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로 돈 뿌리는 예산낭비인가, 의미있는 파격적 복지 실험인가.

성남시가 모든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내놓으면서 '무상 복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성남시는 지난달 24일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청년에게 분기당 25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조례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같은달 25일 보건복지부에 정책 도입 협의를 요청했다.

성남시는 우선 내년에는 24세를 대상으로 청년배당을 지급하고 19~24세까지 점진적으로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지급 대상은 1만1300명, 소요 예산은 약 113억원으로 예상된다.

청년 배당은 '무상 산후조리원'과 '무상 교복' 정책을 내놨던 성남시의 세번째 복지 실험이다. 소득이나 취업 여부에 상관 없이 복지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한 '기본소득(basic income)'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책에 적용한 첫 사례다.

성남시는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청년배당 정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생애주기별로 볼 때 청년 세대의 복지가 가장 미흡하다. 성남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현실"이라며 "청년배당은 단순한 예산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일자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방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일자리에 맞는 청년들의 역량개발 투자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청년배당은 청년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켜 자기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년배당금은 일정 기간 내 성남시 내에서만 쓸 수 있도록 유통기한이 정해진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된다. 이 때문에 성남시는 청년배당 정책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격적인 복지 실험…찬반 양론 팽팽

기본소득은 아무 자격 조건이나 의무 사항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생계비를 제공하자는 구상이다. 소득 수준이나 취업 여부에 따라 복지를 제공하는 기존의 제도로는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제시된 대안이다.

성남시가 기본소득 개념을 적용한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내놓자 벌써부터 찬반 논쟁이 뜨겁다. 2011년 무상급식과 2013년 기초연금에 이어 청년배당 정책이 다시 한 번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청년배당 정책이 본격적으로 청년 복지와 기본소득 의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당장은 지급해야 하는 금액 자체가 작아서 가능하지만 지자체 재정 여력상 많이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청년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수당 의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유럽에서 기본소득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며 "현재 유럽 등에서는 상당히 광범위한 논의와 지지가 있는 개념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사회보장 형태를 제시하는 의미있는 실험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청년배당 정책이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지방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책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경영학부 교수는 "청년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청년들이 취업하거나 인턴이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라며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을 제공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현금 지원은 일자리-경제-복지의 선순환 과정에 별다른 도움을 못 준다"고 강조했다.

성남시는 청년배당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선거를 의식했다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어르신들을 위한 정책을 냈을 것"이라며 청년들에 대한 복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7포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을 위한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나온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19~24세 청년에 연 100만원 주자"…

한편 성남시가 만 19~24세 청년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청년배당정책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중앙 정부와의 마찰이 예고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들어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미 성남시와 복지부는 올해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사업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갈등을 빚은 바 있다.

4일 성남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19~24세 청년들에게 연 100만원씩 청년배당금을 지급하는 청년배당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경우 타당성, 기존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등과 복지부와 협의하도록 돼 있다. 복지부는 협의 후 수용, 변경 및 보완 후 수용, 불수용의 결정을 내린다. 성남시는 지난달 24일 복지부에 협의를 신청한 상태다.

◇19~24세에 100만원씩 지원하려면 연간 600억원 필요

청년배당금은 현금 대신 유통기한이 명시된 지역상품권 또는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전자화폐 등으로 지급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한다. 재정여건상 일단 첫 시행을 하는 내년에는 24세 1만1300명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6개 연령에 1년에 100만원씩 지원을 하려면 연간 약 6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성남시 관계자는 "내년 기준 113억원의 예산은 증세 없이 세금탈루를 막아 절약한 돈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미 예산팀과 협조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24세 청년들에 대한 일년치 예산은 확보했지만 19~23세까지 범위를 확대하기엔 성남시의 여력만으론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은 청년배당을 박근혜정부의 중앙정부정책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청년문제가 '청년희망펀드'처럼 기부를 통한 시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부의 의무라는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제한된 예산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는 결국 철학과 의지의 문제"라며 "지방정부가 세금을 아끼고 나눠 시행하려는 복지정책에 대해 중앙정부가 반대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는 명백한 월권행위"라고 복지부의 수용 결정을 촉구했다.

