로 아주 오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 될 수는 없었지. 즉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는 없었던 거야.

그렇다고, 내가 지금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던 초인ṻbermensch, 실러의 전인whole man, 도교의 진인眞人, 맹자의 대장부大丈夫, 아나키스트들이 꿈꾼, 신이나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 혹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을 말하는 게 아닌 거야. 그냥 쬐끔 사람다운 사람을 말하는 거지. 이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쬐끔 처량한 기분이 드는구먼.

그렇게 된 거지. 인간은 타락한 피조물인 거야. 그러니까 신이 보기에 인간은 하찮은 벌레에 불과한 거지. 너무나 하찮아서 언제든지 가볍게 발로 뭉개버릴 수 있는…….

그래서 차라리 새로운 진흙과 그 진흙으로 새로운 인간을 빚을 인간 창조자인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가 있어야만 할 거야. 프로메테우스는 그때 너무 서둘렀던 거야. 그래서 파노페이아에서 발견한 진흙으로 여러 가지 결점 투성이 인간을 만들고 말았거든.”

그런데 호모 에렉투스 (직립인간)의 직립보행은 인간과 동물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알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은 맹수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도, 뿔도, 발톱도 없었다.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다만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인간의 뇌는 발달하고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한 거였다. 말랑말랑한 두개골 속에 영혼의 불꽃이 끊임없이 활활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동시에 빌어먹을 영혼의 질병도 함께 생긴 거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프리카 동쪽의 열대 지방에서만 살았다. 다른 지역은 대부분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온통 얼음과 눈뿐이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날씨가 따뜻하게 풀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아프리카 고향을 등지고 서둘러 더 넓은 세계로 여행을 떠난 거였다. 그 초기 인류의 이동은 후대의 모든 여행이나 탐험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했다. 비교할 수조차 없다.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시의 리듬처럼 한 번은 멈추고 한 번은 내딛으면서 앞으로 걷는다. 건강한 두 다리가 버텨준다면 세상은 사방으로 훤히 트여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마음먹은 대로 걸어갈 수 있다.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만 년에 걸쳐 거주 가능한 세계의 구석구석을 찾아내 이주한 것이다. 인류가 태어났던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출발하여 약 3만 3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이 세상 끝인 남아메리카 티에라델푸에고까지 갔던 것이다.

무얼 찾으려고? 신을 찾아서 또는 불가사의한 피조물을 찾아서?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령을 쫓고 있었을까?

그렇지만 인간은 끝없이 이어지는 숲과 들판,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면 모든 풍경들이 비슷비슷해서 지겨웠을 것이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흥분도 벌써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걸어간 거였다. 그때는 풍경에 무관심한 채 부르틀 대로 부르튼 자기 발끝만 쳐다보면서 묵묵히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만취하여 횡설수설하기 전까지는 늘 진지하였고, 때로는 상당히 흥분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그의 부드러운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듣는 쪽에서는 지겨워서 연거푸 하품을 한다는 걸 도대체 눈치 채지 못했다. 김 상무님은 오늘 저녁에도 또다시 그 지겨운 장광설을 늘어  놓을 모양이다.

“생각해봐, 그때 무슨 비행기가 있었나, 배, 기차, 자동차가 있었나, 말이 있었나, 낙타가 있었냐 말이야. 나이키, 아디다스도 없었어. 그래서,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순전히 맨발로 걸어서 험한 들판과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한 거란 말이지. 그들은 용기보다는 호기심이 많았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두려움과 맞붙어 이긴 거지.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한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출발부터 한 거였어. 그들은 대담한 사람들이었을 거야, 그렇지만 또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런 순수한 사람들이었겠지.

