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서 C고시원을 운영중인 문모씨는 지난해 골목 맞은편에 H고시원을 열었다. 복도는 C고시원의 두 배, 방도 1.5배나 넓다. 바닥과 벽은 타일을 붙여 화사하게 꾸몄다. 인테리어를 강화한 만큼 방값도 올렸다. 이곳 월세는 40~55만원으로 C고시원(23만~35만원)보다 약 두 배에 달한다"

"강남구 개포동의 A 고시원도 지난해 문을 열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기존 고시원보다 두껍게 벽을 설계했다. 특히 방마다 도어락을 설치해 보안성도 강화했다. 이 고시원의 방값은 한 달에 45만~65만원이다. 흡연할 수 있도록 발코니를 낸 방은 좀 더 비싸다"

최근 위 사례처럼 기존 고시원보다 넓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럭셔리 고시원'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넓은 복도와 방, 화려한 타일로 치장한 인테리어에 도어락까지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럭셔리 고시원은 어둡고, 시끄럽고, 보안이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기존 고시원이 환골탈태한 셈이다.

저금리로 고시원 투자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 몫했다.

그만큼 방값도 비싸다. 기존 고시원의 방값이 보통 20만~35만원인데 반해 45만~60만원으로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일반 원룸 및 다가구주택 월세(강남권 제외)의 경우 보통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40~55만원의 월세를 부담한다. 보증금을 제외하면 월세 부담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럭셔리 고시원'은 서울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럭셔리한 외관에 맞춰 '리빙텔',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원룸텔' '레지던스' 등의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 고시원보다 수준 높은 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명칭부터 차별화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똑같이 고시원일 뿐이다. 서울시 고시원 인허가 기준에 따르면 사업자가 이름을 달리 붙였을 뿐 이들은 모두 고시원으로 등록된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고시원은 모두 6281개에 달했다. 1년 사이에 123개 고시원이 새로 문을 열었다.

고시원 중개사이트를 통해 최근 1~2년 신축한 고시원을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럭셔리 고시원'으로 나타났다. 이 사이트 관계자는 "최근 신축 고시원이 부쩍 늘었다. 이들 고시원은 인테리어 등을 고급화해 차별화한다"며 "그만큼 방값은 비싸지만 수요도 많다"고 말했다.

 
목돈 없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아

'럭셔리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인이다. 기존 고시원에는 주로 고시학원에 다니는 학생,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산다. 반면 럭셔리 고시원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나 새내기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다.

고시원 관계자는 "(럭셔리 고시원에는) 언제 직장을 옮길지 모르는 비정규직 직장인들이 많다"며 "보증금 부담이 없는 데다 일반 고시원보다 방이 깨끗하고 넓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내기 직장인들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입장에서는 럭셔리 고시원이 매력적이다. 월세를 낼 수 있는 수입은 있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낼 만한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보증금을 받지 않고 매달 월세만 선급으로 받는다.

임정원(32·직장인)씨는 마포구 합정동의 직장 근처 'L 고시원'에 매달 43만원을 내며 살고 있다. 임씨는 "직장 때문에 인근 원룸을 찾았지만 보증금 부담 때문에 포기했다"며 "여윳돈이 없어서 럭셔리 고시원을 택했다"고 말했다.

월세 난민이 들어난 것도 '럭셔리 고시원' 전성시대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 현재 전체 임대차가구의 월세 비중은 55%를 넘어섰다.

월세 수요의 증가로 월세 경쟁 또한 치열해지자 보증금을 부담할 여유가 없는 '월세 난민'도 증가하고 있다. 취업난에다 비정규직 증가 여파로 '월세 난민'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럭셔리 고시원'이 등장한 데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삶의 질을 중시한다"며 "자금이 넉넉치않아 고시원을 선택하지만 이왕이면 넓고 쾌적한, 질 높은 주거공간을 찾다 보니 럭셔리 고시원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형 부동산으로서 '럭셔리 고시원'을 찾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리가 낮다 보니 은행 예금대신 투자할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며 "최근 '고시원을 사도 괜찮느냐'며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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