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설마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후보 확정을 이끈 트럼프 열풍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언론은 트럼프주의를 의미하는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냈다.

미국 사회가 기조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트럼피즘이 탄생한 것인지, 트럼프가 미국 사회에 변화를 초래한 것인지에 대해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 사회 내부에 변화가 잠재해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여기에 트럼프가 '불씨'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인 백인 보수층이 미국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미국 사회 주류라고 자부했던 이들 백인 보수층은 흑인 대통령 등장과 함께 히스패닉이 일자리를 장악하고 미국 경제 중심이 동부 월가에서 서부 실리콘밸리로 이동하자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정치 서클로 이끌어낸 건 트럼프였다. 신호탄은 히스패닉을 향한 '막말'이었다. 미국 히스패닉 인구는 5300만명으로 인구의 17%에 달한다. 히스패닉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히스패닉을 자극하는 것은 정치에서 금기시돼왔다. 반면 2008년 대선과 비교해 2012년 대선 때 투표에 참여한 백인 유권자는 700만명이 줄어들었다.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득세에 아예 정치와 담을 쌓아버린 것이다.

유약한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것도 트럼프라는 '거친' 대선 후보 탄생의 토양이 됐다.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이민자들에게 선심성 복지를 제공하고, 종교적 자유를 이유로 무슬림에게 관대하며, 전 세계 동맹국들에 미국의 전략 자산을 내준 것은 미국이 강하다고 자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이 같은 대외정책에 대한 자부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가 인디애나주 프라이머리에서 압승, 사실상 최종 후보로 확정되면서 11월 치러질 미 대선 본선에서도 트럼프의 승기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일에는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맞붙을 경우 2%포인트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는 라스무센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한 첫 여론조사 결과다.

펜실베이니아주의 밥 케이시 상원의원(민주)은 트럼프가 일으킨 작은 진동이 11월 대선에선 큰 지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를 꺾는 것이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며 트럼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 허핑턴 포스트는 11월 미 대선 본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7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 문제와 민주당의 분열 등으로 트럼프가 클린턴 전 장관을 제치고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경제야 멍청이야"

1992년 미 대선 유세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선거 구호이다. 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 국민들은 이를 실감하고 있지 못하다. 트럼프는 미 경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미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고 또다른 경기침체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경제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어서 트럼프에게 미 경제 상황은 기회가 되고 있다.

◇민주당의 분열

클린턴과 경쟁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은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경선을 완주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난 1980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끝까지 후보 경선을 포기하지 않고 전당대회가 끝난 후에야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의 패배를 인정했었다.

케네디의 패배는 그러나 카터 대통령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선에서 패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케네디의 지지자들은 카터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 민주당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샌더스 의원을 지지자들에겐 그러한 충성심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민주당은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의 문제

일부 공화당원들은 여전히 결코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레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은 3일 클린턴에 승리하기 위해 이제 공화당이 대립에서 벗어나 단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날 경선 중단을 발표한 테드 크루즈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11월 대선 본선에서 공화당을 포기하라고 촉구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크루즈는 2020년 대선을 겨냥해 트럼프에 대한 이제까지의 비난을 접을 것이다.

◇미 언론

미 언론들은 이제까지 트럼프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증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면 트럼프에 대한 미 언론의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돼 클린턴과 비교되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트럼프에게 도움이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언론을 활용하는데 능란하다. 트럼프에 대한 미 언론 보도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부담감

지난 1988년 미 대선에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미국에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한 정당이 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연속 승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힐러리의 남편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워싱턴 정가에 대한 미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 가운데 힐러리는 타도의 대상인 기성 정치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의 변화

트럼프는 이제까지 막말 등으로 주의를 끌었었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면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점점 더 사회적 중간층을 향해 접근할 것이다.

◇요지부동의 공화당 지지 주와 흔들리는 민주당 지지 주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던 주들 가운데 올해 대선에서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주는 오직 애리조나주 하나뿐이다. 그러나 4년 전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었던 주들 가운데 올 대선에서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버지니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 무려 5곳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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