그러나 그 이동하는 무리 중에는 뛰어난 리더가 있었어. 그는 빅 맨big man이라고 할 수 있지. 나머지 무리들은 자신의 생존과 안전, 번식을 위해 그에게 몸을 의탁했지. 그렇게 해서 그들 무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 훨씬 후대의 일이지만 그러한 빅 맨의  원형으로 모세와 오디세우스를 꼽을 수 있겠지. 모세는 종교적 열정에 의지해 사막에서 풀뿌리와 메뚜기로 연명하며 40여 년 동안 히브리 족속들을 이끌었지.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모험을 감행했던 진정한 빅 맨이었어.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옛 고향과 그리운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고향은 곧 지루해졌지. 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알고 싶은 가슴 속 열망을 억누를 수 없어 단 한 척의 작은 배에 몸을 실고 또다시 험난한 바다를 향해 떠난 거야.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미지의 곳으로. 끝없이 머나먼 곳으로. 망망대해를 지나 이 세상 끝까지…… 죽음의 세계까지……. 그는 자신의 운명과 싸우고 숙명뿐만 아니라 신까지도 초월하기 위해 싸웠지.

그러나 까마득한 거야. 우리 인간들은 이제 겨우 출발했을 뿐이야. 아직 목적지에는 이르지 못했지. 하기사 우린 지금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거지.”

“상무님, 잠깐, 지금부터…… 벌써 취하셨어요. 그거 연속해서 너무 마시지 말라니까요. 안주 좀 드세요.”
 그가 대수로 공사의 현장 감리를 위해 리비아로 떠났던 1998년, 그 전 해 초겨울이었던가, 그날 저녁 무렵 찌뿌듯한 하늘에서 싸락눈이 잠깐 내리다 그쳤다. 그 허름한 술집은 회사 근처 뒷골목에 있는 오랫동안 지겹도록 다녔던 단골집이다. 하지만 그 집은 늘 여전했다.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으면서 비로소 술잔이 돌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소폭을 스스로 제조해서 연거푸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안주 감으로 맹물을 마셨다. 가끔 물김치 그릇을 들고 통째로 마시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술자리에서 삼겹살 한두 점을 집어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날도 만날 하던 버릇 그대로다. 그가 성급하게 술을 들이켜고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자칭 심미주의자이어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여인들의 건강미를 위하여 정중하게 건배를 하였다. 더욱 술기운이 얼큰하게 되면 평소답지 않게 (평소에 그는 업무관계 이외의 말을 하는 법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술자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얘기를 하는데 매번 똑같이 그 주제가 여행과 탐험에 관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막과 밀림에 일생을 바친 오지여행 전문가이니까. 


“저희도 그거 마실 줄 알거든요. 좀…… 제조해서 쫙 돌려주세요. 저희 목구멍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래 돌려야지. 하지만, 내 말 먼저 들어보라구. 그리구…… 돌리자구.”
“저흰 벌써 수십 번 씩 들었거든요. 오늘은 생략하면 안 될까요. 술맛 떨어져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는 몇 모금의 술로 목청을 가다듬은 후 고기 안주를 먹기 전에, 먼저 말을 해야만 한다는 거야. 내가 할 레퍼토리는 만날 이것 밖에 없거든. 잘 알면서…… 제발 좀 들어주라. 너희들이 날더러 사막에 미친 사람이라고 흉보는 것도 알고 있지. 그래, 흉을 실컷…… 흉을 봐도 상관 않을 거야.”

그는 교수가 어렵고 지루한 강의라도 하는 것처럼 혼자서 말을 이어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추운 기후, 건조한 환경, 열대우림 등 모든 환경에서 다 잘 적응한 거야. 호모 사피엔스는 적응의 천재야. 물론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분명히 여러 차례 멸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것으로 보아야겠지. 그러니까……

인간은 현명했다기보다는 지독히 배타적이었지. 호모라는 속屬에 있는 다른 종은, 다른 초기 인류들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플로렌시엔시스, 데니소바인들 말이야, 모두 멸종하고 단 한 종, 인간만 남은 거야. 무기를 손에 든 인간은 너무 잔인하니까 다른 종 인간을 만나면 강간을 하고 무자비하게 죽여서 삼켜버렸지. 우리의 조상님은 틀림없이 식인종이었어.

