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9시 클래식음악 전문 음반매장 '풍월당'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 안에서 100명 이상이 줄을 섰다. 4층 음반매장 입구에서 5층 공연장으로 통하는 계단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세계 동시 발매된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의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을 사려는 남녀들이다. 평소 낮 12시에 개점하는 풍월당은 구매자의 문의가 잇따르자 3시간 일찍 문을 열었다.

클래식 팬들은 조성진의 실황 앨범을 제일 먼저 입수한다는 설렘에 아침부터 눈빛이 총총했다. 시차 등으로 인해 한국 팬들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따끈한 앨범을 손에 쥐었다.

예약 주문 만으로 아이유, 시아준수 등의 가요앨범을 제치고 온라인사이트 종합음반차트 1위를 기록한 이 앨범은 클래식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초도 5만장을 찍었다.

이 음반을 유통하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모회사인 유니버설뮤직의 이유겸 과장은 "보통 국내외 클래식 연주자는 1000장, 유명 연주자는 2000장 정도의 초도 물량을 찍는다"며 "5만장은 무려 20배에 가까운 수치다. 연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 우승 당시 연주한 곡들 중 조성진의 멋스러운 해석을 보여주는 곡들이 실렸다. 쇼팽 콩쿠르 실황 녹음음반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선과 1라운드에서 연주한 '녹턴 op.48-1'(Nocturne in C minor, Op. 48 No.1)과 2라운드에서 연주한 '소나타 op.35'(Sonata in B flat minor Op. 35)와 '폴로네이즈 op.53'(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3라운드에서 연주한 '24개의 프렐루드 op.28'(Prelude Op. 28 Nos. 1-24)가 수록됐다. 결선 곡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실리지 않았다.

이날 클래식 음반 판매에서는 이례적으로 번호표도 발부했다. 선착순 100명에게는 조성진의 모습이 담긴 브로마이드와 액자 등이 제공됐다. 이들에게는 오전 10시부터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쇼팽 강연 참석 기회도 주어졌다. 온라인 구매자를 포함해 선착순 2500명에게는 풍월당이 특별 제작한 쇼팽 책도 제공된다. 조성진과 쇼팽 콩쿠르 역사 등이 담겼다. 풍월당 관계자는 "이런 이벤트를 벌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클래식은 물론 음반산업 전체가 침체된 상황에서 음반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는 건 특기할 사건이다. 2013년 4월23일 조용필의 19집 '헬로'가 나왔을 때 영풍문고, 지난해 10월20일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 발매 당시 교보문고 광화문점 핫트랙스 앞이 장사진을 이룬 적이 있다.

세계 최초로 조성진의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을 구입한 대학생 최재혁(26·서울 대치동)씨는 오전 7시30분께 풍월당에 왔다. "음반을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음에도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사람들과 대면해 음반을 직접 손에 쥐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최초 구매자로서 묘한 설렘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진이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할 당시 그를 보고 팬이 됐다는 대학생 문혜선(22·경기 안양)씨는 "예전에는 SNS에 조성진씨의 사진을 올려도 관심 없던 친구들이 이제는 알아보고 그에 대해 묻기도 한다"며 "음반을 하루라도 빨리 만져보고 싶어 풍월당에 왔다"고 전했다.

유니버설뮤직은 국내 발매반에 음악평론가 박제성 박종호,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해설을 내지에 별도로 실었다. 또 초도 앨범에만 포스터와 사진엽서 5종 세트를 함께 제공한다.

유니버설뮤직의 전략커뮤니케이션팀 이성우 과장은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건 음반을 많이 팔려는 욕심보다 클래식음악과 아티스트 자체를 꾸준히 노출시켜 계속 이슈화하려는 것"이라며 "최근 임동혁씨 쇼팽 앨범도 그렇고 클래식계 이슈가 계속 생겨나 이런 관심이 단발성이 아닌, 지속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월간 '객석' 편집장을 지낸 클래식 음악평론가 류태형 중앙일보 음악담당 객원기자는 "조성진에 대한 이런 반응은 클래식계에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성진은 이번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2016년 2월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좌석 2500석은 예매 50분 만에 동났다. 조성진을 비롯해 제17회 국제쇼팽 피아노콩쿠르 입상자들이 전부 나와 연주한다.

쇼팽콩쿠르와 함께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차이콥스키·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자들의 갈라 공연은 있었으나, 쇼팽콩쿠르 우승자가 국내에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클래식공연 티켓이 1시간도 채 안 돼 동이 나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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