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숭호 뉴시스 논설고문
정부가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맡았다. 세계 경제의 전환기에서 급속히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라는 평가답게 우리 경제 모든 분야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담았다. 박 대통령의 발표 모습도 결연했고 자신감도 있어보였다. 잘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공공기관과 재정·세제 개혁을 통한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를 축으로 한 한국경제 성장엔진 가동, 규제혁파와 서비스산업 활성화 및 소비여력 확대를 통한 내수기반 확충 등 정부가 정한 경제혁신 목표는 표현만 달랐을 뿐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걱정한 모든 사람들이 주문해온 경제회복 과제들이다.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3년 후 ‘국민소득 4만 달러,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의 ‘474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기대도 가질 만하다.

그러나 너무 많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고,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하겠다고 나선 모습이 무언가, 성급하고 미덥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문제가 많으니 해결책도 많을 것이겠지만 이 많은 과제들을 정말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어떤 해결책-예를 들면, 영세서민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금보장 보험-은 신선했지만 어떤 문제점-예를 들면 공기업 낙하산인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것이 의아했다.

입법이 필요한 대책이 대부분인데 지금 정치 상황에서 순조로운 입법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4년밖에 안 남은’ 임기도 걱정됐다. 대통령은 발표를 하면서 몇 번이나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고 말했지만 이 과제들을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추진해야 할 공무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대통령은 5년짜리 임시직’이라고 불러오고 있다는 것도 생각났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은 대통령의 엄명과 위엄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지 밑바닥 공직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도 뒤이어 떠올랐다.

구체적 정책과제를 100개까지 검토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비할 마음이 생겨났다. 검토할 과제가 정말 100개나 되어서 100개를 검토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100개가 넘거나 100개가 안 되는 걸 말하기 좋고 쓰기 좋게 100개라고 한 것이 분명하며 이런 개발시대의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을 비웃어 주었다. 이제 우리 국민 수준은 ‘47개 정책 과제’ 혹은 ‘86개 혁신 목표’ 등 ‘10’ ‘100’ ‘1000’처럼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숫자라도 제대로 된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박수를 보낼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이렇게 많은 것을 나열하기 보다는 “이거 하나-예를 들면 공기업 혁신, 혹은 내수경기 진작-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시급한 일도 많지만 이게 가장 시급하니 역량을 이거 한 곳으로 모으고 싶습니다. 이거만 되면 나머지는 누가 해도 쉽게 하고, 어쩌면 저절로 잘 될 겁니다”고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MB가 4대강 사업을 한꺼번에 벌이지 않고 영산강이나 금강 등 우선 한 곳부터 하고 한강이나 낙동강 등 나머지는 성과를 봐가면서 순차적으로 시행했더라면 여태 계속되는 호된 비판은 면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도 새삼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을 이런 방식으로 시행했더라면 MB는 지금 비판이 아니라 칭송을 받고 있을 거라고도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 경제혁신계획이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앞선 세대의 노력과 희생으로 밥은 굶지 않는 대한민국이 된 만큼 후손들의 나라는 지금보다는 더 잘 살아야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에서다.

*억지사지는 ‘억지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기’를 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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