악착같이 다 밀어내고 혼자 살아남아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현명한 인간)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지. 그러고 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나불거렸지. 그건 중대한 오해, 착오인 거야. 인간은 오로지 감정적인 동물인 거야. 이성 그건 하찮은 거지. 인간에게 감정이 90퍼센트이면 이성은 기껏해야 5퍼센트 남짓이고, 나머지는 기타인 거지. 그래서 인간은 ‘나는 먼저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고 해야 맞는 말이지.
인간은 도대체 부끄러운 줄도 몰라…….

이동 중에 다른 무리의 멋진 여자를 보면 말이야, 남자들은 뿅 가서 자기 무리도 내팽개쳐 버리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 여자를 따라간 거야……. 원시시대에는 남자의 코가 짐승처럼 암컷 냄새에 극도로 예민해서 말이지, 십리 밖에 있는 여자 냄새도 맡을 수 있었거든. 그 시절에는 인간들도 유인원처럼 모두 털북숭이이었지, 그래도 예쁜 여자는 결국 눈에 띠었어…….

제우스 신이 처음부터 아름다운 여자를 창조한 것은 아니었어. 단지 여자를 만들었을 뿐이지. 그 여자 이름이 판도라 pandora이지. 그런데 아프로디테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주었고, 헤르메스는 신경질적이고 집착이 심한, 교활하고 배신하는 성질을 부여했지. 그런 거야. 여자란 장미꽃이지,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있는 거야.

어쨌거나 여자가 예쁘다, 아름답다는 것은 다름 아닌 건강하다는 표시인 거야. 나는 건강해서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 그러니, 어서 나에게로 와 빨리 해주세요, 당신의 유전자를 잘 증식시켜 드릴게요, 라고 광고를 하는 것에 불과해. 본래 모든 각각의 생물들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번식이 최우선인 거야.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그 다음인 거지. 물론 거꾸로 말하는 작자들도 있긴 하지.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다시 획득한 여자를 지배, 통제 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지. 그러나 여자는 마침내 그 통제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하여간에 원시인들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면서 다른 무리들끼리 혼혈관계를 맺게 된 거야. 서로 으르렁거렸던 무리가 동화된 과정이 예쁜 여자 때문인 거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오랜 기간 모계사회였거든.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단연코 모계사회인 거야. 동물의 왕인 사자 무리를 보더라도 그래. 그런데 예쁜 여자는 아름다움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군림할 수 있었어.

그러니까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봐야 돼. 여자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그건 다 쓸데없는 소리야. 그런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아. 터질 듯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가 최고거든……. 남자는 본래,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과에 속하는 동물 출신이라고 할 수 있지.”

그가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하면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였고, 발음도 분명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였다. 그는 술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그럭저럭 통제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들이 왜 그 위험한 길을 떠났겠어? 그 동기는 식량 때문일 수도 있고, 인간이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인구가 늘어나자 사냥터도, 농토도 부족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거야. 아프리카는 충분히 넓었고 그때는 에덴동산이었거든. 그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그 호기심이 없었다면 인간은 결코 동굴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그들은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떠났지. 어쨌거나 이동 중에 죽기도 많이 죽었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사나운 동물에 잡혀 먹히고, 목말라 죽고 말이야. 그들은 죽는 순간 따뜻한 고향을 그리워했을 거야.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이니까, 인간에게 여행이나 탐험은 본능적인거지. 그건 본능이야, 본능. 인간에게는 여행을 촉발하는 유전자가 있는 거야. 인간은 떠나지 않으면 몸살을 앓거나, 자폐증에 시달리게 돼있어.
사실은…… 진실을 말하자면……

새롭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지. 그러나, 꿈의 성취 뒤에는 좌절과 환멸이 뒤따라왔지. 꿈이 현실이 된 순간 그것은 부정되었거든.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절망한 나머지 다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출발을 결심했어. 그들은 또다시 아주 멀리, 멀리 떠났어.

