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혜 기자]"메르스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표절 논란까지, 정망 미칠 지경입니다."

문학·출판계가 연이은 표절 논란으로 충격에 빠졌다.

도서출판 크눌프가 최근 발간한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세트도서가 표절시비로 소송이 예고된 가운데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도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서 소설 시장, 출판산업 전반의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7일 문학·출판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 신경숙(52·사진)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와 몸살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45)은 지난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것.

이 씨는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 대한 표절은, 한 소설가가 '어떤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문건자료'의 내용을 '소설적 지문'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활용하는 등'의 이른바 '소설화(小說化) 작업'의 결과가 절대 아니다"며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크눌프 출판사가 번역해 내놓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가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지난 5월 출간된 크눌프 판본은 현재 KBS 금토드라마 '프로듀사' 테마소설이라는 광고 문구를 걸고 주요 서점 등지에서 시판 중이다.

앞서 문학동네는 지난 10일 자사의 네이버카페 게시판에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의 국내 판본인 민음사와 문학동네, 크눌프판을 각각 비교하는 글을 올려 표절 의혹을 공식 제기했다.

문학동네는 도서출판 '크눌프'의 표절 의혹과 관련해 금명간 검찰에 고발장을 정식 접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표절 의혹 피해 당사자인 민음사 측도 별건의 고소장 제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표절 논란으로 문학에 대한 대중의 외면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설 장르의 장기 침체과 맞물려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올해 상반기(1월1일~6월14일) 도서판매 결과를 집계한 결과, 처음으로 인문 분야가 소설 분야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 분야가 전체 판매에서 점유율 7.6%로 1위를 차지했으며, 소설 분야 판매 점유율은 지난해 8.6%에서 올해 7.3%로 1.3%포인트 떨어져 2위로 내려앉았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문학보다 인문학 도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비롯해 종합 10위 중 3종이 인문 분야였다. 100위 권에서는 지난해보다 2배나 많은 14종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도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였다. 소설은 상반기 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반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위), '하버드 새벽 4시 반'(4위), '지지 않는 청춘'(5위), '대화의 신'(8위), '7번 읽기 공부법(9위)' 등 자기계발서에 인문학·실용성을 더한 도서가 10위 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인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스마트폰의 발달로 지금은 모든 게 검색이 가능한 시대"라며 "소설의 경우 한 문장, 아니면 한 단락을 그대로 베낀 것을 표절로 봐야할지 등 표절의 정의도 재정립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표절을 관행처럼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사람이나 독자, 사회 전체가 표절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엄격한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표절은 출판계의 뿌리깊은 문제로, 표절에 대한 윤리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표절이 근절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설을 둘러싼 표절 시비는 문학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며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온라인·모바일 등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고, 독서인구가 현저히 감소한 상황인 만큼 더 이상의 표절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표절없는 정직한 글쓰기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때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