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숙 기자]대형 IB(투자은행) 바람, 수익성 악화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중소형 증권사들이 미래 먹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중소기업(中企) 특화 증권사와 같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확보하거나 인사·성과 시스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성장에 가속 패달을 밟는 중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금융자본으로 출발한 메리츠종금증권의 성장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中企특화 증권사'…금융위 6곳 발표

금융위원회는 15일 중소기업 특화 금융투자회사로 IBK투자증권, 유안타증권, 유진투자증권, KB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6개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정된 증권사들은 점차 대형화 추세인 금융투자업계에서 중소 증권사들이 특화 전략을 내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이번에 지정된 6개 증권사는 향후 정책금융기관, 한국성장금융, 한국증권금융 등의 기관으로부터 각종 금융지원을 받아 중소·벤처기업 IB업무에 주력하게 된다.

중기특화 증권사는 중소·벤처기업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확대하고, 기술력있는 기업을 선별해 성장단계별 맞춤형 IB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화된 중소형 증권사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금융위에 따르면 중기특화 증권사 지정 효력은 2년간 유지되며 지정된 회사가 중소기업 IB업무를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수 있도록 1년 후 중간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중간평가 결과 지정취지에 맞지 않게 실적이 미진한 증권사가 있는 경우 지정을 취소하고 신규 신청공고 및 재평가를 통해 새로운 회사로 교체한다.

이에 따라 각사가 앞으로 중기특화 증권사로 선보일 차별화 전략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그동안 P-CBO(시장안정 유동화증권) 발행 참여, 중소기업 특화시장인 코넥스시장 상장 주관 1위 등 중소기업 성장 지원에 주력해오던 IBK투자증권은 중소·벤처기업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SME금융팀을 신설한다.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번 선정을 계기로 PEF(사모펀드)경쟁력 강화를 위한 독립 본부를 설치하고 IBK금융그룹 역량을 활용한 비재무적 컨설팅 등 특화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업금융 서비스 제공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선정된 6개 증권사 중 유일한 중화권 전문 증권사인 유안타증권은 범중화권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 현지 창업지원센터와 교류를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기업을 육성해 중국시장 진출방안의 게이트가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은 유진금융부문의 강력한 금융플랫폼을 활용한 마켓 메이킹(Market Making) 전략을 선보인다. 증권, 자산운용, 선물, PE사의 협업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최적화된 금융솔루션을 제공하고 기존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유망기업 및 투자자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또, 강력한 온라인 사업역량을 기반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키움증권도 중기특화 금융투자회사 지정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더욱 내실있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키움증권은 최근 3년간 IPO 상장주관 3위, 130여개의 중소·벤처기업 IPO 대표주관계약 체결을 완료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들을 시현하고 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3년간의 IPO실적으로 증명되듯이 성장단계 기업들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코넥스, SPAC, 코스닥 상장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며 "관계형 IB역량을 더욱 집중해 중소·벤처기업과 키움증권의 상호이익을 통한 지속가능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중기특화 증권사로 선정된 KB투자증권은 현대증권과 합병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받는 경우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양사가 1년 이내 합병할 경우 가장 최근 평가결과를 기준으로 이미 지정된 중기특화 금융투자회사를 제외한 자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KTB투자증권을 추가 지정할 예정"이라며 "1년 후 합병할 경우에는 신규 신청공고 및 재평가를 실시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자를 추가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투자증권 관계자는 "아직 현대증권 인수작업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다"라며 "당분간은 중기특화 증권사로서의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며 지속해오던 IB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리츠종금증권, 중소형 증권사의 새로운 특화 모델을 내놓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중소형 증권사들이 성장 정체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금융자본으로 출발한 메리츠종금증권의 성장 특화 모델이 단연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역발상 전략과 철저한 성과주의, 파격적 승진 시스템 등을 도입해 업계의 인재들을 끌어 모으고 실적을 통해 그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많은 증권사들이 금융위기를 거치며 수익성이 악화된 리테일 부문을 축소한 데 반해 메리츠종금증권은 영업직군제를 도입, 영업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정비했다. 전국에 흩어진 지점을 합쳐 크기를 키우고 거점 점포 중심 전략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7년간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리테일 부문은 2014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도입했다. 현재 메리츠종금증권 직원의 70% 이상이 정규직이 아닌 연봉계약직이다. 연봉계약직은 기본 고정급이 150만원 수준이지만 자신이 불린 금액의 50%를 제한없이 가져갈 수 있다. 일부 정규직 직원들도 자신이 불린 금액의 30% 가량을 인센티브로 가져갈 수 있다.

유연한 조직 문화도 한 몫 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개인 사무실은 직급이 아닌 성과에 따라 그 크기가 정해진다. 또 고위 직원이 사장에게 보고하던 체계를 이메일(e-mail) 등으로 최소화하고 6시 정시 퇴근도 장려하고 있다.

자기자본 기준으로 업계 8위에 불과한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업계 최상위권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파격적인 실험들이 가파른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리츠증권은 2010년 기준 국내 60개 증권사 가운데 연간 당기순이익 규모가 30위(206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2873억원을 기록하면서 대우증권(2988억원), 삼성증권(2750억원), 현대증권(2795억원)과 대등한 수준을 이뤘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조2410억5000만원, 4051억2000만원으로 전년대비 115.4%, 180.7% 증가했다. 이익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1.3%까지 상승했다.

일각에선 업계에서 메리츠의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순수한 금융자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증권사들은 모기업으로부터 수동적이고 부차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반면 금융자본에서 출발한 증권사들은 금융(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생태계를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증권사들은 모기업을 배제하고 적극적인 성장 전략을 가져가기 어렵다"며 "산업자본들은 금융을 주력 업종으로 키우지 않으므로 영업 역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결국 기업의 지배구조와 리더십 문제가 증권사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금융을 전업으로 하는 곳과는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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