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이별
[김홍배 기자]남북 이산가족 530명이 22일 2박3일간의 꿈같았던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 없이 또 헤어졌다.

이전 상봉 행사에서는 '작별상봉'이 1시간이었으나 이번에는 우리 측의 요청을 북한이 받아들여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비는 그쳤지만 흐린 날씨로 약간 쌀쌀한 가운데 시작된 작별 상봉에서 가족들은 짧은 만남 이후 예정된 긴 이별의 아픔에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고 깊이 흐느끼기만 했다.

2시간 동안의 짧은 작별상봉이 이뤄졌던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가족들의 한(恨) 맺힌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건강하게 살아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날 진행된 작별상봉에선 65년만의 짧은 만남 후 또 기약없는 생이별을 해야하는 가족들의 슬픔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눈시울 붉힌채 흐느끼며 북측 가족 기다려

작별상봉은 이날 오전 9시30분(북한시간 오전 9시)께 시작됐다. 상봉장에 먼저 입장한 남측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고 흐느끼며 북측 가족들을 기다렸다. 테이블마다 여러 장의 손수건이 올려져 있었다.

북측 가족들은 오전 9시25분께 입장하기 시작했다. 북측 가족들이 예정된 시간보다 5분 정도 빨리 들어오기 시작하자 남측 가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피붙이'를 바쁘게 찾았다. 북측 리흥종(88)씨의 남측 조카 이원경(73)씨는 "이따 몇 번 버스에 타시는지 꼭 물어봐서 적어둬야 한다"며 취재진에게 메모지를 빌려갔다.

흥종씨의 하나 뿐인 딸 이정숙(68)씨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정숙씨는 "지금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어. 어제 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자꾸 눈물이 나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숙씨는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나 했어요.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 계시는지…누가 상상이나 했어요"라며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정숙씨는 "아빠, 내가 또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볼게요 아빠"라고 말하며 아버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헤어져 65년간의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부부는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북측 남편 오인세(83)씨는 남측 아내 이순규(84)씨에게 "지하에서 또 만나…"라고 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건강하슈, 오래 사슈"라 하자 남편은 "(당신) 닮은 딸을 못 놓고 왔구나"라고 했다.

남측 여동생 박인숙(69)씨는 북측으로 돌아갈 오빠를 마지막으로 업어보고 싶었다. 인숙씨는 오빠 박동훈(87)씨에게 다가가 "업어드릴게요"라며 오빠를 일으켰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인숙씨는 오빠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인숙씨는 "3살 때 오빠가 저를 많이 업어주셨대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대신 업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북측 누나 박룡순(82)씨를 만난 남측 동생 박용한씨는 누나를 업고 테이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용한씨는 "누님이 나 어렸을 적에 항상 업어줬어. 이젠 내가 할거야"라고 했다. 용한씨는 "65년 전의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어. 그 땐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울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또 이별해야해"라며 울먹였다.

룡순씨의 또 다른 남동생 박용득(81)씨는 누나를 바라보며 "누님, 내가 내 차로 북으로 보내줄게. 그러니 오늘은 우리 같이 서울 가자. 2~3일 같이 자자"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룡순씨가 북한에서 낳은 아들 송철환(55)씨가 "통일되면 만날 수 있어요"라고 했지만, 용득씨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 우리 집 데려오겠다는데 왜 안 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북측 리정우(82)·남측 이천우(78)씨 형제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정우씨는 동생 천우씨를 애달픈 표정으로 바라보며 어깨와 손을 쓰다듬고, 껴안기도 하고, 볼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정우씨가 "우리 몇 년 만에 만났니"라고 묻자 천우씨는 "72년"이라고 답했다. 천우씨가 "옛날에 엄마랑 아버지랑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간다고 하니까 붙잡고 우리 버리지 말라고 엉엉 울던 기억이 난다"고 하자 형 정우씨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생이별 고통 웃음으로 달래기도

