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각자의 가슴 속에 자기 운명의 별이 있다.

— 실러

 

가장 강한 사람도 운명을 막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일찍, 악인은 늦게 죽는다.

— 다니엘 디포

 

보츠와나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시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은 무섭게 쏟아지고, 비가 언제 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며, 비가 내릴 기미가 도통 안보일 만큼 너무 막막한 때. 어느 날 기적처럼 갑작스럽게 천둥번개가 치고 비를 잔뜩 머금은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면서 오카방고 삼각주에 홍수가 찾아온다.

그런데 우기가 다가오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덥고 건조해진다. 세상이 온통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온듯한 열기에 들뜬다. 부족민은 이때쯤 잔뜩 기대에 부풀고 들떠 있어서 관목 숲과 어린아이의 키만큼 자란 큰 풀들을 휘저으며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들어도 빗소리로 착각한다. 그 살랑거리는 소리는 비가 처음 땅에 내려올 때 나는 소리와 너무 흡사해서 속고 마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바예이족 사람들은 강가로 몰려 나와서 외쳤다.

“비야 내려라, 어서 내려라. 쏟아져라. 끝없이 쏟아져라. 여기저기에 실컷 뿌려야지.”

“물이 오고 있다네.”

“물고기도 오고 있다네.”

“수련이 곧 필거야.”

“그래 맞아, 생명이 오고 있는 거야.”

그러나 우기 중에도 한동안 비가 그치고 옅어져 가는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제발이지 비를 듬뿍 듬뿍 내려주십시오. 저희들이 물에 빠져 죽어도 상관없으니. 하늘이여! 변덕을…… 변덕을 버리소서.”라고 부르짖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홍수로 넘친 물이 타들어갔던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셔서 사바나는 불과 며칠 만에 싱싱한 초원으로 탈바꿈한다. 메말랐던 삼각주에 갑자기 생기가 감돌고, 땅의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거의 죽어있던 풀줄기 안으로 습기가 스며들자, 잠자던 개구리들은 잠에서 깨어나 요란스럽게 울어대면서 잊고 지내던 식구들을 불러낸다.

오카방고 강의 습지에는 날카로운 지느러미가시와 독성 점액을 가진 은색메기가 떼를 지어 무더기로 물길을 오르면서 미친 듯이 파닥거리고, 민머리황새들이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밤이 되면, 낮 동안 강기슭에서 햇볕을 쬐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던 악어 떼들이 사냥을 하기 위하여 활개를 치고, 남쪽에서는 가젤, 얼룩말, 코끼리들이 습지대의 습생식물들을 이리저리 가볍게 헤치고 무리를 지어 찾아온다. 아프리카 물소가 삼각지의 여울을 건너고, 포식자인 사자들이 그들을 뒤쫓아 몰려온다.

앙골라 고지에서 발원한 물길은 완만한 원을 그리며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오카방고 강으로 밀려왔다가 삼각주를 흠뻑 적신 다음 칼라할리 사막 가장자리에 도착한다. 삼각주의 범람 지역은 계절에 따라, 해에 따라 크게 바뀌고, 수많은 물길과 섬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여기에서도 대자연의 순환과 반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강물은 사막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모래 속으로 숨어 버리거나, 일부는 자신을 증발시켜서 바람의 가슴에 안겨 멀리 날아가 버린다.

홍수는 매년 4월쯤이 절정기여서 5월이 되면 벌써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대지는 다시 바싹바싹 메말라간다.

그런데 그런 우기도 곧 끝나간다. 우기의 끝자락에서 먹이가 풍부한 강이 마르기 시작하고, 수만 마리의 홍학은 이곳저곳 물웅덩이에 갇혀 팔딱거리는 손쉬운 먹잇감을 포식하면서 호화로운 최후의 만찬을 즐긴다. 그 후 칼라하리를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혹독한 건기 동안 머나 먼 해안지대에 머물면서 이듬 해 사막의 비를 알리는 신비의 신호를 기다린다. 그들은 매년 귀향을 되풀이한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햇빛이 한결 누그러졌다. 건기가 시작되어 누렇게 물든 사바나의 풀밭 위로 흰 구름이 몰려 왔다가 사라지면서 황금빛 햇빛이 옅게 흩어졌다. 멀리서 흑백뻐꾸기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허허벌판이 너무 고요하였다. 나는 풀벌레소리 아니면 아침에 먹은 무슨 진통제 때문인지 귓속에서 계속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갈이 두 번이나 쏜 손등이 아직도 푸르스름하게 부은 채 몹시 아렸다. 바로 진통제를 먹었지만 며칠 동안 비명을 지를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나는 전갈을 퇴치하기 위해서 텐트의 바닥에 세심하게 방수포를 깔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새벽녘에 침입한 것이다. 여행 첫 날의 환영행사였다.

