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시사플러스 회장
우리 국민은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게임은 관람과 응원을 참 잘한다. 심지어 심판의 그릇된 심판조차도 잘 찾아낸다. 관전수준이 대단히 높다.

정치도 게임이다. 국민이 관람자이면서 심판이다. 그런데 심판이 게임 룰(Game rule)도 몰라서야 되겠는가?

사람들은 국회가 조용하길 바라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다투면 왜 싸우느냐고 야단이다. 야당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면 욕을 한다. 심지어 국회가 왜 필요하냐고 한다. 그러면 정부가 독재를 해도, 무능해도, 그릇된 정책을 집행해도 그냥 내버려두란 말인가.

국회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여야가 정책을 두고 정부의 논리와 반대세력의 논리를 정확히 대변해 줘야 한다. 국민들이 어느 정책이 옳은지 확실히 알게 말이다. 그리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표결처리하는 게 옳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말이다. 이를 보고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정치인을 표로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당은 현 정권 즉 정부를 대변한다. 야당은 현 정권의 반대세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야당에게 정부의 잘못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도둑이 들었는데 개보고 짖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에 협조하는 것은 가만히 있거나 표결에 응해주는 것이다. 이번 황교안 국무총리 동의안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표결처리에 동의했다는 것은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횡포에 소수당의 격렬한 저항으로 국회가 국민적 지탄을 면키 위해 여야합의가 없으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하여 생긴 법이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이다. 이제는 야당의 오버, 주도권행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이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법이다.

정치에도 할 말이 있고, 해선 안 될 말이 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다.

현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의 논리나 북한정권의 말이나 비슷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야권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면 호남사람들은 종북세력이란 말인가. 국민들의 애국심만 사라지게 할뿐이다. 유신시대에 야권인사들을 빨갱이로 매도한 일이 있다. 결국 국민들의 반공심만 무력화시켰다. 반공교육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상한 야당의 국회의원도 있다. 친노 김경협 의원은 비노 의원들을 ‘새누리당 세작’이란 표현을 써서 물의를 일으켰다. 극우파가 야당보고 ‘좌빨’이라고 하는 것이나, 자당 비주류의원을 새누리당 세작이라고 하는 것이나 극우적 성격은 매한가지다. 결과적으로 급진파보다 극우파가 국민과 당을 분열시키고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에 따라 정치행태가 달라진다. 영남, 호남, 강남의 삼남 주민들은 강아지를 출마시켜도 투표하는 정당이 따로 있다. 한마디로 무권자(無權者)들이다. 국회의원 3분의1에 해당하는 전국구의원은 임명직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 4분의3 정도는 후보등록과 동시에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누구를 대변하겠는가? 공천 준 당직자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삼남주민들은 정치인만 탓할 게재가 못된다.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싸우면 판사는 판결하기가 쉽다고 한다.

평소에 국회에서 여야의 싸움을 눈여겨보면 선거에서 유권자가 심판하기가 쉽다. 비겁하게 정치인 탓만 하지 마라. 재선이상 의원은 정치인 욕하기 전에 유권자가 먼저 책임져야 한다. 누가 그런 정치인 선출하라고 총칼대고 협박이라도 했단 말인가?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유권자는 표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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