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시사플러스 회장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리더는 있는데 리더십(Leadership)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도 있고, 여당 대표도 있고, 야당 대표도 있다. 분명히 리더가 있다. 그런데 왜 리더십이 없다고 하는 걸까?

조그만 친목모임을 해도 회장이 잘나오지 않는 회원한테는 전화도하고, 애로사항도 경청하며 모임에 참석을 권유한다. 회원끼리 서로 삐치면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은 그런 게 없다. 알아서 따라오던지 아니면 말라는 식이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하면 심지어 적으로 간주한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대표시절 비서실장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사무총장이었다. 대선 선거대책본부 본부장이기도 했다. 박대통령이 그들과 술한잔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 느닷없이 유승민 원내대표가 배신을 했다는데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 연급법이든 국회법개정이든 중요국사는 대통령이 당직자들을 불러 사전에 의논도 하고 심지어는 야당지도부도 초청하여 협조를 요청하는 게 상식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 그리고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법이나 국회법 개정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국회법개정도 정부시행령이 법률에 배치될 경우 국회가 이를 시정 요구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국회가 제정한 법을 시행하는 시행령을 만들면서 법률에 배치된다고 판단되는데 국회가 이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인기리에 방송됐던 연속극 ‘대왕세종’을 보면 세종은 정적이었던 황희를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영의정을 시켰다. 역모를 주도한 조말생도 죽이지 않고 그 재주를 여진족을 정벌하는데 활용했다. 심지어 천민인 장영실도 그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등용하였다. 세종의 리더십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적도 활용하는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보고 싶어 한다.

반면 선조는 자기보다 뛰어난 신하를 질투하여 경계하였다. 전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고문까지 했다. 심지어는 아들인 광해군이 자기보다 국민적 신망이 올라가는 것도 시기하고 삐치기 일쑤였다. 선조의 리더십은 삐침의 리더십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수백만의 국민만 목숨을 잃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적들을 일방 회유하고 회유가 되지 않으면 정보부를 시켜 혼내주며 조국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강온 전략을 구사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오늘날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덕택이라고 여긴다. 지금은 국정지표조차도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정치는 정적을 다스리는 것이다. 정적을 다스릴 때는 제일먼저 회유책부터 쓰는 것이다. 하긴 하나 밖에 없는 자매 박근영 과도 화해를 못하는데 정적을 다스리라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에 대한 열망과 강온 양면을 구사하는 강력한 리더십에 향수를 느껴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보수진영의 사람들조차도 요즘 허탈해하는 것을 박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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