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운하, 연극배우
[김승혜 기자]한달에 10만원도 못 버는 직업이 있다면 믿을까?

연극배우 김운하(40·김창규)와 영화배우 판영진(55)의 사망으로 생활고를 겪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를 겪다 사망한 뒤 2012년 이른바 '최고은법'으로 통하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무명 문화예술인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운하는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고인이 심부전증 등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외상이 없는 만큼 병사로 추정하고 있다. 발견됐을 당시 사망한 지 4~5일 가량 지난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 전부터 해당 고시원에서 혼자 산 고인의 주검은 무연고 처리됐다. 24일 현재까지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공연한 극단 신세계의 연극 '인간동물원초'를 유작으로 남긴 김운하는 내로라하는 연극인들을 양성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최근 월급은 50만원 안팎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종종 막노동도 겸했다.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던 판영진의 사망 소식은 김운하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23일 전해졌다. 전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2008년 영화 '나비두더지' 이후 작품 활동이 뜸해지자 자동차 딜러로 일해오던 고인은 그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망 직전 지인에게 '힘들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난 배우 우봉식도 극심한 생활고로 우울증을 앓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2년 10개 분야 2000명을 조사해서 발표한 '2012 문화예술인실태조사'(3년 마다 시행)에 따르면 66.5%가 월평균 수입 100만원 이하로 나타났다. 50만원 이하도 25%나 됐다. 수입이 없다는 응답도 무려 26.2%가 나왔다.

하지만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은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만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연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예술인에서 제외되는 등 현실적이지 못한 기준 등으로 예술인들의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긴급복지지원 사업도 시작됐지만 예산 부족과 홍보 부족으로 많은 예술인들이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문화 생태계 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3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를 보면, 2012년 대학로의 연극시장 규모 및 현황을 파악한 결과 대학로 대표 연극인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30대 미혼 남자 배우'로 월평균 114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연극과 관련된 수입은 77만원에 불과했다. 김운하의 예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연극 무대는 한정돼 있고 계속해서 고급 인력들이 몰리니 '열정 페이'를 감당해야만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연극 외 아르바이트 등의 활동을 할 수밖에 없고, 연극 출연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로의 한 작은 극단 관계자는 "'예술인복지법' 등 예술인들의 복지를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선 그런 지원 없이 연극인들이 연극 만으로도 생활해나갈 수 있는 대학로 산업 자체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