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좌절된 꿈

결과는 참패였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지역구 당선은 겨우 9명이었다. 여기에 전국구를 합쳐도 겨우 15명에 불과했다. 중견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렸고, 그나마 겨우 남아 있던 15명의 의원 중 나중에는 3명이 신한국당으로 가버리고, 거기에 다시 장을병 씨까지 떨어져 나가자 이제 남은 것은 겨우 11명. 민주당은 국회 교섭단체도 안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나 역시 낙선의 고배를 마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선거구인 안산은 중앙정치의 무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남인구가 35%에 충청인구가 30%이고 게다가 여당마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도 아니고 DJ를 거부한 내가 들어갈 자리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개혁의 꿈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왜 그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우리의 개혁 정치가 너무 환상적인 이상이었던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이란 무엇인가! 바로 삼김의 '그늘'이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개혁, 새로운 정당은 이 삼김의 그늘 아래에서 어김없이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이고, 이 삼김정치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한국정치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확인시킨 것이 바로 15대 선거였다 그것은 내가 다시 한 번 직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 정치의 벽이자 한계였다.

이기택 총재의 출사표

민주당은 교섭단체가 안되다 보니 국회에서 구심점을 잃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1년여를 보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있는 97년! 정말 이 해만큼 한국의 정치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가 또 있을까? 정말 많은 일들과 이변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나는 또 어김없이 그 회오리바람 속에 놓여 있었다.

7월에 포항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기택 총재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부산을 떠나 이곳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이 12명밖에 안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데, 거기에 총재가 국회의원이 아니다보니 더 힘이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그러나 나는 출마에는 반대였다. 당시 포항에서는 박태준 씨가 이미 출사표를 던져놓고 있는 상황이었고, 내가 볼 때 두 사람이 함께 나왔다가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총재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의견과는 달리 이총재는 결국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이총재와 마주 앉았다.

'박태준 씨를 좀 만나볼 순 없겠소?"

"…"

"권오을 대변인을 동경까지 보냈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왔으니 내 답답해서 당신을 부른 거 아니요, 그래도 당신은 박태준 씨와 가깝지 않소."

"만나라면 만나야죠… 그런데 일단 만나는 건 좋은데, 만나서 나도 뭔가 할 말을 가져가야 하지 않아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 먼저 한 가지만 확인해 봅시다. 만약 박태준 씨가 끝까지 나간다고 하면 포기하실 용의가 있으십니까?"

"만약 박태준 씨가 민주당의 당적을 가지고 나간다면 내 포기하지."

"만약 민주당 당적을 갖을 용의가 없다고 하면요?"

"그거야 안되지"

"… 일단 분명한 것은 두 분이 함께 나가는 상황에서는 결코 승산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첫째 박태준 씨가 나가서 당선이 되고 나중에 총재님의 대권도전에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면 포기하시겠는지, 그리고 또 하나 박태준 씨가 대권도전 의사가 있다면 여기에 총재님이 도움을 주시겠는지…"

"… 일단 한 번 해 보시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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