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니스트 하도겸
2006년 화정박물관은 1999년 지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구관에서 종로구 평창동 신관으로 확장 이전했다. 국내 4대 사립박물관을 꼽으라면 리움미술관과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화정박물관을 들 수 있다. 리움미술관의 옛 이름이 호암미술관이었기에 호암·호림·화정을 합쳐서 ‘3H’라고도 한다.

이만큼 성장하기까지는 지난달 25일 작고한 한광호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2년 화폐개혁 직후 독일에서 온 베링거잉겔하임 임직원을 인사동에 안내한 적이 있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단돈 몇천 원에 사가는 외국인들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처음으로 5000원을 주고 도자기 한 점을 사면서 유물수집을 시작했다.

그 후 전 재산을 다 쏟아 부어서라도 문화재의 해외유출을 막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렇게 모은 우리 미술품은 회화, 서예, 불화, 도자기 등 3000여 점에 달했다. 고인은 이렇게 수집한 미술품을 혼자 보는데 단호하게 반대한다. 우리의 훌륭한 문화재를 국민이 함께 즐기겠다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로 한다.

그리고 개인재산을 털어 화정박물관과 한빛문화재단을 세웠다. ‘추사탄생 200주년 기념’ 전(1986), ‘한국 근대회화 100년’ 전(1987), ‘한국사군자’ 전(1989) 등에 소장품을 출품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화정박물관의 제일 자랑은 티베트의 불교 그림 불화(佛畵)다. 탕카 수집은 1988년 주한일본대사관저에서 만난 기마민족설을 주창했던 일본의 역사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수집을 권한 데서 시작했다.

국내 문화재는 물론 탕카를 비롯해 불상, 불구, 경전 등을 모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티베트에서조차도 접하기 어려운 세계 최고 수준의 탕카들은 2003년 대영박물관 개관 250주년에 ‘한광호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특별 전시된 적이 있다.

1998년에는 100만 파운드 개인재산을 기부해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해 방한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는 영국 명예시민 훈장을 받았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고 훌륭한 탕카들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1999년부터 도록에 수록해 ‘탕가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총 6권을 차례로 출간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판매량이 더 많았다. 이 도록은 권당 10만원이 넘는데도 2000여 권 이상 팔렸다. 이러한 판매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고의 탕카 전문가 가운데 한사람인 1999년 다나카 기미아키를 초대해 ‘탕카의 예술 - 한광호 수집품을 중심으로’라는 강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2007년 여름에는 다나카와 관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함께 티베트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성당에 다니는 한 관장은 탕카가 종교작품이기도 하지만, 예술작품으로도 승화시켜 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티베트 불교와 불화 연구자들이 찾는 이곳에서는 해프닝도 많다. 얼마 전 수행자로 보이는 한 관람객은 몇백 년 전의 수행자를 그린 탕카를 가리키며 전생의 자기였다고 주장했다.

환생자가 여기 왔으니 관장 나오라고 떠들기도 했다. 초상권 얘기도 나오고 전생의 내 그림이니 환생자인 내게 돌려줘야 복을 받고 부처님 법에 맞다는 등 박물관 관람객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박물관 3층 사무실에 올라가면 한광호 회장의 집무실의 유리 벽에만 특이하게 ‘會長室’(회장실)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다른 곳은 한글인데 왜 이곳만 한자로 적혀 있느냐고 묻자 “아버지가 한글로 회장실이라고 적으면 거기에 점하나 찍으면 화장실이 된다!”며 익살스럽게 한자로 쓰라고 했다고 한 관장은 설명했다. 한글을 사랑하고 최현배 선생을 존경했던 한광호 회장의 유머가 보이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회화, 서예, 복식, 자수, 도자기, 금속, 상아 등 중국과 일본 미술품도 4000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한광호 회장의 영애 한혜주 현 관장이 직접 기획해 현재 전시 중인 19세 이상 관람 가인 춘화 특별전 ‘LUSTⅡ’와 2010년 ‘LUST’ 전에 나온 작품은 화정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일부분이다. 성(性)과 관련된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은 작품들이 많기에 한 관장은 학예사 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풍기문란’과 관련, 변호사 상담까지 하며 전시회를 진행했다.

