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탄산수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탄산수(발포성 생수)’와 ‘탄산음료를 구분하는 규정이 없어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각종 음료의 베이스가 되는 정제수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탄산음료수부터 천연광천수로 만든 탄산수까지 모두 탄산음료로 취급되고 있다.

24일 관련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어떤 물이 미네랄을 함유한 천연탄산수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원재료나 성분이 적힌 표시사항의 부정확한 정보로 선택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탄산이 거의 없는 수준(최저 농도 0.1% 미만)의 물만 ‘먹는 물 관리법’상 ‘먹는 샘물’로 관리되고 있다.

가령 수입 생수 ‘에비앙’은 해당 법을 적용받아 수원지와 무기물질 함량 성분표시(최소 5개) 등을 해야 한다. 수입업체 롯데칠성음료는 수원지(프랑스 에비앙)를 포함해 무기물질 함량(mg/L)(칼슘 39~98, 마그네슘 16~32, 나트륨 4~10, 칼륨 0~3, 불소 0~1) 등을 제품에 표기해 놓았다.

그러나 환경부가 일반 생수(스틸워터)만 취급·관리하는 바람에 현재 시판 중인 탄산수는 물 관련 규정이 아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공전’ 규정을 적용받는다. 탄산수 병 옆면에 무기물이 아닌 영양성분을 표시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정제수에 탄산 넣은 탄산수, ‘설탕 뺀 사이다’와 다름없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탄산수 대부분은 정제수에 탄산가스를 주입해 만든다. 정제수는 증류 방식이나 이온교환수지 등 정제 과정을 거쳐 만들기 때문에 이물질(미네랄 포함)이 거의 없는 순수한 물을 지칭한다. 화장품이나 음료수를 만들 때 사용된다.

롯데칠성음료가 출시한 ‘트레비’와 코카콜라의 ‘씨그램’ 등이 이런 정제수로 만든 대표적 탄산음료다. ‘당분 뺀 사이다’로도 볼 수 있다.

일화의 ‘초정탄산수’가 국산 천연광천수로 알려져 있으나, 원재료명을 ‘정제수’로 표기하고 있는 데다 회사측이 미네랄 성분을 밝히길 꺼리고 있어 이 물을 천연광천수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일화 관계자는 “초정탄산수는 초정리 지역 광천수로 만들고 있다”며 “원재료명은 식약처에서 정한 식품표기법에 따라 정제수로 표기했다. 정제하더라도 미네랄이 안 들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부 지침상 함량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수입산 천연탄산수…국내선 탄산음료로 둔갑?

문제는 수입산 천연탄산수다. ‘천연 미네랄 탄산수’로 공인된 제품들 조차 국내로 들어와 음료처럼 취급되다 보니 정제수가 아닌데도 정제수로 표기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산 페리에(플레인), 이탈리아산 산펠레그리노, 그리스산 샤로티, 독일산 젤터스 등 수입 천연탄산수 제품에 붙어있는 표시사항을 국내외에서 확인해 본 결과 이들 제품은 외국에서는 원재료명을 ‘천연광천수’로 표기한 반면, 국내에서는 ‘정제수’로 표기한 채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물’ ‘프리미엄급 물’을 표방한 유럽산 탄산수들이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정제수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산펠레그리노 수입사인 롯데쇼핑 롯데마트사업본부 관계자는 “식약청과 환경부 표시기준이 애매모호하다. 업계에서도 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탄산수 신고 코드에 정제수 또는 증류수로만 구분돼 있어 정제수라고 신고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생수 전문가인 이상선 박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는 “해외 천연탄산수의 경우 원재료명을 정제수라고 한 것은 수입업자가 사용한 표현일 뿐, 잘못 표기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탄산수 제품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물이 아닌 식품으로 분류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다수 탄산수 판매업체들이 원재료명을 ‘정제수’라고만 표기하는 실정이지만, 관계부처인 식약처는 상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식약처 식품소비안전과 한 사무관은 “정제했으니 정제수 아니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안일한 문제의식을 보였다.

◇전문가들, “법정비 등 정부의 생수관리 방식 바꿔야”

사실 이보다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무기질 함량과 같은 주요 제품 정보는 생략된 채 탄산수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페리에의 경우 1회 제공량당 열량이나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함량 등의 정보만 적혀있을 뿐, 미네랄 함량은 표시되지 않았다.

그 결과, 단지 정제수에 이산화탄소를 녹였을 뿐인 트레비, 씨그램 등의 탄산수나 ‘게롤슈타이너 스프루델’ 같은 수입 천연 미네랄 탄산수나 표시사항만 놓고 봤을 때 표시 성분(원재료명·영양성분)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든 탄산수가 미네랄 생수인 것으로 맹신하거나 미네랄이 들어가기만 하면 천연탄산수가 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을 정비하는 등 탄산수를 포함한 생수 관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태관 계명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현재는 지하수로 만들었는지 혹은 수돗물을 마구 처리했는지 원천 표시가 없어 알 수 없다. 또 지하수를 이용할 때만 먹는 샘물이 되기 때문에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법적으로 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선 박사는 “일반 생수(스틸워터)만 물이라 하고, 발포성 생수(혹은 천연미네랄 워터)는 물이 아니라고 하면 맞지 않다”며 “발포성 생수 역시 환경부가 관리해야 일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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