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것은 저도 출판사 일에 재미를 붙였다는 겁니다"
안병훈(77)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의 너스레에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18일 오후 서울 동숭동 샘터빌딩에서 열린 기파랑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장.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낸 안 대표는 딱 10년 전인 2005년 4월18일 같은 장소에서 기파랑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
그는 인사말에서 10년을 되돌아보며 "책이 대박이나 돈을 벌게 돼서 한 이야기는 아니고 반 평생 신문사에서 몸담으면서 느낀 것과 다른, 출판인으로서 재미가 있었다"고 흡족해했다.
"신문사에 있을 때 경쟁 신문과 매일 매시간 싸워서 이기고 질 때의 성취감과 좌절감이 있었고, 아젠다를 끌어오는 재미도 있었죠. 신문은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는 허망함도 있었어요. 반면 책은 지속해서 남아 있죠. 좋은 글을 받아 정성껏 만들 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의 느낌도 좋고,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또 다른 묘미와 재미를 즐기고 있어요."
기파랑은 출판사 샘터의 임프린트(출판사 내 별도의 브랜드로 출판권 전권을 해당 출판사에 맡긴다)다. 샘터의 김성구 대표가 안 대표의 조선일보 후배 기자인 것이 인연이 됐다. 김 대표는 샘터 빌딩 4층을 기파랑에 내주기도 했다. 기파랑이 그간 펴낸 책은 '우에노 역 공원 출구' '남로당'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항일 민족 언론인 양기탁' '자유·민주·보수의 길' 등 238종 총 243권이다.
"한 달에 두 권꼴입니다. 큰 출판사가 볼 때는 별거 아니지만, 저희 형편에서는 대단한 숫자에요. 좋은 글을 써주신 저자, 책을 예쁘게 만들어준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문서를 써주면서 단 1원의 인세도 받지 않은 (자신의 아내인) 박정자 (상명대 명예) 교수, 저도 10년간 한 푼의 급여도 받지 않았어요. 편집장 이하 모두 낮은 급여에도 희생을 해줘서 지금의 기파랑이 있게 됐습니다."
자그마한 출판사의 10주년 창립식이라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으나 "기파랑 저자나 책을 산 여러분이 도움을 준 만큼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알렸다.
창립식 때 꺼냈던 성경 구절의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를 되새겼다. "개인의 야망이 아닌 모든 이들의 꿈을 담은 말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상 세대라 종이책을 멀리하고 있어요. 영상 문자에 중독된 사람은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어요. 지성적인 분위기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종이책, 신문을 많이 접해야 하죠. 미미하겠지만, 종이 문자를 살리기 위해 앞으로도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안 대표가 출판사를 차리고 처음 달려간 곳이 당시 한림대 총장이던 이상우(77) 전 총장의 집무실이었다. 이 전 총장은 기파랑의 첫 책인 루돌프 J. 러멜의 '데모사이드'(2005)의 출간을 도왔다.
이 전 총장은 이날 축하 말에서 출판사 이름에 대해 언급했다. 기파랑은 '삼국유사'에 수록된 신라 시대 향가 '찬기파랑가'의 주인공 '기파랑'에서 이름을 따왔다. 신라 시대의 뛰어난 애국자이자 기백이 높았던 이로 알려진 화랑이다. 그는 "오랜 영화 속에서 허물어져 가는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고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한 기파랑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면서 기파랑이 앞날을 축복했다.
기념행사 막판에 대형 케이크가 등장했다. 하얀 크림 위에 초콜릿색으로 또 다른 층을 쌓았다. 위에 있는 층은 책이 펼쳐진 모양이다. 그 안에는 기파랑이 그간 출간한 책 목록이 빼곡히 적혔다. 안 대표와 박 교수 등이 이 케이크를 자를 때 곳곳에서 잘라 먹기 아깝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김현호 뉴시스 대표이사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윤주영 전 문화공보부 장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인보길, 조우회(조선일보 사우회) 회장,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 기자명 김승혜 기자
- 입력 2015.04.18 21:03
- 수정 2015.04.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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