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는 '자율협약' 가능할까

▲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기업구조조정 대상자 내년도 늘어날 것...'
[김선숙 기자]금융당국이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기업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들이 추가로 선정되면서 건설과 조선, 해운 등 취약 업종 구조조정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일몰을 앞두고 있어 금융당국은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 386개사에 대해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한 결과 C등급 11곳, D등급 8곳 등 19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올해 상반기 실시한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포함하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모두 54개사로 전년 대비 20개사나 늘었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는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 둔화 등 대외적 불확실성 증대와 함께 일부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발생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성장성, 수익성, 재무안정성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면서 "이에 부실징후기업의 조기 적출 및 신속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선제적으로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보면 철강이 3개사로 가장 많다. 이어 조선·기계제조·음식료가 각 2개사, 건설·전자·석유화학·자동차·골프장 등이 각 1개사였다. 상반기 실시한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포함하면 건설업종이 14곳으로 가장 많으며 이어 철강(11개사), 전자(8개사), 조선(4개사) 순이다.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구조조정대상 중 상장사는 3개사로 C등급은 2개사, D등급은 1개사다. 이 가운데 최근 워크아웃이 결정된 동아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 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19개사에 대한 금융권 신용 공여액은 총 12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이 1조5000억원의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지난 7월 정기 신용위험평가 이후 금융권이 쌓은 충당금은 1조원 규모다.

다만 금감원 측은 금융권의 손실흡수 여력 등을 감안하면 충당금 추가 적립이 금융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13.99%에서 13.89%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외에 금감원이 수시 신용위험평가와 별도로 주채무계열 소속 기업체에 대해 재무 상황 등을 점검한 결과 11개 계열사가 현재 정상이지만 위기 상황 시 취약 요인이 있어 선제적 자구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주채권은행은 이들 기업에 대해 계열 스스로 맞춤형 대응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들과 만나 "이번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업체 중 워크아웃 대상에 대해서는 신속한 경영정상화에 힘쓰고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기업회생 절차 추진 등 신속한 정리를 유도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올해 6월 말 기업부문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08.6%로 가계(292.2%)와 신용카드(438.3%) 부문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면서 "지금과 같이 여력이 있을 때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업체를 포함한 기업여신에 대하여 선제적으로 충분한 충당금을 적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법적 구속력 없는 자율협약…은행 협조가 중요

당국은 최대한 연내 워크아웃을 신청토록 유도하되 기촉법이 만료되면 임시로 자율협약을 통해서라도 구조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자율협약 만으로 실제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촉법 만료에 따른 구조조정 법적 공백은 지난 2007년과 2011년 두 차례 있었다.

기촉법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후에 자율협약인 '부도유예협약'과 '기업구조조정협약'에 따라 실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축된 원칙을 기반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2007년 3월 기촉법 재입법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기업구조조정협약이 제정돼 활용됐다.

당시 당국은 현대LCD와 팬택 등에 대한 채권은행 공동관리를 자율협약에 근거해 추진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구조조정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는 "기촉법은 법에 따라 강제할 수 있지만, 채권단 자율로 이뤄지는 경우 금융회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모든 금융회사의 동의가 전제돼야 구조조정 효과가 있지만 과거에는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후 기촉법은 다시 제정됐지만, 2010년 10월 연장법안이 심사를 받던 도중 효력을 잃게 되면서 구조조정 관련 법적인 근거가 다시 사라지기도 했다.

◇금융당국, 실효성이 있는 자율협약 위해 은행 설득 나서

올해가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법적인 뒷받침 속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이 부여된 기업 가운데 일부는 워크아웃 절차를 밟게 되지만, 이를 원하지 않는 곳이 있는 데다 기업의 동의와 채권단협의회도 소집해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새로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대기업 가운데 추가로 워크아웃에 들어갈 회사는 절반이 되지 않는 5곳 정도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법적 공백으로 구조조정이 난항을 겪는 일을 막기 위해 은행 설득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등 14개 은행의 부행장을 소집해 구조조정을 위한 자율협약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이날 부행장들을 만나 "기촉법이 실효되면 기업별로 채권단을 구성해 협약 체결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지만 자율적 구조조정이 정착되지 않은 여건을 고려할 때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협약에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관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아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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