◇포퓰리즘 논란, 실현 가능성 의문도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예산이 부족한 마당에 또 하나의 '무상' 정책이 나오는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성남시의 새로운 시도가 선별적 복지가 아닌 모든 청년에게 배당을 지급한다는 측면에서 포퓰리즘 논란도 나오고 있다. 이 시장이 야권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표심을 의식한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청년들은 투표 잘 안하는데 만약 표를 얻으려고 한다면 노인들에게 일자리 만들어주는데 돈 쓰는게 훨씬 낫다"며 "박 대통령이 먼저 65세 이상 전국민에게 기여와 소득에 관계없이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기본소득개념을 도입했는데 그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제가 하니까 좌파 포퓰리즘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무상 산후조리원은 반대한 복지부, 청년배당금도 불수용 가능성

현재 성남시가 복지 관련 정부와 협의 중인 사안은 무상 산후조리원, 무상교복지원, 청년배당금 등 3건이다. 복지부는 지난 6월 공공 산후조리원 사업에 대해선 사실상 불수용 입장을 통보해 왔다.

현재 안건은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복지부가 반대의사를 냈더라도 지자체의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성남시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반영해 밀고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복지부는 청년배당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은 상황이다. 자칫 이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청년배당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다"며 "관계부처 및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종합한 뒤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건 없이 생계비를 지급하라'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에 적용한 '기본소득(basic income)'은 기존 복지 정책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제기된 개념이다.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일정한 생계 수준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뜻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자격 조건과 의무 사항 등에 따라 수혜자를 분리해 내는 기존 복지제도가 오히려 행정 비용으로 인한 비효율을 낳고 억울한 수혜 탈락자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국외에서는 1960년대 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본소득 개념을 정책에 적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정부는 1982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의 특징을 갖춘 '알래스카영구기금(APF)'을 조성,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을 주민 1인당 연간1000~2000 달러씩 배당하고 있다. 스위스는 2016년 모든 사람들에게 1인당 월 2500스위스프랑(약 28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복지를 둘러싼 전통적인 좌우 논쟁 구도도 허물고 있다.

무조건적인 현금 지원 방식은 공공 서비스를 위축시키고 오히려 시장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좌파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우파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 정책을 대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같은 우려에 따라 일부 국가와 단체들은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사회적 실험을 진행해 왔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2009년 발표한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1982년 기본소득을 도입한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눈에 띄는 빈부 격차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1989년에서 1999년 사이 미국 최상위 5분위의 소득이 26% 증가할 때 최하위 5분위의 소득은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기본소득을 도입한 알래스카는 최상위 5분위 소득이 7% 증가할 때 최하위 5분위 소득이 28%나 늘었다. 알래스카의 지니계수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가장 낮다.

나미비아는 지난 2008~2009년 오미타라 지역의 모든 주민 930명에게 매달 100나미비아달러(약 1만4000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빈곤소득 도입 전과 비교하면 프로그램 참여 지역에서 실업률이 60%에서 45%로, 전체 지역의 빈곤율은 86%에서 68%로 하락했다. 또 국민 1인당 소득은 기본소득의 효과를 제외하고도 118 달러에서 152 달러로 상승했다.

강 교수는 "지불된 기본소득 이상으로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한 것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적 활동에 참가해 그 이상으로 소득을 증가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강 교수는 같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했을 때 기본소득이 전통적 복지 방식에 비해 노동 유인 감소 효과가 더 작다고 설명한다.

그는 "1인당 소득 격차는 기본소득일 때가 전통적 복지일 때보다 더 커진다"며 "노동유인이 노동자와 실업자 사이의 소득 격차에 비례한다면 기본소득은 전통적 복지보다 노동 유인을 작게 줄인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도입하려면 증세 불가피…공론화될 수 있을까?

하지만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상당한 재정 부담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또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기존의 복지 정책을 대폭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증세에 대한 저항이 거세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되기에는 더욱 힘든 여건이다.

강 교수는 "정직하게 얘기하면 재정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세금을 올려서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며 "세금을 안올리고 복지만 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을 내놓은 것도 기본소득 의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배당 정책은 특정 연령층 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소득, 취업 여부 등의 조건과 상관 없이 모든 청년들에게 매분기 일정액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개념과 닮아 있다.

김남준 성남시 대변인은 "현재로서는 성남시 재원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청년 문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한 시기인 만큼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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