현실 세계에서 삶이 더 이상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내면의 은신처인 심연 속으로 떠나갔지. 그리고 마침내 저쪽 세계로 영원히 떠났지. 그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거야, 인간의 꿈이란 게…… 그것에 내재된 비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끝이 안 보이는 거지. 인간들이 마침내 이 세계는 텅 빈 공허임을 자각하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아니면……불가능하거나.”

일행은 이제 간단한 말대꾸조차 하지 않고 혼자 말하도록 내버려두고 각자 알아서들 술잔을 돌리고 안주를 맛있게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너희들에게는 그 유전자가 하나도 없으니, 너희들 먼 행성에서 온, 1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별에서 날아온 외계인 아냐, 흉측하기 짝이 없는 외계인이 틀림없을 거야. 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발이 근질거리지 않는 거야?”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광설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여행과 탐험에 관한 이야기에는 지칠 줄 몰랐다. 또다시 자신의 말에 스스로  빨려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야기하는 동안 듣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적당히 침묵하는 법도 없었다. 술기운으로 더욱 불콰해진 얼굴에는 입을 헤벌리고 천진난만한 웃음이 넘쳤다. 그의 술집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황한 여행 이야기는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지루하게 하였다. 그가 아무리 직장 상사이긴 해도 듣는 사람들의 주의력이 더욱 산만해져 가고 있었다.

그럴 때는 마침내 일행들이 술맛 떨어진다고 가볍게 핀잔을 주면서, 그를 억지로 말려야 했다. 그리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상무님,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세요. 이젠, 너무 지겹단 말이에요. 상무님이나 여행인지, 탐험인지 실컷 다니세요.”
“상무님, 정말 그만 걸으세요. 그러다가 진짜 발병날 거예요. 사막에도 그만…… 지겹지 않으세요. 더 이상 젊지 않다구요. 이제 불혹의 나이라구요. 여행을 가면 자동차, 기차 타세요. 왜 사서 고생해요. 상무님이 스스로 변해야만 해요. 상무님이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 2차 가요, 삼성역 근처에 가면 끝내주는 데 있어요. 완전히 북창동식이에요, 제가 알고 있거든요. 아니면 시시한 노래방이라도 가요. 그게 차라리 낫거든요.”

이제 술과 잘 익은 고기가 계속 돌고 돌아서 술집 분위기는 파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반쯤 남긴 술잔들이 뒹굴고, 혀가 뒤틀리고, 실컷 웃고 떠들고, 누군 눈물을 찔끔거리고, 평소 점잖은 사람의 입에서 느닷없이 육두문자가 마구 튀어 나오고, 눈치 빠른 치들은 벌써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줄행랑을 쳤다.

그는 스스로 소폭을 제조하여 연속해서 마시더니 마침내 혀가 완전히 꼬부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끝없이 지루한 이야기의 흐름을 그만 놓쳐버렸다.
“그렇다면, 가야지, 가고말고. 그렇게 소원이라면 말이지. 그러나, 난 사막으로 가야만 하지. 사막으로, 사막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서울엔 아프리카의 사막이 없다구요. 다른 사막은 많겠지요. 사막 타령 그만 좀 하세요. 그 대신 벽이 사막색인 술집은 있어요. 온통 회갈색뿐이죠. 거길, 지금 가자구요. 나오는 여자들도 그 색깔에 맞춰 옷을 입거든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화끈한 델, 진짜 화끈한 델 가자, 화끈한 게 좋은 거니까.”
“하지만, 상무님 중간에 도망가시면, 안 되는 것 알고 계시죠. 오늘만은 절대로 안 돼요. 여자가 나와도 가만 좀 계세요, 도망치지 말란 말이에요. 여자가 상무님을 잡아먹지 않거든요. 전갈도, 독거미도, 암사자도 아녜요. 그냥 탱탱한 여자란 말이에요. 여자는 탱탱…… 탱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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