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밀사 회담

약속은 쉽게 이뤄졌다. 동경의 한 호텔에서 만나자 박태준 씨는 정말 반가워했다. 나로선 박태준 씨의 본의 아닌 외유에 제대로 한번 인사도 못했는데, 정작 이기택 총재의 문제 때문에 밀사로 파견된 꼴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한참 동안 옛날 민정당 얘기며 민자당 내에서 민정계의 구심점을 찾고자 노력했던 얘기 등을 나눴다.

"…사실 제가 오늘 온 것은… 박회장님이 꼭 포항에서 나가시겠다면 민주당의 당적을 가지고 나가실 수는 없겠는지요… 사실 이기택 씨가 이번에 나가려고 하는 것도 달리 나가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지 민주당을 살려보겟다고 내린 용단인 것 같습니다. 이시겠지만 도독적으로 민주당만큼 깨끗한 당도 없고, 다만 이것이 삼김정치의 벽에 부칮히다 보니 이렇게 작은 정당으로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현재 정치인들 주에 이기택 씨만큼 때 안묻은 사람도 드물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박회장님께서 민주당으로 나가만 주신다면 이기택 씨는 이번에 나오지 않도록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박태준 씨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더니 느닷없이 지난 4년 동안 본의 아닌 외유를 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과 참담함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특히 자기의 가까운 친지들이 받은 고통들, 심지어는 사돈댁까지 조사를 하고, 아들은 취업이 안되어 미국에서 귀국도 못하고 있는 상황 등에 상당히 가슴 아파 했다. 나 또한 막상 듣고 있자니 여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 내가 이제 와서 국회의원에 나가겠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정치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그러는 것처럼 말들을 하는데… 생각해 보시오. 내 70평생 그래도 국가 기간산업에 기여한다는 일념으로 일해 왔는데 그런 내가 이제 와서 마치 무슨 역적처럼 몰려서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나는 그래서 나갈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순수하게 내 개인의 명예회복이요, 그런 내가 무슨 당 이름을 가질 필요가 있겠소. 자민련도 국민회의도 민주당도 나는 이름을 걸지 않을 것이요."

"… 그러시다면 만약 박회장님께서 큰 정치에 뜻이 있으시다면, 우리가 회장님을 도와드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92년에 노태우 씨에게 한번 당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해 본적 없소."

"그렇다면 만약 이기택 씨가 도전한다면 도와주실 용의는 있으십니까?"

"… 그것은 나중에 두고 봅시다.'

"좋습니다. 일단 귀국하시면 두 분이 한번 만나십시오, 만나시면 얘기가 잘 될 겁니다."

"만나지 뭐!"

일단 얘기는 그 선까지 진행되었다. 마침 최재욱 의원이 동경에 와 있었다. 함께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자신들이 한 여론조사를 내 놓았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박태준 씨와 이기택 씨가 함께 나올 경우 8:2로 아예 말도 안되었던 것이다.

이총재의 도전과 좌절

돌아오자마자 이기택 총재를 만나 동경에서의 얘기를 다했다.

"곧 귀국하신다고 했고 또 만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으니까 일단 두 분이 만나 보십시오, 사실 두 분 다 YS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도 있고… 아마 만나시면 얘기가 잘 될 것으로 봅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틀 후 개인적인 일로 미국으로 갔다. 그런데 미국에서 은근히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해보니, 만나기는커녕 점점 더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피곤함을 느꼈다. 두 사람 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데, 어차피 선거전에 돌입했다 하니 가봤자 곤란할 일 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피곤할 일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국에 있을 수만도 없는 일. 내가 25일 만에 돌아오자 공항에 총무국장과 부총장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는 첫 마디가 '내일 포항에서 현판식이 있으니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포항에 도착해 보니 이기택 총재는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다.

"당신이 미국 가 있는 동안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어!"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그 한 마디를 던져놓고는 바로 이기택 총재의 부인 이경의 여사에게 얘기 좀 하자며 밖으로 나갔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하니 다행입니다만… 만약 이번에 선거에 지면 국회의원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총재님은 다시 정치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그러니 이제 필사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는데… 제가 일단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내가 이경의 여사를 보자고 한 건 선거전에서 이경의 여사가 차지하는 역할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하기 힘든 얘기를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큰 결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공이 던져진 이상 나라도 십자가를 져야만 했던 것이다.

"먼저 사모님은 상당히 미인이십니다. 그러나 너무 화려하시다 보니 유권자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박태준 씨의 경우 YS로부터 엄청난 보복과 피해를 받은 사람으로 포항시민들이 볼 때는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공감대를 사고 있습니다. 이걸 누르려면 이기택 총재 역시 한평생 야당을 해 온 사람으로 이렇게 어려울 때 고향으로 왔으니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공감대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필요합니다. 수수한 차림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서시는 것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잘 알겠어요."

"그리고 사실 총재님은 선거를 하도 많이 치러본 분이고 또 7선 의원이다보니 당신보다 선거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 그대로 통반장을 다 하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참모들에게 맡기고 후보는 유권자들을 만나는 데에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누가 드리겠습니까? 사모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는 사모님이 총재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역할을 맡으셔야만 합니다. 제가 이 두 가지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와서 이총재에게 '5분만 얘기하자'며 자리에 앉았다.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 모든 것이 결정납니다. 이제 사활을 걸고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번 선거만은 꼭 참모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참모들이 시키는대로 하셔야 합니다.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시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알았어!"

"… 박태준 씨와는 희망이 없는 겁니까?"

"걱정말라구! 이번 선거. 내가 이겨!"

나는 밖으로 나와 여러 사람을 만나 여론 조사 추이를 알아보았다. 결과는 뻔했다. 그런데도 이기택 총재는 된다고만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선거란게 그런 것일까? 이총재처럼 선거를 오래 치르고 선거의 전문가가 되다시피 한 사람도 막상 선거에 돌입하면 자기 주변만 보이는 법인 모양이었다.

나는 포항에 있어봤자 할 일이 없었다. 자칫 박태준 씨라도 만나면 여간 난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참모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해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중앙당에 앉아 매일 올라오는 보고를 받는데 우리쪽의 사기는 갈수록 충천되어 갔다. 그런데도 내가 검토해 본 결과는 영 다르기만 했으니… 그렇다고 부총재 입장으로 언제까지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다시 포항에 내려갔다. 그리고는 사랑방 좌담회를 열어 유권자들을 만났다. 내가 봐도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면 또 아니었다. 그러나 포항에서 박태준 씨를 누른다는 건 뭐로 보나 어려운 게임이었다.

드디어 선거 날.

개표 결과는 참패였다. 그런데 하필 또 개표 다음 날이 이기택 총재의 60회 생일이었다. 참담한 기분 속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나는 이기택 총재에게 '일단 좀 쉬시라'는 말을 남긴 채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 날 조선일보 1면에 민주당의 제정구, 원혜영, 유인태 씨 등이 조순시장을 만나서 국민후보로 추대코자 한다는 기사가 났다. 이른바 대선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은 바람이고, 당 입장에서는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당 총재는 지금 정치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잇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는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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