그저 단순히 ‘야한 그림’으로서의 춘화가 아닌 제작 당시의 사회문화상과 해학 등을 담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정사를 나누는 인물 옆에 펼쳐진 집안 풍경과 가구 등은 사회문화적인 중요한 역사적인 자료가 되기도 한다.

춘화는 웬만한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적나라한 성행위만 다룬 그림이라는 선입견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일본의 춘화는 ‘현대판 포르노’보다 더 야하다. 하지만 미셸 푸코가 말한 것처럼 구조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서도 탈출구라는 시스템 즉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른바 출구전략의 하나로 현실에서는 전혀 용납되지 않는 불륜 등의 부적절한 주제를 통해 대리 만족을 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춘화가 한 것은 아닐까? 오늘날의 게임이며 만화가 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에로틱아트라고 할 수 있는 춘화 전시(담당 김옥인책임연구원)에는 청대(淸代) 춘화첩, 춘궁화접선(春宮畵摺扇)을 비롯해 일본의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다양한 사랑의 방식’과 기타가와 후지마로가 그린 춘정제색(春情諸色) 등 중국과 일본의 춘화 60여 작품이 4월까지 전시된다.

한광호 회장의 막내딸인 한 관장은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국립경찰병원 주준범 이비인후과 과장과 결혼해 현재 26개월 된 아들 같은 딸(주소윤)을 키우고 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말했듯이,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며 사회적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전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탁자에 있는 부녀의 스타 샷은 아버지와 한 관장이 친구처럼 많은 추억을 가지고 정신적인 유대가 깊은 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사진이 지금 한 관장에게 박물관을 운영하는 힘이 되고 있다.

어떤 유물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한광호 회장은 모두 다 자식같이 소중하다고 했다. 유물 모두 다 각각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데 뭐가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면서 항상 모범을 보여준 아버지를 존경했던 한 관장은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화두처럼 가지고 산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박물관과 관람객을 섬기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다짐을 전한다.

한혜주 관장은 미술품의 수집과 전시 외에도 관람객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개하고 있다. 매년 미술사에서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쌓은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하는 ‘화정미술사강연’과 그 성과를 책으로 출간하고 있다.

이주형 강연위원회장과 의논해 안휘준, 조선미, 박은순 교수 등을 초청, 벌써 7회를 거듭하고 있다. 2001년에는 영국 대영박물관 관장 로버트 앤더슨 박사를 초대해 ‘박물관 운영과 재정-계획과 기회’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한혜주 관장은 매달 정기 살롱콘서트도 열고 있다.

*한혜주 관장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서울대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후 독일 뮌헨 Musik Hochschule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Academie Internationale d’Ete de NICE 등의 다양한 과정을 수료했다. 세종문화회관 신인등용음악회(서울심포니), 제11회 Solist Ensemble 정기연주회특별연주(세종문화회관:MBC), 프랑스 BORDEUX TV 방송국 초청독주, 섹서포니스트 필립 포르쥬아 한혜주 듀오연주 등도 진행했다. 특히 독일 Rodin Quartet과 실내악연주 및 국내외 다수 하프앙상블 연주 독일 뮌헨 및 Bayern등지에서 20여 차례 초청 연주했다. 얼마 전까지 상명대, 선화예술고, 계원예술고, 성신여대 등에 출강했다.

*칼럼니스트 하도겸은 법륜사(종로구 사간동)에서 목요요가명상마당(오후 7시)과 일요입보리행론마당(오후 3시)에서 무료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신을 바로 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칼럼을 통해 사회와 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화합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칼럼 내용 대부분은 제보되거나 인터뷰한 분의 글을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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