생이별의 고통과 슬픔을 애써 웃음으로 달래는 가족도 있었다. 북측 누나 리란히(84)씨는 남측 남동생 이철희(60)씨에게 "(누가 더 건강한지) 팔씨름 해보자"라며 동생의 팔을 끌어 당겼다. 철희씨는 힘에 겨운 듯 "어이쿠 우리 누님 힘이 아주 세신데요"라며 누나를 이기게 했다. 란히씨가 "내가 이긴거지?"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철희씨는 "네. 제가 졌어요 누님. 우리 누님 아주 건강하시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북측 남철순(82)·남측 남순옥(80) 자매는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생 순옥씨는 "언니가 강단이 있으니 이렇게 전쟁도 이겨내고 살아서 만나 좋아"라고 하자, 언니 철순씨는 "글쎄 내가 명이 길지 길어. 폭탄이 나한테는 안 떨어지더라"고 했다.

이어 순옥씨가 "언니가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니 좋다"라고 하자 철순씨는 "내가 '똑똑이'라 그래"라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웃으면서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쳤다.

철순씨는 동생에게 "오래 살아야해. 다시 봐야지"라고 했다. 순옥씨는 "우리 세대는 끝났어"라며 한숨을 쉬었지만, 철순씨는 "세대가 어디 있니. 너희 만나 동생들 소식 들으니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철순씨의 또 다른 여동생 이춘란(80)씨는 "내가 열다섯에 언니랑 헤어져서 겨우 만났는데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려고"라며 눈물 흘렸다.

◇'고향의 봄' '반갑습니다' 등 노래가락 속에 기약없는 작별

이날 작별상봉은 오전 11시30분께 종료됐다.

상봉장에는 '아리랑', '고향의 봄',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반갑습니다'·'양산도' 등이 흘러 나오다가 오전 11시20분께 "곧 상봉이 끝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내방송을 들은 정숙씨는 아버지에게 "이제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정숙씨 부녀는 기약 없는 이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의 곁에 딱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정숙씨는 아버지 앞에서 큰절을 올리자는 다른 가족들의 말에도 "왜 뭘 그런 걸 해…내일 아침에 또 보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숙씨는 내일은 만날 수 없다는 다른 가족들의 설명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정숙씨는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 게 이게 끝이래요. 그러니까 아버지 우리가 이게 끝이래요. 그래서 큰절 받으시래요"라며 남은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예정된 오전 11시30분, 북측 가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눈물 자국이 말라붙은 얼굴에 지팡이를 짚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북측 가족들의 모습을 남측 가족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북측 가족들이 상봉장을 모두 빠져 나가고 버스 4대에 나눠탄 뒤에야 남측 가족들도 나가도 좋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남측 가족들은 엉엉 울며 달려 나가 "어디 있어, 어디 있어"라며 자신의 피붙이가 탄 버스를 애타게 찾았다.

여기저기에서 "삼촌 여기에요", "작은아버지 우리 왔어요", "사랑해", "또 만나요", "제발 건강하세요" 등을 외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족들은 창문을 두드리거나 창문 사이로 손을 마주잡고 펑펑 울었다. 굳게 닫힌 창문에 손바닥을 마주하거나 버스에 기댄 채 눈물만 흘리는 가족들도 있었다. 이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북측 기자단과 의료진 등의 두 눈도 금세 벌게졌다.

북측 가족들을 태운 버스는 야속하게도 오전 11시47분께 상봉장을 떠났다. 이로써 지난 20일 첫 단체상봉과 환영만찬, 21일 개별상봉·공동 점심식사·단체상봉, 이날 작별상봉 등 총 6차례에 걸쳐 12시간 동안 가족들을 만났던 이들의 일정도 모두 끝났다.

남측 가족들은 점심을 먹고 오후 1시30분께 금강산을 떠나 육로를 통해 강원도 속초로 돌아온다. 꿈만 같았던 2박3일 동안의 시간을 가슴에 품은 채 이들은 다시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게 된다.

한편 남측 90가족·255명이 북측 가족 188명을 만나게 되는 2차 상봉은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1차 상봉과 마찬가지로 남측 가족들은 행사 전날인 23일 속초 한화리조트에 집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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