그래도 무서운 독사인 검은 맘마 뱀에게 안 물린 것이 다행이었다. 그 독사의 독은 너무 치명적이어서 한 번 물리면 두 발자국을 내딛는 사이에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놈의 별명이 ‘두 발자국 뱀’이다. 그 뱀은 사바나의 거친 풀섶에 똬리를 틀고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부릅뜨고 날카롭게 공격을 가하였다. 그것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밤이면 바딜라가 낡은 모기장을 뚫고 침입하는 황열병 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무서운 모기를 쫓기 위해서 모기향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농구공만큼 큰 마른 코끼리 배설물에 불을 붙여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말라리아 예방약인 클로로킨을 먹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너무 빠지기 때문이었다. 그 약 때문에 보기 흉한 대머리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사실은 나만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걸릴 수 있겠어. 한 번도……. 운명의 여신은 항상 내편인데.

그러나 여행이 시작 된지 5일쯤 되면서부터 머리가 깨질 듯 아프기 시작하면서 열이 펄펄 끓었다.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풀밭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평생 이렇게 심한 설사는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욕지기와 함께 심한 구토가 일어났다. 구토가 얼마나 심한지 목과 식도 내부가 벗겨 나가는 것처럼 따가웠다. 그 후에는 몸이 떨리고 발작 같은 심한 오한이 덮쳤다. 나는 몸을 덜덜 떨면서 연신 ‘춥다, 추워.’라고 하소연하였다.

급성 열대성 말라리아plasmodium falciparum였다. 말라리아 모기 중에서 암컷은 알을 낳기 전에 피를 마셔야 한다. 그러나 피에 굶주린 암컷은 동물의 피보다는 인간의 피를 더욱 좋아한다. 그 모기가 희생자를 찾아 침입한 것이다.

나는 인픔비가 챙겨온 키니네 주사를 맞았고 별도로 강력한 항생제도 먹었다. 나는 계속 떨면서 몸을 뒤틀고 위장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 담즙까지 토해냈다. 그리고 기진맥진해서 계속 드러누워 있었다. 밤새도록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계속 경련이 일어나고 심하게 헐떡였다. 체온계가 최고의 눈금에 육박할 만큼 치솟아 오르면서 갑자기 살갗이 까칠까칠하고 바싹 마르며 온몸이 뜨거울 정도로 펄펄 끓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벽 무렵에는 체온이 정상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며 나는 몹시 춥다고 투덜거리고 담요를 더 덮어 달라고 계속 보챘다.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 축 늘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틀쯤 지나면서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삼일열 말라리아의 전형적 증상인 오한과 체온 강하, 떨림, 발열, 발한 증세가 반복되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며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한때의 고열은 섬망을 유발했고 환영이 보였다. 나는 내 죽은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남쪽 바다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어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죽게 될 거야,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아직 준비가 안됐지, 죽을 준비가 전혀 안됐지.”

인픔비가 비웃었다.

“지구상에서 말라리아 위험이 제일 높은 지역은 아프리카 저지대 열대지방에 밀집되어 있지. 아무리 약을 잘 챙겨먹어도 말라리아에 완벽한 예방책은 없지만 그래도 예방약을 미리 먹었어야 했어. 또 걸릴 수도 있어. 언제든지 말이야. 그때는 죽을지도 몰라. 진짜 죽을 수 있다고.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부적은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작년 9월경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국경을 넘은 다음 보츠와나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도보 여행을 하였다. 그 여행의 목적은 너무 단순해서 칼라하리 사막과 그 북쪽을 흐르는 오카방고 강 유역의 사바나 지역을 무화과나무의 큰 가지 아래에서 야영을 하면서 지평선 끝까지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나는 람보처럼 생긴 건장한 반투족 출신 여행 가이드인 인픔비와 여행용 짐을 운반해 줄 바예이족 출신의, 눈을 가릴 만큼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정수리 부분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거의 대머리이고 쪼글쪼글한 얼굴의 젊은 남자 바딜라와 함께 보츠와나의 사바나를 온몸이 땀과 먼지에 절어 끈적끈적할 만큼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국립공원의 전직 밀렵감시원이었던 인픔비는 동부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이 입는 붉은 색 긴 겉옷을 걸치고, 오른 손에는 야생 동물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서 호신용 기다란 창을 든 채 걸었는데, 걷는 동안 끊임없이 휘파람 소리를 내고 노래를 불렀다.

그의 힘줄이 불거져 나온 굵은 팔뚝에는 군청색 블랙맘마 뱀 문신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뱀은 아프리카의 험난한 삶에서 그를 지켜주는 성스러운 토템이었다.

