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프랑스의 세계적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나치 독일 스파이 활동을 했음을 보여주는 비밀문서들이 70년 만에 공개됐다.

AP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첩보기관들이 주도한 지하공작을 연구해온 ‘프랑스 역사학자 모임’은 16일(현지시간) 코코 샤넬 등 유명 인사들의 당시 행적과 공작 내용을 기록한 문서 수천 점을 공개했다.

나치 독일의 첩보기관(abwehr,아프베어), 샤를 드골 장군의 반독(反獨) 저항조직, 친독 비시 정권 정보기관 등 당시 정보기관으로부터 나온 서한, 보고서, 전문, 사진 등 다량의 자료가 오랫동안 파리 동부도시 벵센에 있는 성에 보관됐다가 7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료에는 수많은 독일 간첩들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소탕 작전, 영국에서 활동했던 샤를 드골 장군이 이끈 망명정부 자유 프랑스 전국위원회의 비밀활동과 전쟁범죄자 추적 노력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프랑스 정보기관이 1944년 11월 파리에서 유명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간첩 활동을 한 내용을 적은 기록한 쪽지도 여기에 포함돼있다.

코코 샤넬과 관련해 1944년 11월 파리에서 작성된 메모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한 정보원은 샤넬이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귄터 폰 딩크라게 남작의 정부 겸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고 적혀있다. 비밀 기록 관리를 책임진 관리자는 샤넬이 아프베어에 공작원으로 정식 등록된 사실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 제공, 임무 수행 등 활동을 위해 샤넬을 공작원으로 정식 등록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샤넬 자신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정보기관의 기밀기록 관리자인 프레드릭 퀘귀네르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자료를 통해 샤넬이 독일 첩보기관의 공작원으로 활동했다는 항간의 설이 사실임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샤넬은 정보 제공, 임무 수행 등 간첩활동을 한 공작원이지만, 샤넬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자신이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샤넬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 부역 활동을 했다는 의심을 받아 스위스에서 한동안 망명생활을 해야만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부역활동을 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강하게 일축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종전 후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압수한 자료, 나치 비밀경찰(게슈타포)이 작성한 수많은 레지스탕스 요원의 신상자료, 레지스탕스 협력자의 조사보고서 등도 포함돼 있다.

역사학자 토마 퐁텐은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후에 독일에 협력해 배신한 사례를 보면 독일에 저항한 사람과 프랑스를 배신한 사람을 구분하기보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더 복잡한 작업”이라고 강조하며 “게슈타포가 당시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딸과 아내를 볼모로 그의 자백을 얻어낸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 역사적 평가가 더 복잡하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자료 중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벌인 공작에 관여한 개인을 평가한 쪽지도 많다. 드골의 정보기관은 1943년 작성한 쪽지에서 자유 프랑스 전국위원회를 도운 미국 출신 가수 겸 흑인무용수 조세핀 베이커에 대해 "그는 대단히 헌신적이고 사심이 없으며,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이라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지난 1999년 프랑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여러 개의 상자에 담긴 이 자료는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채 국방부의 기밀보관소에 보관됐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가 이 서류에 접근하기 힘들었다. 현재까지 역사학자들은 자료 중 절반 정도에 대해서만 조사를 마친 상태이다.

자료는 조사가 끝난 뒤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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