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공장 가동율 ‘반토막’...거제 조선 협력업체 ‘줄도산’

▲ 경남 거제시에 있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이미영 기자 김승혜 기자]]새해가 밝은 지 벌써 4개월이 지났지만 경남지역 경제 기상도는 여전히 '흐림'이다. 아니 ‘비가 내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산업체 현장에서 만나는 중소기업인들 대부분은 전년대비 경영사정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제조업의 성공, 막강한 경쟁력을 상징하던 조선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갯벌과 바다를 메워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건설한 한국 조선업의 신화가 물거품처럼 꺼지고 있다.

상무, 부장, 차장들이 줄줄이 짐을 싸고, 남은 사람들은 동결되거나 절반만 나오는 월급 명세를 받아 들고 가야 한다. 유치원, 대학 등록금, 체력 단련비 등 복지 혜택은 줄줄이 없어지고 있다. 하청 업체들은 일을 해도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감이 떨어진 하청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창원국가산단 “너무 힘들어요”

“이번 달엔 월급이 절반 나왔어요. 나머지는 언제 나올지...”

“아무 말도 물어보지 마세요. 저, 가볼게요.”

잿빛 얼굴의 조선소 직원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잘 나가는 업체도 있겠지만 창원공단 평균가동률이 50% 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물로 나온 공장도 많다고 한합니다. 이대로 가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경남경제 1번지로 꼽히는 창원국가산업단지의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한 기업인의 넋두리다.

아무래도 가장 엉망인 분야는 조선 관련 산업이다. 조선기자재와 산업용 플랜트, 건설중장비, 공작기계 등 업종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자동차 쪽은 사정이 좀 낫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21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공작기계 생산 업체를 찾았다.

조립동으로 들어서자 직원 대여섯 명이 공작기계 조립에 여념이 없다. 공장 소음도 거의 없고 조용하다. 직원들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한 직원은 "경기가 불투명하고 주문 물량도 줄어들어 일해도 예전처럼 신바람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 회사 임원은 "경기 회복 기미가 안 보인다. 세계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중국, 유럽도 안 좋다. 미국 수출도 엔저 영향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잘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공장 가동률은 60%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적으로 신규투자가 줄다 보니 수요와 비교하면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다. 공작기계 제조업체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성산구에 있는 중장비 부품업체 관계자 역시 "공장 가동률이 호시절의 40%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 2013년부터 원청업체의 물량이 줄기 시작해 작년에는 반 토막이 났고 올해는 더 줄었다"면서 "할 수 없이 인원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플랜트 업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성산구의 한 산업용 플랜트 업체 야외 빈터에는 예전 경우 출하를 앞둔 완성품이 가득했으나 지금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썰렁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 중동 등 해외의 산업용 플랜트 발주 물량이 현저히 줄어든 데다 경쟁사들의 저가 입찰로 수주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상반기 내 수주가 없으면 인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금형업체 대표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일감이 작년보다 50%나 줄었다. 좋은 시절과 비교하면 매출도 30~40% 줄었다.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대기업 의존해서 하는 곳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기자재 제작 업체들 역시 대형 조선사들의 수주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선박용 엔진 부품 제조업체는 올해 들어 일감이 전년 대비 50~60% 감소해 가동률도 뚝 떨어졌고, 선박용 블록 공급업체는 3년여 전부터 일감이 줄어 관리직 명퇴 등을 통해 인원을 30% 정리했다고 밝혔다.

자동차부품 업종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창원시 성산구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수년 전부터 자동화 설비와 기술개발 투자를 지속해서 진행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자동차부품 생산용 공작기계를 280여대 보유하고 있으나 무인화 시스템 도입으로 근무 인원은 많지 않다.

회사 대표는 "다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같은 경우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 무인화 생산시스템 도입 등으로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자동차부품 업체 대표는 "공장 가동률로 보면 자동차는 선방하고 있으나 조선 관련 업체, 중장비, 공작기계 등 다른 쪽은 조업률이 50~70%까지 떨어진 것으로 안다"면서 "공장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 회사는 수출 비중이 높아 국내 경기 영향은 받지 않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 21일 경남 거제시 연초면 오비산단 내 선박용 파이를 생산하는 한 조선 협력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수주 절벽에 신음하는 '조선도시' 거제는 지금

"오죽했으면 도망갔을까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최근 경남 거제 대형조선소 원청업체의 용접·취부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의 대표가 임금 지급 전날 도주한 데 대해 이 회사 용접공 김모(43)씨는 이같이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그래도 우리 회사 대표는 한 달분 임금만 떼먹은 것이지만 몇 개월분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폐업하는 업체가 수두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일감이 줄면서 전체 인원 120명 중 절반인 60여명이 퇴직해 현재 50여명만 남아 있지만 회사 대표의 부재로 일단 정리 상태에 들어갔다.

남은 근로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전기 분야를 공급하는 한 협력업체는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지난 3월부터 폐업 절차를 밟고 있다.

이 회사 박모(59) 대표는 "상황아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사비를 털어 2년째 버텨왔지만 올해도 앞이 보이지 않아 결국 폐업을 하게 됐다"고 하소연 했다.

이처럼 원청업체의 일감이 줄면서 경상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협력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영세업체의 경우 일감이 줄어든 데다 원청업체의 단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경영난이 심각한 상태다.

원청업체도 비상경영 등의 이유로 적자 경영에 허덕이고 있다.

원청업체 임원 옥모(47)씨는 "저가 수주다 보니까 원청업체가 자금 회전이 잘 안 되자 협력사 대표들은 사비를 털어 근로자들 임금을 주는 상황이기 때문에 계속 악순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금을 체납하는 협력업체들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영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거제와 통영, 고성 지역 체불임금 규모가 올해 3월까지 모두 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전례 없이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전방산업인 해운업이 침체한 가운데 지속된 저유가로 선박 발주가 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 일감은 더 줄어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에 따른 체불임금 규모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사내에는 180여개, 삼성중공업 사내에는 140여개의 협력업체가 등록돼 있다.

사외 2차 협력업체들은 400~500여개로 거제와 인근 통영, 고성, 창원, 김해 등 지역에 산재해 있다.

이들 협력업체에는 모두 6만 여명의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양대 조선사가 현재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중 각각 9기와 5기를 상반기 안으로 인도되고 추가 발주가 없으면 협력업체 근로자 2만명 이상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대우조선노조와 삼성중공업 노사협의회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감이 줄어드는 오는 6월부터 대량 실직사태가 우려된다"며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하고 대량해고 방지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 같은 대규모 실직사태 우려는 지역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대규모 인력감축에 대한 불안감에 조선소 직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거제시 고현동 중심가와 옥포동 일대 상가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고현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반모(41)씨는 "요즘은 회식하는 근로자들을 거의 볼 수가 없고 가족 단위 손님도 줄어 전체적으로 매출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수년째 수직 상승곡선을 그렸던 부동산 시장 역시 얼어붙고 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들은 미분양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가 하면 조선소 주변 원룸촌은 빈방이 속출하면서 45만~50만원하던 월세도 최근 35만~40만원으로 떨어졌다.

공인중개사 김모(62)씨는 "그동안 불황을 몰랐던 거제 부동산 시장이 조선경기 악화로 거래가 크게 줄었다"며 "수익률도 원룸 기준 평균 10~15%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조선업계 위기로 지역경제도 크게 위축되자 거제시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아직 경제지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 당장은 어렵겠지만 정부에 고용위기 지역 지정을 건의할 계획"이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재 추진 중인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과 관광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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