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파발 검문소 총기 사고로 의경 1명 사망
50대 경찰관의 어처구니 없는 총기사고로 20대 의경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무너진 기강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25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은평경찰서 소속 박모(54) 경위는 이날 오후 4시52분께 은평구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휴대하고 있던 38구경 권총을 쏴 의경대원 박모(21) 상경을 숨지게 했다.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은 박 상경은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대원의 119신고로 구급대원에게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은평경찰서는 이날 기자 브리핑을 통해 "박 경위가 검문소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던 의경 3명에게 '너희끼리만 빵을 먹느냐'며 총 쏘는 장난을 치던 중 실제로 총탄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4에 따르면 경찰관은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형법에 규정한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사람에게 위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로 박 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권총(리볼버) 탄창의 첫 번째 탄구는 공간이라 발사되지 않는 줄 알고 장난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경찰의 기강 해이에서 비롯된 사고라는 비판을 피할 수 어렵게 됐다.

리볼버 권총은 모두 6발을 장전할 수 있다. 다만 첫 번째 탄창 구멍(12시 방향)은 첫 발포시 공포탄이 나가도록 비워져 있다. 나머지 4발은 시계방향으로 두 번째 구멍에 공포탄, 세 번째 구멍부터 실탄이 채워진다.

박 경위는 1989년부터 30년 가까이 경찰관 경력을 쌓은 나름 베테랑이다.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면 공포탄이 발사된다는 사실은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그래야만 했다.

경찰청 훈령인 '경찰장비관리규칙' 123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권총을 휴대할 때 반드시 총구를 공중 또는 지면 등 안전지역을 향하고 안전장치를 장착해야 하며, 1탄은 공포탄을 장전하도록 돼 있다.

이번 사건을 실수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다. 38구경 권총은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고무를 방아쇠 울에서 제거하지 않는 한 발사되지 않는데, 박 경위는 일부러 이 고무를 제거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가 현장에 있던 의경들이 보는 앞에서 고무를 제거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정황상 (살인)고의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리볼버 특성상 총탄 장전시 탄창이 돌아가 잘못 맞춰질 수 있다"며 "박 경위가 방아쇠를 한 번만 당긴 것으로 확인됐는데, 실수로 실탄을 두 번째 탄창 구멍에 넣어 발사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박 경위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인 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혐의 적용에 대한 취재진의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법리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말 그대로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 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주어지는 형이다.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두고 한 법조인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도 성립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살인죄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상부에 '박 경위가 경찰조끼에서 총기를 꺼내던 중 탄이 발사됐다'는 식으로 보고하고,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을 "총기 오발 사고"로 설명하면서 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해 3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경비를 서는 의경의 k2 소총에서 실탄이 발사된 사건을 숨기려다 4개월 만에 내부 제보로 적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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