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취업해도 불안한 청년층

 
[이미영 기자]병신년 벽두, 대한민국은 벼랑에 서 있다.젊은 청춘의 앞날을 밝혀주던 질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찾기 힘들다. 일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경합은 어느새 노노갈등, 세대 갈등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조 코리아'의 쿵쿵 울리던 심장 역시 열악해진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박동을 늦추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7.9% 감소한 5272억 달러, 수입은 16.9% 감소한 4368억 달러로 집계됐다.

국가 대계의 근간을 위한 사회, 경제 각 분야 청사진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줘야 할 교육은 아직도 'Only 대입'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본지는 2016년을 '한국이 전혀 가보지 못한,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위기의 첫 시발점'으로 규정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때론 바보스러운 양보가, 때론 사자와 같은 용기가, 때론 원숭이 같은 순발력이 요구될 것이다.

◆고용불안에 떠는 대한민국

"회사가 구조조정을 계속하니까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안해요."

김모(26·여)씨는 지난해 대형 조선소에 2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2년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2년은 본사 직원으로 일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내년이면 외주업체와의 2년 계약이 끝나지만 본사는 조선업계 불황을 이유로 재계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양질의 직업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 일단은 계약연장을 기다리고 있다"며 "계약연장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해 다른 직종의 채용공고도 틈틈이 찾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직장인이 체감하는 고용불안 갈수록 높아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 근속연수는 10.5년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2배가 높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직장인 1344명을 대상으로 '현재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69.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고용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회사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아서(43.2%)'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고용형태가 불안정해서(34.8%)', '회사의 근속연수가 짧아서’(17%)', '회사가 구조조정을 했거나 할 계획이라서(16%)'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75.2%에 이르렀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4년 10월 근로자 31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직장인이 느끼는 고용불안이 잘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직업선택 시 가장 중요시 하는 항목으로 '직업안정'을 꼽았다.

2004년 같은 조사 때 '성취'가 1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인식이 변한 것이다. 당시 '직업안정'은 3위였다.

이효남 고용정보원 전임연구원은 "계약직이 늘고 40~50대 조기퇴직이 증가하는 등 고용환경이 변하면서 안정된 직업을 가지려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과 정부는 고용안정과 정년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어렵게 취업해도 불안한 청년층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2015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세~29세)의 실업률은 8.1%로 전체 실업률 3.1%보다 2.5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실업률 지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1~8월 청년층의 평균 체감실업률은 22.4%로 같은 기간 청년층 공식실업률 9.7%의 2.3배에 달했다.

체감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실업상태인 ▲취업자 중에서 실제 취업시간이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취업을 희망하고 가능한 사람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조사대상 주간에 취업을 희망하고 가능한 사람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으나 조사대상 주간에 취업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 개념이다.

이처럼 취업의 문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도 고용불안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통계청의 '2015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근로자가 첫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또 청년층 임금근로자 3명 중 2명꼴인 63.3%가 첫 일자리를 그만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1년 2개월에 머물렀다.

20대 이하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입사 후 3년 이내에 회사를 떠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올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이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토대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고용보험 자격을 잃은 사람의 비율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3년 미만으로 일한 20대 이하의 고용보험 가입자가 고용보험을 상실한 경우는 전체의 83.5%에 달했다.

이는 사실상 은퇴 시기인 60대 이상 직장인의 고용보험 상실률 84.7%와 비슷한 수치인 것이다.

홍종학 의원실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용보험 가입자의 상당수는 규모 있는 기업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라며 "20대 이하의 경우 임시직, 계약직 비율이 높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취업한파' 몰려온다

 
2016년 국내 경기가 극심한 침체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는 곧 더 매서운 '취업 한파(寒波)'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경기의 하향세가 대한민국의 수출 부진을 심화시키고 이로 인해 기업 매출과 근로소득 증가세가 둔화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경제는 기본적으로 수출이 중심인 구조다. 이 때문에 수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수활성화도 어렵고 경제 전반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수출 부진이 심화되면 설비투자 둔화 등 기업경기 위축으로 이어져 고용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국은행(한은)은 지난해 10월, 2016년 한국이 3.2%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도 이와 유사한 3.1%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2.8%), 한국경제연구원(2.6%), LG경제연구원(2.5%) 등 주요 민간연구소들은 이보다 낮은 2% 중후반대를 예측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달 7일 2016년 신규 취업자 수에 대해 상반기 34만4000명, 하반기 33만2000명으로 연간 33만8000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은이 전망한 2016년 경제성장률이 3.2%라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공개된 12월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서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낮추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 위안화 약세, 평균 40달러대 초반의 저유가 지속 등 대외적 여건과 생산 등을 고려할 때 10월 전망에 비해 성장의 하방리스크가 다소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였다.

한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더 낮아질 경우 2016년 취업자 수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전국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들은 지난해 4분기부터 2016년 1분기까지 총 29만5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2000명(0.4%)이 줄어든 규모다.

이로 인해 적어도 2016년 1분기까지는 취업시장 문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별로는 300인 이상(3만3000명) 대기업들이 300인 미만 사업체(26만3000명)보다 채용을 적게 할 계획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들은 올해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9일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2016년 1월 종합경기 전망치는 93.2를 나타냈다. 이는 전달인 지난해 12월 BSI(95.5)보다 2.3p 낮은 수준이다.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확장국면을 100 미만이면 수축국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부문별로는 자금사정(100.4)을 제외한 내수(94.7), 수출(94.5), 투자(95.5), 재고(101.1), 고용(99.2), 채산성(95.1) 등 모든 부문에서 부정적으로 전망됐다. 재고는 100 이상이면 부정적 답변(재고 과잉)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새해 1월 기업경기동향은 최근 5개월 내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졌고 부정적 평가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각 직종별로 나타나는 특성도 취업난에 영향을 미친다고 풀이한다.

우선 도소매, 음식숙박 등 전통서비스 산업 부문은 지속된 경쟁확대로 새로운 진입 인력이 적겠고 증가세를 보이던 복지서비스 취업자는 최근 일자리의 질적 개선이 강조되면서부터 다소 주춤하겠다.

자동차, 음식료 등 제조업 분야의 고용은 호조를 보였지만 기업의 매출부진과 이에 따른 설비투자가 둔화되면서 추가적인 고용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고령인구의 노동시장 이탈 현상도 취업난에 한 몫 더하고 있다. 최근 농림어업 부문을 중심으로 고령 자영업자들이 근로활동을 그만두면서 65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 하락추세가 뚜렷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노령연금 등 복지 확대도 고령층의 근로의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2016년 이후부터는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는데 따른 인력부족 현상이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용을 떠받쳐주던 자영업이 시장 포화로 노동력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취업자가 크게 늘지 못하고 있다"며 "인위적인 취업자수 증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는 과감한 내수부양책을 펼쳐 일자리를 늘리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연구위원은 "대외여건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부분을 간과하면 안된다"며 "중국의 기술과 품질에서 뒤쳐지고 일본에는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현상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물론 기업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기업들이 못하는 이유가 혹시 정부 제도가 부족하고 지원이 없어서는 아닌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대외여건 탓만 한다면 정부가 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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