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한때 연인끼리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 그 유행 때문에 졸지에 아이 아빠가 될 처지에 놓인 20대 남성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당시 사귀던 여성은 철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했고 이 남성은 "장난삼아 썼는데 옛 여자친구가 마음대로 신고했다"며 법원에 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일 의정부지법 가사부(정완 부장판사)에 따르면 A씨(28)는 2014년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가족관계등록부 등 필요한 서류를 챙기다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미 결혼한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는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냈고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A씨의 가족관계등록부상 배우자는 2년 전 4개월가량 사귄 옛 여자친구인 B씨(24). 두 사람은 장난삼아 혼인신고서를 썼고 B씨는 이를 시청에 제출했다.

물론 대부분은 행정기관에 제출하지 않고 기념으로만 간직했다. 하지만 B씨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행동에 옮겼다. 당시 B씨의 나이는 스무살. 혼인신고서 접수가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4개월 뒤 헤어진 두 사람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뒤늦게 깨닫게 된 이들은 어떻게든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하기로 했다. B씨 역시 결혼할 새 남자친구를 만나 임신한 상태였다. 자칫하면 B씨가 낳게 될 아이가 A씨 호적에 오를 수 있기에 B씨도 상황이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다.

B씨는 일단 협의이혼하자고 제안했지만 A씨는 원래 상태로 되돌리고 싶었다.

결국 A씨는 B씨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의정부지법에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최근 항소를 기각했다. B씨가 일방적으로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법정에서 인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의정부지법 가사부(정완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법률혼주의를 취하는 국내 법제 아래서는 혼인 무효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A씨와 B씨의 혼인이 합의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충분한 증거 없이 혼인을 번복하면 법 근간이 흔들린다는 취지다.

결국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A씨의 변호사는 “철없던 시절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A·B씨의 가족과 B씨에게서 태어날 아기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가 돼 너무 가혹하다”며 혼인 무효를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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