인픔비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린 네덜란드계 백인을 가리키는 아프리카너 농장에서 오랫동안 경비원 겸 농부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영어를 아주 잘 하였다.

백인 농장주들은 겉으로는 더 이상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인종 차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일꾼들을 부당하게 막 대하고 학대하면 그 보복은 몇 배가 되어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농장의 가축들 태반이 목이 베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골에서 농장주들은 흑인과 혼혈인 컬러드 일꾼들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야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세대에 걸친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노골적인 증오심, 흑인들의 무력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 잔재는 그들 삶의 이면 곳곳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당장의 문제는 오히려 주로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혼혈아인 갈색 피부의 컬러드coloured와 도시 주변의 흑인 빈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법 거주자들이었다.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서 도시 근교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양철, 나무와 골판지로 얼기설기 만든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컬러드들은 금요일 오후부터 술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잔뜩 마셨다. 그리고 폭력은 고질병이 되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칼로 사람의 등을 찔러 죽였다. 또 불법 거주자들은 몹시 가난하였고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들의 직업은 강도질과 살인, 음주와 폭력, 마약이었다. 그들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가리지 않고 잔악한 짓을 서슴지 않았으므로 백인 농장에서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그 농장이 있는 구릉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봉우리에는 겨울마다 눈이 덮이지만, 여름에는 연옥의 불길 같은 열기가 골짜기를 덮친다. 농장 건물의 베란다에는 성장촉진제에 의해 잘 자란 장미꽃이 만발해 있고, 구석에서 자카란다 나무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정원의 잔디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다.

그러나 그 농장에서는 그들의 난폭한 침입을 막기 위해 건물마다 창문에 철창을 설치하고 문에는 철책을 설치했으며, 소총과 날카로운 긴 칼, 곤봉들로 무장하고 있어야만 하였다.

인픔비는 그 감옥 같은 생활이 진저리가 나자 시골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5년 쯤 된 칼라하리의 젊은 수사자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혼자서 물리칠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실제 그는 공식 기관으로부터 받은 사냥 허가증이 있었다. 그는 해마다 세 마리의 사자를 죽일 수 있었다.

인픔비는 작년에 암사자를 잡을 당시의 상황을 요란하게 재연해 보였다. 그는 과감하게 사자에게 다가가서 으르렁거리며 멈칫거리는 사자의 옆구리에 단번에 날카로운 창을 던져 깊숙이 꽂히게 하였다. 놈은 옆구리에 창이 정통으로 박히자 갈비뼈의 충격과 함께 찢어질듯 한 통증을 느꼈다. 입에서는 토할 듯이 욕지기와 함께 뜨거운 거품이 섞인 검붉은 피가 솟구쳐 흘렀다. 놈은 증오에 찬 황색 눈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면서 여전히 목을 길게 빼고 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그 순간 그는 날카로운 단도를 놈의 목덜미에 다시 찔렀다. 온몸이 굳어지면서 마지막으로 공중을 향해 포효한다. 사자는 강물처럼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러고 나서 인픔비는 곤봉과 칼을 양손에 들고 마구 휘두르며, “아지제 아제에 (덤빌 테면 덤벼라! 얼마든지 상대해줄 테니!)”라고 마구 악을 써서 다른 사자들의 공격을 막았다.

벌써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대머리독수리들이 원을 그리며 하늘을 배회하였다.

그는 파이프에 마리화나의 잘게 부순 연초와 씨앗, 몇 조각의 줄기를 꽉 채우고 불을 붙였다. 그는 길고 세게 파이프를 빨고는 후덥지근한 대기 속으로 연기를 연거푸 내뿜었다. 매캐하고 쓰고 달착지근하고 메스꺼운 연기가 훅 끼쳐왔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아늑했고 정신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서운 가슴의 통증, 고통, 죽음의 공포, 텅 빈 공허함, 체체파리가 물었던 자리에 남은 가려움증 등이 사라졌다.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매우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의 놀라운 고백에 의하면 아내는 에이즈로 1년 전에 죽었지만 자신에게는 아직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여전히 건강하였다.

인픔비와 그의 아내는 매춘에 관계한 일도 없었고, 정맥주사를 통한 마약 복용자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인픔비는 남성 동성애자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도대체 감염 경로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보츠와나에서는 인구의 거의 20퍼센트가 HIV에 감염됐고, 매 시간마다 적어도 한 명이 인체의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바이러스인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났다.

그때 올리브 우카자부기루가 말했다.

