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1945년 4월 30일 오후 3시, 독일 제3제국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젊은 아내 에바 브라운은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방공호에서 청산가리가 든 앰플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히틀러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이상이 그동안 알려진 히틀러 최후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히틀러가 스스로의 죽음을 조작한 뒤 북아프리카 스페인령인 카나리아제도의 테네리페섬으로 도망을 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대중지인 ‘더 선’과 ‘익스프레스’ 등은 최근 기밀 해제된 700쪽 짜리 미 연방수사국(FBI) 자료를 미국의 전문가가 검토한 결과 히틀러의 죽음은 자작극임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가운데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자신의 반(反) 유대인 신념 등을 담은 자서전 '나의 투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만에 8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재출간되면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재출간을 앞두고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왔던 이 책이 다시 서점에 깔리자마자 국내외에서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이날 외신들이 보도했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뮌헨 반란'으로 투옥됐을 때 저술해 1925년 출간된 책으로, 히틀러의 나치 집권 이후 1930년대 베스트셀러가 돼 종전 무렵까지 모두 1천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나치 패망 후 판권을 넘겨받은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는 '나의 투쟁'을 더 인쇄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70년 후인 2015년 말로 저작권이 소멸됨에 따라 2016년부터 출판이 가능해졌다.

'뮌헨 현대사연구소'는 수년간의 준비 끝에 3천500개의 비판적 주해를 담은 '주석 나의 투쟁'을 이날 출간했다. 독일 당국이 2014년 히틀러 저술의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해 이번 '주석 나의 투쟁'처럼 비판본 형식으로만 출간이 가능하다.

재발간된 나의 투쟁은 가격이 59유로(약 7만7천원)로, 모두 2천 쪽 분량의 두 권이다.

현대사연구소 측은 독일과 국외로부터 모두 1만5천여 건의 주문이 몰려 초판부수인 4천 부를 크게 초과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또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중국어, 폴란드어 등으로 번역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안드레아스 비리슁 현대사연구소장이 전했다.

'주석 나의 투쟁'이 시판되면서 출판을 둘러싼 논란도 재연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독일의 일간 타게슈피겔은 나치 만행을 자행하거나 체험한 증인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책이 '역사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베를리너 차이퉁은 '나의 투쟁'에 나온 폭동과 난동을 교사하는 주장은 그때 금지됐어야 하지 지금은 아니라며 출간을 옹호했다.

독일 내 유대인 공동체는 '반유대주의를 반박할 증거'로 이 책 출간을 옹호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서점에서 이 책을 다시 볼 줄 몰랐다며 모욕을 느꼈다는 등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 거주 유대인 샤를로테 노블로크는 AP통신에 "새 출간본이 주석과는 무관하게 단지 '나의 투쟁' 원본에 대한 관심만을 불러올까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요한나 방카 독일 교육부 장관은 "히틀러의 주장이 반박되지 않은 채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며 모든 학교에 책을 비치해 "학생들이 이 책으로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세계유대인회의 로널드 로더 의장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항의했다. 독일의 일부 서점은 ‘나의 투쟁’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로더 의장은 "이 책은 지금도 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도 논란을 일으키면서 재출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나의 투쟁’을 읽지 않고도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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