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최고의 연설 하나 남기고 얻은 마지막 영광

그 때 나는 내 평생에 최고로 멋진 연설 하나를 남겼다. 물론 이것은 우리 참모들이 나에게 들려준 얘기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 날 연설은 참 가슴으로 했던 연설이었다. 고양에서의 합동연설회 이후의 일이다. 분당의 중앙 공원에서 시장후보와 나를 위한 정당연설회가 있었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여기 저기 돌고 돌아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을 했다. 멀리서 봐도 사람이 꽉 차 있었다. 휴일이었고 날씨가 더웠던 탓에 공원에 놀러 나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청중이 되고 있었는데, 특별히 동원 대중은 없었다는 참모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대단한 인파였다. 그런데 차가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나는 아예 저 끝에서부터 내려 걷기 시작했다.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까 연단에서는 홍사덕 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홍사덕의원이 나를 발견하더니 '경기도지사는 꼭 장경우 의원을 찍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경기도가 삽니다'하면서 내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연설을 마치는데, 당연히 나에게 넘어올 줄 알았던 마이크가 넘어오지를 않았다. 난데없이 도의원 후보에게로 건너 뛴 것이다.

나는 일단 순서가 아닌가보다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쑥덕쑥덕하고 일어섰다. 앉았다하고 쪽지가 왔다 갔다 하면서 좀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여기는 시장후보 정당연설회인데 장의원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버럭 났다.

"지금 순서지에 이름이 올라와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요! 나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고, 이 당의 정당연설회에 내가 나와서 유권자에게 연설하겠다는데 도대체 무슨 하자가 있단 말이요, 연설 끝났으면 빨리 마이크 주시요!"

나는 이미 부천에서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정 그렇다면 좋다. 단상에 안 올라가마, 내가 여기 단상 아래서 연설하마!' 이런 생각이 밀려오면서 나는 단 아래에 선 채 연설을 시작했다.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지금 일어서시는 분도 있는데, 잠깐만 제 연설을 마저 듣고 일어서 주십시요! 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 장경우입니다."

내 목소리가 워낙 비장했던 탓이었을까. 갑자기 저쪽에서부터 '앉자! 앉자!"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일어서려던 사람들이 다 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단 아래에 선 채 연설을 시작했다. 정말 울분 속에서 가슴으로 하는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물론 당내의 갈등구조나 그런 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내 울분을 수도 서울로부터 소외받고 말 그대로 '봉'취급을 당하는 경기도의 처지에 담아 토해냈다. 아니나 다를까, 2분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유권자 중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거 누구요! 거 좀 올라가서 하쇼! 안 보이니까 올라가서 하라구!"

순간 또 어찌 그 말이 생각났는지…

"여러분 눈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내가 왜 저 높은 단상에 올라가야 합니까! 나는 여기 단 아래에서 여러분과 함께 서고 싶습니다. 단 아래서 서 있는 우리, 이것이 바로 우리 경기도의 실체입니다."

정말 어쩌면 그렇게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잘 이어지던지… 나는 20여 분의 연설을 막힘없이 해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호소했다.

"자, 이제 일요일 저녁 온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만찬이 기다려질 시간입니다. 그 만찬을 마칠 즈음 MBC를 켜시면 발 8시 50분에 제가 출연하는 광고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저의 구체적인 정책공약이 들어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밝힐 겨를이 없으니 이제 그 광고를 꼭 봐 주십시오."

연설은 끝났다. 때맞춰 가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청중은 움직이지 않고 내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정말 생각 이상으로 잘 된 연설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환호를 받았던 연설이었다. 내가 마이크를 놓고 나오자 내 참모들이 몰려와 내 손을 붙들고 더 기뻐했다. 내 평생 제일 멋진 연설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기분에 젖어보는 것도 잠시, 내 친척들 중 몇이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자네가 오기 전에 이종찬 씨가 다녀갔는데, 연설을 하면서 세상에 장경우의 '장'자도 꺼내질 않는거라… 조순 피알만 열심히 하고 끝내버리지 뭐야. 옛날에 대선 때 온 집안 식구가 달려들어 그렇게 뛰었는데, 어떻게 인정상으로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이 그렇게 신의없는 사람이었나?"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선거 며칠 안 남았습니다. 제발 우리가 삭입시다!"

나는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잠시 되돌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지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후보라고 내세워놓고 연설할 기회를 빼앗질 않나, 이제는 단상에도 못 올라가 단 아래에서 눈높이 연설이라는 걸 하게 하질 않나, 게다가 이제는 형제처럼 지냈던 이종찬 씨까지 와서 내 얘기 한마디 안하고 돌아갔다 하니, 섭섭함보다는 착잡함이 밀려왔다. 아무튼 나와 이종찬 씨는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내 평생의 가장 멋진 연설 하나를, 남겨놓고 경기도지사 선거는 끝났다. 나는 30여만 표 차이로 이인제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나는 이 경기도지사 선거가 떳떳하다. 당시 당으로부터 내가 지원 받은 금액은 법정 선거비용의 1/3 정도였다. 법정 한도액에도 훨씬 못 미치는 비용으로 그 선거를 치러 백만표 이상을 얻었다.

그 때 내 홍보지마저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꺼이 나를 찍어줬던 유권자들! 아마도 평생 그 고마움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있는 대로 상처를 받고 어쩌지 못해 출마한 후보가 마지막으로 얻은 영광이었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남긴 것

선거 후 나는 신세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선거 이틀 후에는 김대중 씨에게도 찾아갔다. 마침 광주시장으로 당선된 성원종 씨가 와 있었다.

"당에서 도와주셨음에도 이에 보답을 못해 미안합니다."

내 말에 김대중 씨는 아주 냉랭했다. 그렇게 차가운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곧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얼마 후 드디어 신당 창당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마침내 김대중 씨와 동교동계 의원들은 민주당을 깨고 나가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것은 내가 본 곡예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곡예요. 가장 추악한 정치의 이면이었다.

그러나 나는 경기도지사 사건을 겪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진짜 야당인이 되어 갔으며 동지들과의 뜨거운 동지에도 맛보았다. 비록 국회의원 뱃지와 상임위원장 자리를 다 빼앗겼지만 결코 후회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권모술수와 음모와 계략과 마침내는 폭력까지 정치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모습을 다 보았다. 비로소 정치의 음지를 제대로 본 것이다.

그것은 내가 비로소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서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정치현장에서 상식을 가지고 살아남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나에게 백만표를 던져주었던 유권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또 어쩔 수 없이 정치의 희망을 보았으니… 정치인들이 엄청난 곡예 속에서 함께 부대끼면서도, 나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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