“전, 솔직히 말해서 이 병에 어떻게 걸렸는지 잘 모르겠어요.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제가 이 병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누가, 마법을 걸은 걸까요? 아니면 무슨 대가를 치르는 것이겠죠. 악마가 내린 대가를. 우리 어머니는 쌍둥이를 낳았지요. 숲 속의 짐승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대대로 내려온 관습대로 어머니는 목이 졸려 죽었고 내 동생도 마찬가지로 패대기쳐서 죽었지요. 나만 살아남은 거예요. 어머니가 악마로 변한 거예요.

또는 사람들이 말했지요. 흑인을 증오하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실험실에서 이 병을 만들어 아프리카에 퍼트렸다고 하였지요. 에이즈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해서 성행위를 꺼리게 하고 결국 모두 콘돔을 사용케 하여 암암리에 자행하는 인종학살이라고 주장하였지요. 그러나 전 그 음모론을 믿을 만큼 어리석진 않아요. 여보, 당신은 이해할 수 있겠죠. 당신은 절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 병에 걸린 것은 제 인생의 최대 고통이고, 시련이에요. 전 HIV진단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우리가 아직 아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신만은 안전하길 바라야죠. 제 감염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요. 제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저를 따돌릴 거예요. 그리고 말이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가장 괴로워요. 전 대학살에서도 혼자 살아남았는데 말이죠.”

에이즈는 남부 아프리카 곳곳에서 재앙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에이즈로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갔다. 천주교의 젊은 사제들도, 에이즈 퇴치 캠페인의 지도자까지 에이즈에 걸렸다.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에이즈는 치료약이 없어. 걸리면 무조건 죽는 거야. 치료가 불가능해. 주술사도 못 고치고, 백인 의사도 못 고치지. 에이즈는 누구나 걸릴 수 있지, 백인과 흑인, 어린애나 할머니, 남자와 여자 모두 걸리지. 예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없어, 예수님은 백인이고, 유럽 사람이지.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거야.”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체중이 줄기 시작하면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고, 얼마쯤 지나자 속수무책으로 고열과 매스꺼움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는 폐에 물이 차오르자 숨을 헐떡거렸고, 목에서부터 입술, 얼굴, 몸통으로 퍼진 커다란 종기들이 곪아터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중추신경계가 손상돼 눈을 감거나 입을 다물 힘조차 없을 만큼 무기력하게 되고, 마침내 피골이 상접해서 일흔 살 노인처럼 보였다.

그 당시 그의 작은 판잣집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보츠와나 국경 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농가 주택지에 있었다. 우카지부기루는 방 안 마룻바닥에 누워서 벌써 몇 번째 발작을 일으키더니, 곧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러므로 단 한마디의 마지막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였다. 그녀의 구릿빛이 감도는 갈색 피부가 바싹 말라비틀어져 마치 미라 같았다. 불과 서른 몇 살밖에 안된 아내가 이렇게 죽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녀의 죽음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1993년의 르완다 내전 당시 대학살에서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아프리카 전역을 휩쓸고 있는 검은 재앙인 에이즈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그는 그때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처참한 광경을 떠올리면 저절로 몸서리를 치게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탐욕과 방탕한 생활에 대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여겼던) 이 병을 슬림slim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말했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지. 그래도 나는 절대로 아름다운 여성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빈정거렸다. “그건, 그 빌어먹을 것은 오직 애정을 감퇴 시키는 가상의 증후군일 뿐이야.”

그러나, 언젠가, 그의 몸속에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가 악마처럼 나타나 활동을 개시하면 결국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여 자신도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인픔비는 아내처럼 운명에 순순히 순응하기로 체념하고 있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가 말했다. “백인들은…… 맨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하지. 그리고 한 쪽 뺨을 맞거든 다른 쪽 뺨을 내밀라고 말하지. 그러면서 우리를 짐승처럼 취급하고 마구 죽였어. 그들은 지독한 위선자인 거지. 매일 동물을 잡아먹고 살면서,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동물보호를 외치고 있거든. 그들 나라의 모든 도살장과 통조림 공장에서는 매일매일 수많은 동물들이 죽고 있지. 그것들은 인간 혐오자이거나 가증스러운 가짜 진보주의자일 거야. 아프리카에서 동물 보호보다는 에이즈와 나병, 기생충, 말라리아, 결핵을 퇴치하는 게 더 시급한 거야. 그걸 알아야지.”

 

나는 여윈 몸을 이끌고 지평선을 향하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야생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계속 걸었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턱수염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 이곳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느새 누르스름하게 변해버린 사바나의 풀들이 발밑에서 힘없이 부스러졌다. 그 풀들 역시 어서 빨리 우기가 돌아오기를, 먹구름이 몰려와 장대비를 뿌리기를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온 세상 만물들은 때를 기다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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